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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탈린 유럽문화수도 공식 로고.
 2011 탈린 유럽문화수도 공식 로고.
ⓒ 2011 탈린 유럽문화수도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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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2011년 바다 이야기에 빠진다. 여기서 말하는 바다 이야기란 한때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탈린이 선정된 2011년 유럽문화수도의 공식 주제이다.

탈린은 2009년 선정된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이어 발트3국에서는 두 번째로 유럽문화수도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다. 유럽문화수도란 매년 두어 도시들에게 한 해 동안 유럽 전역에서 홍보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행사를 말한다. 첫 번째 유럽문화수도는 1985년 그리스의 아테네였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 9개 도시가 동시에 문화수도로 선정된 것을 제외하면 보통 두 개 도시가 공동으로 행사를 주최한다. 2011년에는 탈린과 핀란드의 투르쿠가 유럽문화수도의 영예를 안았다.

빌뉴스가 유럽문화수도였던 2009년이 리투아니아 건국 1000주년이라는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2011년은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20년이 되는 해이다. 빌뉴스의 행사는 경제 위기와 국적 항공사의 부도 등 예상치 못한 악조건 때문에 시작 전부터 난항을 겪다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행사로 끝났지만, 탈린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에스토니아는 2011년 옛 소련 공화국 중에서는 최초로, 그리고 유럽 전체에서는 17번째로 유럽연합의 화폐인 유로화를 사용하는 나라가 된다. 또한 지난 9일, 역시 옛 소련 공화국 중에서는 최초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등 좋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2011년은 유럽문화수도의 성과 여부와는 별개로, 에스토니아 현대사에서 중요한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2011년 에스토니아가 세계에 자랑할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펴보자.

탈린 해안가. 구시가지와 달리 버려진 건물들이 아직도 많다.
 탈린 해안가. 구시가지와 달리 버려진 건물들이 아직도 많다.
ⓒ Kart Kubarse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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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해안가. 구시가지와 달리 버려진 건물들이 아직도 많다.
 탈린 해안가. 구시가지와 달리 버려진 건물들이 아직도 많다.
ⓒ Kart Kubarse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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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낯선 항구도시 사람들

탈린의 유럽문화수도 행사는 2002년 열린 유로비전 이후 에스토니아를 유럽을 넘어 세계에 알리는 대규모 국제행사가 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조직위원회에서 단독으로 행사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공모전을 통해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점이다. 조직위원회는 900개가 넘는 의견들을 국민들로부터 모았고 그중 251개를 추려 행사 기획에 활용했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7000여 가지의 다채로운 행사들이 일 년 내내 관광객들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 수많은 생각들을 걸러내는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행사 주제인 '바다 이야기'이다.

항구도시인 탈린에 바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의미가 있지만, 에스토니아인들에게 바다는 그보다 더 복잡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다는 중세에 탈린에 살던 무역상들에게 부를 가져다주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의 선진 기술과 학문들을 전해주는 창문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이민족들의 침입이 이어질 수밖에 없던 지리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또 여전히 바다는 이 도시 사람들에게 낯선 곳이다.

발트해 최대의 항구도시인 탈린 시민들에게 바다가 여전히 그리 친밀한 지역이 아니라는 사실에, 한국 사람들은 적잖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이는 소련의 지배를 받는 내내 바다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에는 해변을 따라 고급식당, 쇼핑센터, 석양이 아름다운 산책로 등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탈린의 해안은 그렇지 않다.

탈린 해안가에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지어진 회색빛 공장들만이 즐비하며, 대부분 군사시설이었기 때문에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일반인들의 출입은 금지되어 있었다.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에도 당시의 시설들은 역사의 상처로 흉물스럽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탈린 시민들은 그 회색 벽돌 무더기들을 문화와 예술 활동이 넘쳐나는 놀이터로 활용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활동은 내년에 절정에 이를 것이다.

2011년 유럽문화수도의 주제인 '바다 이야기'는 해안가에 자리한 탈린의 지리적 특성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탈린 시민들에게 한때 바라만 봐야 했던 바다를 돌려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11년 탈린은 설치예술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야외에서 영화가 상영되며, 불꽃축제 등이 열리는 거대한 문화공간으로 변화한다. 또한 에스토니아의 대표적인 문화 브랜드인, 3만 명이 모여 거대한 합창을 만들어내는 청소년 노래대전이 7월 1일부터 3일까지 펼쳐진다.

이번에 탈린은 핀란드의 투르쿠와 공동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일반적으로 유럽문화수도로 선정된 두 도시 사이의 거리가 멀어 공동 작업을 기획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하루 안에 왕복이 가능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탈린과 투르쿠는 다양한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투르쿠의 대표적인 무용단인 아우린코발레티 극단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춤추는 탑'이라는 공연이다. 10미터 높이의 철제탑 속에서 마술과 무용 등이 어우러져 진행되는 이 공연은 4월 투르쿠 초연 후 탈린으로 자리를 옮겨 펼쳐질 계획이다.

탈린 해안가에 있던 정치범 형무소. 탈린 바닷가에는 이런 흉물스러운 건물이 아직도 다수 남아 있다. 현재는 예술관과 문화 공연장으로 바뀌어 있다.
 탈린 해안가에 있던 정치범 형무소. 탈린 바닷가에는 이런 흉물스러운 건물이 아직도 다수 남아 있다. 현재는 예술관과 문화 공연장으로 바뀌어 있다.
ⓒ Serge Romp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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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린 해안가의 한 버려진 공장. 이 장소 역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뀔 예정이다.
 탈린 해안가의 한 버려진 공장. 이 장소 역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바뀔 예정이다.
ⓒ Maret Poldve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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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 염려 말고 탈린으로 오세요!

