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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 보니, 내가 현직에 있을 때 같이 근무했던 여직원의 전화였다. 12월 18일에 결혼한다는 것이다.

사실 정년퇴직하고 나니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과의 인간관계마저 그대로 끝이다. 전화 한통 주지 않아서 사실 조금 섭섭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자기들한테 그렇게 섭섭하게는 하지 않았는데…. 다른 퇴직 동인들한테 물어봐도 자기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현직에 있을 때 선배들 잘 챙겼느냐고 되묻는다. 사실 나도 그랬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바쁘기도 하고, 퇴직 선배들한테 전화하고 식사라도 한 번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직원은 참 정이 많았다. 퇴직 후에 잘 있느냐고 안부도 물어오고 가끔 전화도 하고 그런 여직원이다. 그리고 사실 여직원을 내가 OO촌구석에 데려다 놓았다. 내가 근무했던 지점이 너무 신규직원이 많아서 업무추진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후배인 인사담당자한테 전화를 해서 업무가 숙달된 기존직원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광주 가까운 곳에 근무하는 이 여직원을 촌구석에 보내주어서 나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리 지점을 거래하는 관공서 직원인 공무원과 결혼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잘한 일이고 내가 그곳에 데려다 놓아 결혼의 인연을 만났으니 내가 반 중매쟁이인 셈이다.

또 며칠 후에 그 여직원한테서 전화가 왔다.

"지점장님, 주례 좀 서 주세요."
"아이구, 내가 어떻게 주례를 서. 나는 한 번도 안 해 봤는데…. 괜히 실수하면 어째.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봐."

나는 단 번에 거절을 했다. 주례라면 그래도 약력도 대단하고 대단한 인격을 갖추고 머리 희끗희끗한 사람이 서야 하는데, 나는 나이야 먹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50대이고 여러 면에서 부족한 듯 싶었다.

거절하고 또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다시 좀 주례를 서 달라는 것이다.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태어나서 주례 한 번 못 서보는 것도 좀 부끄러울 일인 듯 싶기도 하고, 몇 번을 부탁하는데 서줄려면 시원하게 서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알았다고 승낙을 했다.

주례를 맡고 나서 일주일간 약간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주례를 서는 여직원이 앞으로 잘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실 나의 몸가짐부터 조심이 되어 일주일간을 술도 마시지를 않고 경건하게 보내야 했다.

먼저 인터넷에서 주례사를 찾아보니 내용은 전부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정생활을 잘 하라는 말인데 너무 구태의연한 한문 투의 말들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또 참신하게 새로운 말로 써볼려고 하니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다.

몇 번을 머리를 짜내고 다시 쓰고 했지만 참신한 주례사가 되지를 않아 다시 찢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내한테 좀 손봐달라고 했더니 아내가 완전히 다르게 써 놓았는데 그 글을 읽어보니 내가 쓴 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하늘이 맺어 준 이 소중한 결혼의 축복을 어려운 일, 힘든 일이 있을 지라도 슬기롭게 극복하라, 결혼은 신랑 신부 두 사람의 결합뿐만 아니라 양가 가정의 화합이기 때문에 서로 자기를 낳아 주신 부모와 똑 같이 생각해서 정성으로 효도를 다 하라, 신랑. 신부 두 사람 모두 직장인으로서 특별하면서도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하라…는 내용의  주례사로 완성을 해서 실제 상황으로 5~6분 정도로 시간을 재어보고 낭독을 했다.

결혼식 당일 날이 되었다. 예식은 오후 5시에 있었다. 그래서 시간은 충분했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내가 장가가는 것 만치 바빴다. 목욕을 하고 구둣방에 가서 구두를 반짝반짝하게 광을 내고, 이발소에 가서 깨끗하게 면도를 하고 그렇게 오전을 보냈다. 그리고 경건하게 부부가 잘 살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오후 1시쯤에 예식장으로 출발을 했다. 몇 시간 먼저 가서 다른 사람 주례하는 것도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남의 결혼식에 앉아서 다른 사람 주례서는 것을 보니 사회자 없이 주례가 사회까지 하면서 주례를 서는 경우도 있고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모두 나이가 60대 중후반 되신 분들이고 자연스럽게 잘들 하신다. 벌써 주눅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직장에 있는 아내한테 전화가 왔다. 아내가 옷은 뭐를 입고 갔느냐, 넥타이는 뭐를 메고 갔느냐,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리고 직장 끝나면 예식장으로 바로 오겠다는 것이다. 아내마저 남편이 처음 서는 주례가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도 아내가 온다니 좀 자신감이 붙었다.

결혼식이 다가오고 결혼식 코디하고 상의를 했다. 나더러 성혼선언하고 양가부모 및 하객인사, 주례사만 하라는 것이다.

주례 소개가 있어서 나가서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주례 자리에 서 있는 데 약간 떨렸다. 이렇게 떨릴 때는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라고 전에 본 책 내용이 생각나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상채를 꼿꼿이 하고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하면서 사전에 준비한 원고대로 읽어 나갔다. 그런데 다행인 게 그 예식장은 식이 시작되면 자리에 앉는 하객들만 앉히고 뒤 쪽 문을 닫아 버렸다. 그래서 식장이 우선 조용했고 식을 진행하는 곳만 조명이 있고 하객들 쪽은 컴컴하게 불을 꺼 버려서 주례석에서는 많은 하객들의 시선을 볼 수 없었다. 대인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하객들의 시선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주례사를 원고를 보면서 앞을 주시하기도 하며 또박또박 읽어 나갔더니 잠깐이다. 신랑, 신부하고 같이 사진을 찍고 내 임무는 끝나버렸다. 이렇게 간단한 주례를 가지고 일주일 간 마음의 부담을 가졌었나. 싱겁기도 했다.

뒤쪽에 나오니 아내가 와 있었다. 아내가 빙그레 웃는다. 아내가 빙그레 웃는 것을 보니 내가 주례하면서 크게 잘못하지는 않았나 보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그랬다. 주례를 잘 했다는 것이다. 아내가 어떤 하객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주례서는 분 주례 잘 하는 가요?"
"네, 또박또박 하니 잘 하시네요. 풍채도 건사하시고 어디서 저런 주례 분을 모셨다요."

그 말을 듣고 싫지는 않았다. 이왕 내친 김에 주례가 없어 전문 주례인에게 부탁하는 신랑. 신부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신랑. 신부들에게 무료로 주례를 서주는 봉사활동이라도 한 번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가정의 결혼의 증인으로서 이 가정이 평생 잘 살도록 기도를 하고 가끔씩 이들을 만나 어떻게 사는 가도 물어보고 이들이 평생 살아가는 데 코칭을 해주려고 한다. 주례란 그 당일의 식장에서 주례사만 읽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 새로운 가정이 잘 살도록 사는 동안 코칭을 해주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오늘 결혼한 이 가정이 아들. 딸 적당히 낳아 잘 기르고 잘 살기를 바랄 뿐이다.


태그:#주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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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에 관한 글쓰기를 좋아합니다. 여행싸이트에 글을 올리고 싶어 기자회원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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