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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내년 어학연수를 앞두고 빈둥빈둥대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따 하라야~ 요즘에 다들 운전면허 학원 다닌다고 그러는데, 너는 안 다닐 거냐? 일 없는 시간에 빈둥거리지 말고 운전면허나 한번 따러 다녀봐~, 너도 그렇고 느그 언니도 그렇고 왜 남은 시간에 운전면허를 안 따 놓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직장다니고 그러면 시간없어서 다니고 싶어도 맘놓고 못 다닌당께 운전학원 한번 알아봐봐. 엄마가 밀어줄게."

오랜만에 듣는 울 엄마의 구수한 사투리다. 면허? 그까짓거 별 거려니 하는 생각에 빠른 대답을 이어나갔다.

"그거 따는데 얼마나 시간 걸린다고 그래~ 요즘 1주일이면 오케이라던데, 알았어~ 운전학원 한번 알아볼게."

학원비를 비롯한 엄마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미루고 있었던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리저리 붙어있는 광고전단지를 살펴 보며 가장 저렴한 곳이 어디인지 살폈다. 이리저리 맘에 드는 곳을 찾는 중에 유독 눈에 띄는 문구를 발견했다.

"학과, 기능 20만원, 도로주행 20만원, 추가교육비없음."

무릎을 '탁'치며 바로 이 곳이라는 생각에 재빨리 전화를 걸어 등록을 했다. 등록을 하고나서, 1종을 볼 것인지, 2종을 볼 것인지 결정을 해야 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요즘 2종은 다들 쉽게 딴다는데, 기왕 볼 거 '1종보통'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당당히 '1종보통'을 외쳤다. 시험 교육을 받으며 '1종보통' 시험을 보는 많은 남자들 속에 몇 안 되는 여자로 은근히 으쓱한 마음이 들었다.

운전면허 그까이거 따주지 했는데

면허학원에 등록한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필기시험을 보았다. 문제집 한 권을 하루 날잡아 대충 풀어보고 난 뒤에, 필기시험을 92점으로 거뜬하게 합격했다. 이 정도 속도면 일주일이면 운전면허증을 손에 쥘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웃음을 지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능시험을 준비하는데, 난생 처음 운전대를 손에 쥐게 되었다. 학원 강사가 옆에 붙어서 클러치는 살살 밟아야 하는 것이며, 클러치를 밟고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노란선에 어깨를 맞추어야 한다 등 이런저런 자세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이것도 뭐 대충 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흘려듣고서는 알았들었다고 대답을 하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 하는 운전이라 그런지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다소 과격한(?) 운전을 시작했다. 운전 강사가 당황하며 말하기를, 보기와 달리 운전 거칠게 한다며 웃는 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난 웃으며 이야기하길래 또 그게 칭찬인 줄 알았다.

마음 속으로 '난 베스트 드라이버야~'를 외치며, 이리저리 굴절코스, S자코스, T자코스, 평행주차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검지선을 밟아 '삐- 삐-' 하는 소리가 울려댔지만, 8시간 정도 타고 나니, 100점이 연이어 나왔다. 제법 능숙해졌다는 생각에 이 정도면 무난히 합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체시험장이 아닌 까닭에, 학원버스를 이용해 두 시간정도 차를 타고 나서야 가덕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난 분명 베스트 드라이버가 분명한데, 정말이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는 것이 아닌가?. 드디어 24번,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CCTV에 민증과 함께 얼굴인식을 하고 차에 올라탔는데, 다리가 왜 이렇게 후들거리는 건지 클러치를 제대로 밟을 수가 없었다.

차는 또 학원차와 달리 왜 이리 삐까번쩍한 건지, 길들여지지 않은 까닭에 다소 뻑뻑한 느낌이 들어 매우 생소했다. 긴장을 해서 검지선을 두 번 밟아주고 S자를 통과하는가 싶더니, '실격입니다'라는 컴퓨터 기기의 소리와 함께 검정관이 뛰어와서는 차에서 내리라는 손짓을 했다. 영문을 모른 채 차에서 내리니 하는 말이 S자를 통과할 때 모서리 턱을 뒷바퀴로 밟았댄다.

불합격이었다. 난생 처음, 불합격의 쓰디쓴 잔을 맛보고서는, 겉으로 까짓거 다들 한번 정도는 떨어진다며, 괜찮다고 쿨한 척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분명 별 거 아닌 일임에 불구하고 무언가 실패했다는 마음 한구석 씁쓸한 마음이 연신 가시질 않았다. 순간, 학원장에 두 번 떨어지고 세 번 만에 합격한 아이를 보며 은근한 조소를 흘렸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난생 처음 불합격, 가족들 반응은?

'정말 한 번만 더 떨어지면 망신 중에 대 망신이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제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씁쓸한, 실패의 잔에 집에 도무지 전화를 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땅히 누구에게 위로를 받겠냐는 생각에 수화기를 덜어 집에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울먹거리며 떨어졌다는 소식을 전하니, 아버지는 그저 웃으시면서 대답을 하셨다.

