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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31일 북한산 둘레길이 개방됐다. 북한산과 도봉산, 사패산 자락을 연결하는 북한산 둘레길은 약 70km, 이중 44km에 이르는 13구간이 열렸다. 나머지 구간은 2011년에 열릴 계획이다. 지난 일요일(10월 10일), 지난해부터 함께 산행하고 있는 지인들과 북한산 둘레길에 갔다. 이날 우리가 탐방한 곳은 제1구간에서 제3구간까지, 약 9km 가량이다.

원래는 제1구간(흰구름길)을 시작으로 몇 개 구간을 걸을 생각이었다. 계획대로라면 153번이나 120번 등과 같은 버스를 타고 도선사 부근까지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야 할 수유역 3번 출구에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서 있을 자리조차 없을 정도로. 잠깐 서 있자니 사람들에게 떠밀릴 정도였다.  

제3구간(흰구름길) 빨래골 공원 이정표
 제3구간(흰구름길) 빨래골 공원 이정표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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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전망대에서 본 북한산 인수봉(왼쪽) 일대 및 오봉(오른쪽) 일대
 구름전망대에서 본 북한산 인수봉(왼쪽) 일대 및 오봉(오른쪽) 일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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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간 60만 명이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단다

이런지라 우린 계획을 변경하여 수유역 3번 출구에서 3번 버스를 타고 제3구간 흰구름길(이준열사 앞 장미아치~북한산 생태숲)을 만날 수 있는 빨래골 쪽으로 갔다. 10시 17분쯤 빨래골 공원에서 둘레길을 만나기 시작해 10분쯤 걸으니 구름전망대가 나왔는데 제법 많은 철제계단을 올라가야 할 정도로 높았다.

때문일까.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면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올라갔다 가자." "아니 무서워서 더는 못갈 것 같아. 난 내려갈 테야. 혼자 갔다 와." "그래도 가보자." 계단을 오르다가 엉거주춤 서서 가벼운 실랑이를 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을 만났다. '그냥 냅두고 혼자만 올라갔다 오시지!' 나도 모르게 이런 속말이 나왔다.

3년 남짓 산행을 해오는 동안 '내켜 하지 않으면 가자고 꼬드기거나 달래지 않는다. 특히 안전과 관계된 거라면 절대로!' 이와 같은 지론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몇 사람의 크고 작은 산행사고를 보며 특히 산행하는 동안에는 방심하거나 오만해서도 안 되고 내 체력에는 무리인 코스를 만용을 부려 가다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 본 인수봉(해발 811m) 일대는 동네 뒷산처럼 푸근하게 느껴졌다. 늘 웅장하고 거대하게만 느껴지던 인수봉인데 말이다. 인수봉 오른쪽으로 한참 떨어진 곳의 오봉은 아기자기 귀엽게 느껴졌다. 지난해 우이령길에서 올려다 본 웅장한 오봉도, 영봉 가는 길 능선에서 본 신비로운 오봉이 아닌 조그만 꼬마 몇이 옹기종기 앉아있는 것처럼 귀여운. 그만큼 전망대는 높았다.

어지간한 정자보다 넓은 전망대에서 오봉 아래 촘촘하게 펼쳐져 있는 아파트 숲을 바라보고 있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인수봉 아래 넓디넓은 나무숲을 가리키며 우리가 좀 전에 지나온 빨래골이라고 알려줬다. 이어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이 많아 '무너미'라고도 불렀다. 물이 많다 보니 인근 사람들이 수시로 모여들어 빨래를 했고 궁궐의 궁녀들까지 시시때때로 빨래를 하면서 빨래골이라 부르게 되었다"라고 설명해 줬다.

북한산 둘레길 안내 표지판만 따라가면 지도없이 쉽게 갈 수 있을만큼 안내표지판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북한산 둘레길 안내 표지판만 따라가면 지도없이 쉽게 갈 수 있을만큼 안내표지판이 많이 설치되어 있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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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 그 옛날에 궁녀들이 궁궐에서 한참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빨래를 했을까? 왜? 하기야 우리가 어렸을 때 어른들은 4~5km는 우습게 다니며 나무도 하고 그랬으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걷는데 일행 중 한사람이 제안을 한다.

"우린 당분간 둘레길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린 여기 아니래도 갈 곳 많잖아!".

말하자면 둘레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그러니까 어린 아이들도 있고 몸도 따라주지 않는 등의 이유 때문에 산행을 쉽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무 때 아무산이나 산행을 할 수 있는 우린 가급 둘레길을 이용하지 말자는 거였다. 북한산 둘레길에 우리까지 보태야 하나 싶을 만큼 사람들이 정말 많고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초 뉴스에 의하면, 북한산 둘레길이 열린 9월 첫 달, 둘레길을 이용한 사람은 무려 60만 명. 평일에는 2만 명, 주말과 휴일에는 5만 명 가량이 둘레길을 다녀갔단다. 여하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둘레길을 원했나? 전국에 불고 있는 둘레길 열풍 때문 아냐? 조금 지나면 줄어들지도 모르잖아'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울러 수많은 사람들에게 짓밟혀 으깨질 대로 으깨져 솜처럼 푸석푸석하게 자라던 청계산 매봉 근처의 풀들이 떠올랐다.

