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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는 분이 경기도 이천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복숭아농사를 짓는 농원에 다녀왔다. 비 오기 직전의 후텁지근한 날씨가 고약했지만, 뜨겁고 달콤하게 익어가는 복숭아를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누런 봉지 옷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복숭아나무들 사이로 고추와 호박, 오이, 가지, 토마토가 사이좋게 잘도 자란다. 유기농, 친환경이 대부분 그렇듯 풀이 무성하다. 그 풀밭에 눈에 보일 듯 말듯 자라고 있는 여린 배추도 보인다. 농원주인은 주문에 맞춰 복숭아포장을 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날, 저녁으로 먹었던 제육볶음과 오이무침은 아주 특별했다. 설탕이나 요리당으로 단 맛을 내는 대신, 복숭아가 들어간 요리의 단 맛을 처음 경험한 것이다. 고기를 재거나 무침 등을 할 때, 배만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이 확 바뀌었다. 복숭아농사를 짓는 곳에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지 그곳에선 음식의 단 맛이 필요할 때는 복숭아가 먼저 앞장 선다.

도시에서 복숭아를 양념으로 쓰기는 쉽지 않다. 마트에는 랩을 씌워 포장한 주먹만한 크기의 복숭아 네 개에 판매가격이 7천원이다 (2010. 7. 16. 경기도 구리시 수택동 하나로농협마트 기준). 많이 나오는 때가 아니라서 가격대가 아직은 세다. 농원에서 실컷 먹고 한보따리 얻어온 복숭아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도 먹고, 식구들 입에 한 조각씩 넣어주기도 한다. 부드럽고 수분이 많아 여름철 갈증해소로 이맘때 딱 맞는 과일이다.  

벌레먹은 복수아 두개를 늙은 오이와 무칠까?
 벌레먹은 복수아 두개를 늙은 오이와 무칠까?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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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내 입이 호사했다. 태양과 맞장 뜬 힘센 복숭아를 먹는 맛이 특별했다.
 아침마다 내 입이 호사했다. 태양과 맞장 뜬 힘센 복숭아를 먹는 맛이 특별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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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썰어둔 복숭아.
 채 썰어둔 복숭아.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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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채가 들어간 양념.
 복숭아채가 들어간 양념.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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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채가 들어간 오이무침, 아니 오이가 들어간 복숭아무침.^^
 복숭아채가 들어간 오이무침, 아니 오이가 들어간 복숭아무침.^^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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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거 뭐야?"
"그거 복숭아야. 채 썰어서 무쳤어."

복숭아를 넣어 오이무침을 했다. 마침 늙은 오이가 있어서 양파와 같이 '벌레먹은' 복숭아 두 개를 적당하게 채 썰고, 고춧가루와 파, 마늘을 넣고 살살 버무리니 그 맛이 별미다. 아삭거리는 오이와 양파 중간에 씹히는 말랑한 복숭아의 달큰함이 식구들에겐 낯설고 색다르다. 

며칠 동안 복숭아는 이렇게 우리주방에서 여러 가지 음식에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배추 겉절이를 할 때는 조각을 내어 손으로 꽉 짠 다음, 손에 남아있는 복숭아건더기는 내가 먹고 겉절이는 알맞게 달았다. 어묵볶음이나, 김장김치를 볶을 때도 복숭아단맛이 자연스럽게 스몄다. 돼지고기로 양념불고기를 잴 때는 담담한 단 맛이 압권이었다. 

비싼 복숭아로 별 짓을 다 하는 동안, 음식을 즐겁고 재밌게 만들었다. 호사했던 입은 자꾸 아쉽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옥답'에도 송고했습니다. 농원사진이 없어서 무척 아쉽지만 다음 기회에 올릴 생각입니다.



태그:#벌레먹은, #복숭아,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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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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