"그럼 한 번에 붙을 줄 알았냐 ~ ㅎㅎ 다음에 또 보면 되지, 뭘 그런거 가지고 걱정을 하누? 그거 떨어진 거 아무 것도 아니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말고 있어라~."

한순간에 실패감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거 떨어진 게 대수냐며 타지에 있는 딸을 더 걱정하시며 위로의 말을 던지시는 아버지로부터 큰 힘을 받았다. 그렇게 아버지로 위안을 받고 추가 교육을 2시간 정도 받고서는  힘이 나서 다시 도전을 감행했다.

"도져언~!"

그러나, 역시나 무리였나보다. 아직도 떨림은 여전했고, 이번에는 굴절코스에서 어깨선을 잘못 맞춘 건지, 무언가 꼬였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 순간 검지선을 밟았고 당황해서 빠져나가려 할 새도 없이 시동이 꺼졌다.

'아, 틀렸구나.'

이번도 연달아 들리는 '삐-삐-삐-'소리는 순식간에 100점을, 90점, 85점, 75점으로 곤두박치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여김없이 달려오는 검정관 아저씨, 그 아저씨가 너무나도 야속하게 느껴졌다. 시험을 볼수록 코스가 길어져야 하는데, 이건 무슨 일인지 되려 더 짧아졌다.

정말이지 학원선생님도, 함께 시험 봤던 이들도 볼 면목이 없었다. 얼굴은 다음에 꼭 합격할 거란 마음으로 애써 태연한 척 노력했지만 '나는 패배자다'라는 느낌만이 가득했다. 집에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있다가 전화를 걸었더니, 이번엔 어머니가 전화를 받았다.

"아니, 뭘 그렇게 긴장을 했냐~, 다섯번이고 여섯번이고 떨어져도 된다는 마음으로 침착하게 해라잉~, 이거 떨어지면 또 보면 되지, 왜이리 풀이 죽어있다냐~? 괜찮어~잉~!"

엄마는 너무 긴장을 하고 시험을 본 것 같다며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시험을 보라 이야기 해주셨다. 하지만, 꿀꿀한 심정 반, 미안한 심정 반으로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이제는 운전 면허장 선생님들도 내가 하도 떨어져 그런지 안쓰러운 눈치다. 선생님들이 번갈아 두세 명이 오셔서 나에게 개인지도를 해주신다며 이론을 열심히 설명해 주신다. 하지만, 이미 이론은 '빠삭'하다~! 중요한 건 시험만 시작하면 어김없이 떨리는 나의 심장과 후들거리는 다리였다. 총 14시간의 교육을 받고 난 뒤에 다시 세번째 시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도져언!"

그렇게 나의 세번째 도전은 시작이 되었으나. 어머 이게 웬일인가, 유난히 빠른 속도로 출발한다 싶었는데, 경사로에 가자마자 시동이 꺼지고 후진을 하고 난리가 났다. 도무지 경사로를 올라가려고 해서 올라가지질 않는다.

'삐삐삐삐-.'

그렇다. 또 떨어지고야 말았다. 곡선, 아니 T자코스 한번 가보지 못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데 떨어진 것이다.

"엄마 아빠한데 나 열 번 떨어져도 되느냐고 좀 물어봐"

정말이지 한 순간 내가 낭떠러지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기어 1단을 넣고 출발을 해야 하는데, 기어 3단을 넣고 출발을 한 것이다. 이제는 학원선생님도 수강생도 볼 낯이 없었다. 그냥 한숨만을 푹푹 내쉬고 풀이 죽어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정말 전화를 걸어 집에 말할 용기도 안 났다. 이건 뭐 다섯 번 여섯 번을 봐도 붙을 자신이 없었다. 이제는 면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대단하게 느껴졌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이미 '1종보통' 면허증을 소지한, 그것도 단 한 번에 합격한 남동생에게 문자를 두 통 보냈다.

"있잖아, 누나 또 떨어졌어. 엄마랑 아빠한테 나 열 번 떨어져도 되냐고 좀 물어봐봐."
"아빠가 바보같다고 그러지?ㅜㅜ 누나 어떡해, 진짜 바보같애."

곧이어 집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오메~~ 또 떨어졌어~??"

동생이 익살스러운 말로 대답을 했다. 곧이어 들리는 집안 가득한 웃음소리. 감사했다. 정말 바보같다거나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우리 가족의 반응에 그저 감사했다. 그래도 가족의 눈치를 잘 살펴야 한단 생각에 동생에게 재차 물었다.

"아빠가 뭐라셨어??"
"아빠는 떨어졌다고 바보같다는 게 아니라, 그거 가지고 걱정하는 게 더 바보같대~~ㅎㅎ"

"괜찮으니깐, 떨지 말고 다음에 더 잘해."