등산화도 없이 둘레길 걷는 아이들... 위험해요

등산화에 배낭, 모자까지 갖춘 열살 남짓의 꼬마
 등산화에 배낭, 모자까지 갖춘 열살 남짓의 꼬마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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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도 안전을 위해 등산화나 배낭 등 등산 복장은 갖춰야만 한다.
 둘레길도 안전을 위해 등산화나 배낭 등 등산 복장은 갖춰야만 한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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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북한산에 설치될지도 모르는 케이블카 이야길 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데 저만치서 뛰어오던 열 살 남짓의 사내아이가 내 앞에서 쓰러졌다. 가족들을 한참 뒤로 하고 덜렁대며 뛰듯 걸어오다 흙 위로 나와 있는 나무뿌리에 그만 걸려 넘어지고만 것이다. 아이를 일으켜 세워주면서 나도 모르게 어느새 아이 신발로 눈이 갔다. 아이는 등산화가 아닌 평범해 보이는 아동화를 신고 있었다. 위험스럽게도 말이다.

산행 중 아이들이나 청소년을 만나면 이유 없이 기분이 좋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밖에 모른다는데, 또 성적 때문에 체육시간이 점수를 올리는 과목으로 대체되고 운동장이 사라져 점점 갈수록 아이들이 허약해진다는데, 이런 아이들은 이런 것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을 것이기에 이유 불문하고 그저 예쁘고 대견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게 아이가 신고 있는 신발로 눈이 먼저 가곤 했다. 그동안 산행 중에 만난 아이들 중 등산화를 신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대개 동행한 어른들은 등산화를 신고 있었지만 아이들은 일반 운동화를 신은 경우가 등산화를 신은 쪽보다 훨씬 많았었다. 등산화를 갖춰 신은 아이를 만나면 기분이 좋다. 아이에게 등산화를 신겨 함께 산행을 하는 어른도 그저 멋져 보인다고 할까. 소양과 상식이 있는 사람 같아서 말이다.

이번 북한산 둘레길에서 등산화에 배낭, 모자까지 갖춘 아주 예쁜 꼬마를 만났다. 아쉽게도 이처럼 산행 시 갖춰야 할 것을 갖춘 아이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동안 등산화를 신은 아이는 여럿 봤지만, 이처럼 배낭까지 멘 아이를 만난 기억은 없었기에 아이가 더 예뻐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산행을 하다 보면 배낭을 메지 않은 어른들도 흔하게 본다. 대부분 남녀 한 쌍 중 남자는 배낭을 메고 여자는 배낭을 메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산에 오르기도 힘든 여자 친구 혹은 아내가 힘들지 말라고 배려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런 배려는 위험하다. 산행 시 배낭은 점심이나 간식거리 등을 넣는 그 용도만이 아니라 만에 하나 넘어졌을 경우 척추 등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달 전 함께 산행하던 언니가 바위를 오르다 2미터 남짓 아래로 추락했었다. 오르다 그대로 떨어졌으니 등과 엉덩이를 땅 쪽으로 한 채 하늘을 보며 벌러덩 넘어진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다리에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을 뿐 더 이상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 산행을 계속할 정도로 말이다. 배낭이 척추를 보호해 준 것이다. 이런지라 무엇을 넣고 안 넣고를 떠나 산행 시 배낭은 반드시 메야만 한다.

하지만 북한산 둘레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배낭은커녕 등산화를 신지 않은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심지어는 숄더백을 메고 구두를 신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으며 간혹 양복을 입은 사람들까지 보였다.

다른 둘레길을 가보지 않아 둘레길이 어때야 하는지, 다른 둘레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날 내가 만난 북한산 둘레길은 산책삼아 가볍게 걸을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길은 아니었다. 북한산과 도봉산 낮은 자락들을 연결해 조성했기에 바위는 거의 없었지만 기를 쓰고 올라가야 할 만큼 경사진 곳도 있었다. 이런 길은 내려갈 때 자칫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이다. 안전을 위해 둘레길에서도 꼭 등산화와 배낭을 갖췄으면 좋겠다.