유럽문화수도 행사를 즐기기 위해 에스토니아를 방문할 관광객들은 한 가지의 번거로움을 덜게 되었다. 다름 아닌 환전 문제다. 내년 1월 1일을 기해, 독립 이후 20년 동안 사용해온 화폐인 크론(kroon)을 과감히 버리고 유로화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1유로=15크론'이라는 환율을 정착시키고자 에스토니아 정부는 2010년 내내 캠페인 등을 통해 국민들에게 화폐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알려왔다.

에스토니아의 여러 신문들은 연말부터 유로 특별면을 발행했고, 에스토니아 재정부는 '떼레, 유로(유로야 안녕!)'라는 유로화 관련 누리집(euro.eesti.ee)을 운영하며 국민들의 '유로 공포증'을 해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동안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때, 유로화를 처음 받아들이는 나라의 국민들이 유로화 사용과 함께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던 것이 사실이다. 1크론짜리 물건이 갑자기 1유로로 둔갑하지는 않을까, 환율 계산 때 상인들이 부당이득을 챙기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 국민들로 피부로 느끼는 대표적인 불안감이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유로 때문에 가격이 오르지는 않는다'는 캠페인을 통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 참가한 업체와 상인들은 재정부와 공정거래합의서에 서명한 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공식 스티커를 발부받는다. 유로화 도입 후에도 갑작스런 물가 인상은 없을 것이라는 안심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 이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은 업체라 하더라도 환율 변동 기간 중 부당한 이익을 챙기거나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를 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유로화 도입 이후 공정거래를 약속한 매장과 업체들이 사용하게 될 공식 로고. ahk.eesti.ee에서 갈무리.
 유로화 도입 이후 공정거래를 약속한 매장과 업체들이 사용하게 될 공식 로고. ahk.eesti.ee에서 갈무리.
ⓒ 에스토니아 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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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경제활동이 유로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1월 1일부터 전국의 은행과 현금지급기에서는 오직 유로로만 현금을 지급하지만, 공식적으로 1월 14일까지는 유로와 크론화가 함께 사용된다.

2주의 적응기를 거친 후 1월 15일부터 공식적으로 모든 거래가 유로로만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화폐 때문에 혼란스러워할 사람들을 위해 내년 6월까지 모든 업체는 가격을 크론화와 유로화로 동시에 표기해야 한다.

이에 발맞추어 은행도 새 시스템 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11년 1월 1일에 대부분의 은행이 문을 열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1년 1월 1일부터 통용될 에스토니아 발행 유로 동전. 에스토니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에스토니아 재정부에서 운영하는 euro.eesti.ee 화면 갈무리.
 2011년 1월 1일부터 통용될 에스토니아 발행 유로 동전. 에스토니아 지도가 그려져 있다. 에스토니아 재정부에서 운영하는 euro.eesti.ee 화면 갈무리.
ⓒ 에스토니아 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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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가 도입되면 외화 거래 비중이 높은 IT사업과 은행업, 회계업 등에 이득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에스토니아에 해외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더 좋은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는 점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유로화 도입이 긍정적인 변화만 가져다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가장 많은 우려가 나오는 대목은 장기적으로 불가피한 물가 인상과 그에 따른 에스토니아 경제의 경쟁력 문제이다. 또한 몇 년 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안정성이 많이 떨어진 조세법 때문에, 유로화를 도입한다고 해도 수출입 수지에 큰 변화가 없을 수도 있다고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국민들 사이에서는 '유로화 도입 후 에스토니아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도입 이전에 비해 15배 힘들어질 것'이라는 농담도 나오고 있다.

유로화 지폐의 디자인은 모든 발행국에서 동일하지만 동전에는 발행국의 문화를 보여주는 도안을 넣기도 한다. 에스토니아에서 발행될 유로 동전의 뒷면은 에스토니아 지도로 채워지게 된다.

유로화 도입에 OECD 가입까지... 기대되는 에스토니아의 2011년

이와 함께 에스토니아는 12월 9일 OECD 공식 회원국이 됨으로써 유럽연합 가입과 비견될 만큼 변화된 환경 속에서 2011년을 맞게 되었다. 에스토니아 국민들이 OECD 가입에서 느끼는 희망은 각별하다.

한때 소련 공화국 중 최고라는 찬사를 들었지만 독립 후엔 유럽연합 꼴찌라는 수모를 당하면서 세계 질서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던 에스토니아 국민들 사이엔 알게 모르게 자괴감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이뤄진 OECD 가입을 에스토니아 국민들은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독립 후 초기의 놀라온 경제적 성과가 무색하게도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리투아니아, 라트비아와 비교해도 20년 동안 에스토니아가 이룬 성과는 거의 기적적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후 2012년을 맞이하면서 반추할 에스토니아의 2011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된다.

'잘 가라, 크론'.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에스토니아 화폐들.
 '잘 가라, 크론'.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에스토니아 화폐들.
ⓒ Villu Kr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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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11년 한 해 동안 탈린에서 열릴 풍성한 축제에 대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http://www.tallinn2011.ee/eng



태그:#유럽문화수도, #탈린, #에스토니아, #유로, #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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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석 기자는 십수년간 발트3국과 동유럽에 거주하며 소련 독립 이후 동유럽의 약소국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문화적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저술활동을 해오고 있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라트비아 리가에 위치한 라트비아 국립대학교 방문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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