진짜 가족밖에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우리 가족은, 네 번, 다섯 번, 열 번떨어져도 나를 타박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도 아무것도 아닌게 될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나의 머릿속을 교차했다. 이제는 학원에서도 내 얼굴을 다 알고, 시험보는 사람들과도 얼굴을 외울 정도로 다 친해졌다. 학원에서는 아직 기능은 7번이 최고기록이라며 최고기록을 깰 거냐면서 편안한 웃음으로 나를 대해 주었다. 나도 어느 정도 실패와 불합격에는 초연해져서 다 내려놓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추가교육을 받았다.

장장 17시간의 교육을 받고 나서, 이제는 학원사람들 보기가 영 그런 까닭에 홀로 시험장에 가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학원 사람들이 보지 않는, 11시 시험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이 시험장을 찾았다. 이번에 나와 함께 한 것은, 한 손에 든 '청심환'이었다. 매번 떨어지는 큰 이유가 긴장하기 때문이니까 약물 복용을 통해서라도(?) 긴장하지 않고 꼭 합격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운전면허 네 번째 도전, 나를 합격시킨 건 가족들

그렇게 초조히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한 모자가 내 눈 앞에서 그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갓 대학 새내기처럼 보이는 아들의 얼굴에는 이미 수심이 가득했다. 그 손에 든 이력서 뒤편의 빼곡한  스티커가 그 연유를 설명해 주는 듯했다. 보아하니, 그도 이미 두 세 차례는 떨어진 듯했다. 다른 이들이 기능시험을 치르는 과정을 보면서 그의 엄마는 잔뜩 뿔이 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남들 다 따는 운전면허, 그거 못 따면 바보인 거야~! 남들봐봐~ 우리나라 청년들, 80~90%는 다 가지고 있는데 그거 하나 못 따면 낙오자야!"

잔뜩 움츠리고 있는 청년은 우두커니 그저 그 소리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이전에 180cm 이하는 루저라고 했던, 한 여대생의 당돌한 발언이 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단순히 180cm가 안 되는 키에 대한 루저 발언보다 제 어머니로부터 들은 그 발언이, 그 청년을 더욱 안쓰럽게 했다. 

이후에 그 모자는 이런 저런 대화를 더 주고 받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게 들렸던 것은, 방금 들린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그 청년이 이제껏 살아오면서 들어왔을 그의 어머니의 말들이었다.

그 청년은 여태껏 그래왔을 것이다. 단순한 운전면허 시험이 아니라, 초중고 학창시절을 겪어오면서 작은 일과, 시험들마다 어머니에게 그러한 핀잔을 들어왔을 것이었다. 그 청년의 움츠린 어깨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속되어온 무언가로 인한 억눌림이었다.

이윽고 그 모자는, 내 앞 차례에 시험을 보았고, 나는 다음 차례에 시험을 보았다. 이번엔 아주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방금 전 먹었던 '청심환'으로 인해서가 아니라, 이번에 또 떨어진다해도 나를 낙오자라 생각하지 않을 가족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이기든, 지든 나를 응원해줄 가족으로 인해 무언가 든든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 마음으로, 경사로, 굴절코스, S자코스, T자코스, 급속구간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그리고 마지막 평행주차는 남는 점수로 가뿐하게 반주차만 하고 빠져나왔다.

"6호차 합격입니다."

곧이어, 감격스러운 소리가 면허장 내에 울려퍼졌다. 감독관이 묻지 않았음에도, 네 번 만에 붙는거라며 광고를 해대고서는 축하해줄 사람이 없는 면허장에서 혼자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다. 곧바로 집에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엄마가 전화를 받자마자 나보다더 기뻐하시며 말씀하셨다.

"오메~~ 우리 하라~ 엄마는 붙을 줄 알았어잉! 엄마가 혹시나 하는 맘에 니 붙게 해달라고 오늘 새벽기도까지 갔다 왔는디~!  정말 축하해~ 우리 딸!"

기능시험 때 오랜 시간 고생을 해서인지 도로주행은 단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었다. 정말 별거 아닌 데도 감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 다 따는 면허, 뭐가 대수이겠는가? 하지만 내가 딴 것은 면허뿐만은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끈끈한 사랑의 확인증이었다.

그것은, 비록 면허증을 따는 작은 과정에 불과했지만, 우리 가족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크고 작은 성공이나 실패를 경험할 때마다 이 면허증을 따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처럼 나를 위로하고 또 배려하며 축하해 줄 것이다.

이제는 면허증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뿌듯하다. 물론 일주일을 예상하고 등록했다가 한달이나 걸려 얻어낸 합격이서도 그렇지만, 가장 큰 연유는 면허증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우리 가족의 든든한 마음과 따뜻한 배려 때문이다.


태그:#운전면허증, #가족, #1조보통, #시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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