순례길  4·19전망대에서 본  4·19민주묘지.
 순례길 4·19전망대에서 본 4·19민주묘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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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한부분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길은 사실 위험했다. 좁은 산길이라 워낙 긴 행렬이 계속됐는데 앞서가던 사람이 마주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려다 산자락 아래로 구를뻔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관리나 안내문이 필요할 것 같다.
 순례길 한부분이다. 평범해 보이는 이 길은 사실 위험했다. 좁은 산길이라 워낙 긴 행렬이 계속됐는데 앞서가던 사람이 마주오는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려다 산자락 아래로 구를뻔했기 때문이다. 적절한 관리나 안내문이 필요할 것 같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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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1885∼1967): 독립운동가. …1919년 3·1운동 때에는 김영륜(金永倫)과 〈기미독립선언서〉를 교정·인쇄하는 데 참여하여 각 지방에 배포했다. 1920년 4월 임시정부의 요청에 따라 천도교 대표로서 상하이[上海]에 망명하여 천도교 상하이 전도실을 설치하고 〈천도교의 실사(實事)〉를 간행하여 천도교 선전에 노력했다. - 다음백과사전 중에서  

12시 무렵 제2구간인 순례길 강재 신숙 선생 묘소 부근서 점심을 먹었다. 선생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순례길에는 신숙 선생 묘소 외에 김창숙·이시영·유림·양일동·서상일·김도연 선생 등의 묘소가 있는데 신숙 선생 묘소만 둘레길에서 볼 수 있고 나머지 묘소들은 이정표에만 있을 뿐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길에서 좀 벗어나 있나 보다.

순례길 구간과 가까운 제1구간에 3·1운동 발상지인 봉황각과 최시형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 이들이 천도교와 관련되어 있고 보면 아마도 이분들 역시 신숙 선생처럼 천도교도이자 독립운동가들이 아닐까? 추측해 봤다. 시간 나는 대로 이분들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 

"제발 버리지 말라"고 호소하는 둘레길 주민들

주택가 벽에 자주 보였던 '제발 조용히...' '제발 버리지 마세요' 안내 표지판
 주택가 벽에 자주 보였던 '제발 조용히...' '제발 버리지 마세요' 안내 표지판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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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가 벽에 자주 보였던 '제발 조용히...' '제발 버리지 마세요' 안내 표지판 및 경고문
 주택가 벽에 자주 보였던 '제발 조용히...' '제발 버리지 마세요' 안내 표지판 및 경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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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의 묘소가 표시된 둘레길 이정표 몇 개를 지나 조금 더 가면 4·19민주묘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4·19전망대가 나온다. 전망대가 그리 크지 않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금방 발길을 옮겨 제1구간(소나무숲길)로 향했다. 솔밭공원을 지나 박을복 자수박물관까지 가는 동안 주택가를 한참 지났는데 담에는 '제발 조용히…' '제발 버리지 마세요'라 쓴 벽보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북한산 둘레길 전 구간을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처럼 주택가를 지나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여럿씩 패를 지어 떠들거나 쓰레기 봉지를 버리는 행위는 어떤 경우든 하지 말아야겠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조성한 둘레길이라지만 둘레길 때문에 짜증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산길에서도 여럿이 패를 지어 떠들며 가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를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참에 꼭 명심하자.

북한산 둘레길에서 지도를 들고 있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만났는데, 나무나 담 등에 붙여진 둘레길 표지만 눈여겨봐도 될 만큼 둘레길 안내 표지는 많았다. 하지만 둘레길에서 만나는 꽃과 나무 표지판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둘레길에서 만나는 나무와 꽃에 대한 팻말이 많이 부족해 보인다. 때문인지 솔직히 그냥 걸을 뿐, 볼거리도 별로 없었다. 가을이라 그런지 꽃향유나 여뀌 등 겨우 몇 종류뿐, 야생화들도 거의 없어 더욱 밋밋했다.

북한산 둘레길이 개방됐다는 뉴스가 나간 이후 등산복을 입은 내게 북한산 둘레길이 어떤가 묻는 젊은 부모들이 많았다. 다른 구간은 가보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만난 제1구간~제3구간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삼아 천천히 걷자면 많이 힘들 것 같다. 어림짐작 무작정 나서지 말고 적절한 구간을 선택하여 아이들이 자연을 기분 좋게 만날 수 있도록 해주자. 둘레길 정보는 http://ecotour.knps.or.kr/dulegil/index.asp에 있다.

순례길에서 만난 자연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북한산 둘레길 현수막
 순례길에서 만난 자연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북한산 둘레길 현수막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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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 30분 무렵, 제1구간 손병희 선생 묘소 앞에서 둘레길 걷기를 끝내고 가볍게 막걸리를 마신 후 헤어졌다. 좀 더 많은 구간을 걸을 생각이었으나 청소년 둘이 있어서 다른 날보다 일찍 끝낸 것이다. 내년 봄이나 여름에 다시 북한산 둘레길을 걷고 싶다. 어떤 꽃들이 피고 어떤 새들이 사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이참에 북한산 둘레길 조성 관계자분들께 제안하고 싶다. 간혹 낮은 산자락에 화원의 화분이나 관공서 등의 화분에서 보던 원예종 꽃이나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좋지 않은 것 같다. 생태문제도 그렇고 산길에 원예종을 심은 상식이 의심스럽다고 할까. 야생화들의 씨앗이 영그는 계절이다. 이번에 만난 북한산 둘레길 구간에는 야생화들이 거의 없어 아쉬웠다. 같은 산자락에 톡톡 영글고 있는 씨앗들을 채집하여 뿌려 야생화 풍성한 둘레길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태그:#북한산 둘레길, #흰구름길, #소나무숲길, #순례길, #4·19민주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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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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