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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적과의 동침>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91년에 나온 미국영화다. 올해 같은 제목의 한국영화도 제작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관점은 다르지만 철새들이 적과 동침하고 있는 곳이 있다.

 

새들에게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다. 생태계의 강자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더 무서운 게 환경오염이고, 그것은 결국 사람의 행위인 탓이다. 하여, 새들이 살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은 사람이 없는 곳이다. 무인도나 인적이 드문 섬에 철새가 많이 사는 것도 그런 연유일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마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철새 서식지다. 새와 이 새들의 적인 사람이 공존하는 곳. 전라남도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 상동마을이다. 이 마을에 있는 용연저수지와 그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청용산이 백로와 왜가리들의 집단 서식지다.

 

이 서식지는 새들의 적인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바짝 붙어 있다. 새와 사람이 함께 사는 곳이다. 보기 드문 풍경이다. 새들에게 사람은 가장 큰 적이지만, 이곳에 사는 백로와 왜가리 떼는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마을사람들이 잘 보살펴 준다. 마을에 서식지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동마을 사람들의 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새들에 해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을뿐더러 주민들이 감시자가 되어 새에 해를 끼칠 만한 사람의 접근도 막고 있다. 주민들은 차량의 경음기를 누르지 않는 것은 물론 목소리 높여 싸우지도 않는다. 그만큼 주민들이 백로와 왜가리에 애착을 느끼면서 이 새들이 마을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새들이 많으면 주민 피해가 상당한 건 당연한 일. 새떼의 울음소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치 수백 마리의 개구리가 한꺼번에 우는 것 같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크게 불편해 하거나 개의치 않는다. 이미 새와 함께하는 생활이 일상이 돼 있다.

 

이 마을의 왜가리와 백로는 춘분을 전후해서 찾아든다. 여기서 알을 낳고 번식을 하다가 10월에 동남아로 다시 이동한다. 주민들은 이 새들이 마을의 액운을 없애주고 또 마을을 부흥시켜 준다고 믿고 있다. 처음 찾아든 뒤 한 해도 거르지 않던 백로와 왜가리가 한국전쟁 때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의 액운을 없애준다는 증표다.

 

 

이곳 용월리가 이른바 '학마을'이 된 것은 1960년대 중반이다. 8·15해방을 전후해 날아들기 시작한 백로와 왜가리는 한국전쟁 이후 뜸하다가 1960년대 중반 백로 2000여 마리와 왜가리 500여 마리 그리고 해오라기 수십 마리가 찾아들면서 서식지를 이뤘다. 지금도 청용산과 용연저수지를 중심으로 수천 마리가 살고 있다.

 

청용산이 온통 새들로 희끗희끗할 정도다. 마치 눈이 내린 것 같은 풍경이다. 멀리서 보면 흰 빛이 반짝거리는 것 같다. 가까이 가야 비로소 새의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산이 온통 새들의 땅이고 천국이다.

 

노랑부리백로를 제외한 모든 백로와 왜가리는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다만 이 새들이 모여 사는 서식지가 천연기념물일 뿐이다. 이곳도 지난 1968년 천연기념물(제211호)로 지정됐다. 이곳이 백로와 왜가리 땅이라는 게 공인된 셈이다. 법적으로 백로와 왜가리들의 땅이다.

 

이곳의 백로와 왜가리를 탐조하기엔 지금이 적기다. 번식기인데다 개체수가 가장 많은 것도 지금이기 때문이다. 하루 중에서는 먹이를 찾아서 물고 돌아오는 오전 10시와 오후 4시 전후가 가장 아름답다. 입에 무언가 물고 부산하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하고, 자기들끼리 몸을 부대끼며 사랑을 속삭이는 무리도 보인다. 이리저리 날갯짓을 하며 비행시범을 보이는 무리도 볼 수 있다.

 

보통 철새탐조는 멀리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것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보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곳의 백로와 왜가리는 그럴 필요도 없다. 누구나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주민들과 친해져서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전혀 경계를 하지 않는다. 청용산 앞 용연저수지에 둥근 섬이 있다. 그곳에 새들이 많은데 불과 10여m 앞이다.

 

주차장 한켠에 전망대도 있다. 그곳에선 대형 망원경으로 산자락에 있는 새들을 살필 수 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새의 깃털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 보통 망원경을 통해 보려면 500원짜리 동전 하나는 넣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도 필요 없다. 학마을의 넉넉함을 엿볼 수 있는 망원경이다.

 

백로·왜가리 집단 서식지는 서해안고속국도 무안나들목과 무안읍 사이에 있다. 무안나들목에서 무안읍으로 1.5㎞정도 가면 무안읍 우회도로 나오는데, 여기서 옛 국도로 빠지면 바로 오른쪽으로 '백로·왜가리 집단서식지' 입간판이 있다. 이 표지판을 보고 논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지금 확포장 공사가 진행중이지만 들어가는데 불편은 없다.

 

 

백로와 왜가리 떼를 본 다음엔 무안군 몽탄면으로 가는 것도 좋다. 몽탄면 이산리(배뫼마을) 영산강변에 가면 '식영정'이 있다. 조선시대 우승지를 지낸 한호(閑好) 임연(1589∼ 1648) 선생이 말년에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다.

 

담양의 식영정(息影亭)은 '그림자가 쉬는 정자'라는 의미로 '그림자 영(影)'자를 쓰고 있다. 서정적인 느낌의 식영정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토대가 된 곳이다. 반면 이곳의 식영정(息營亭)은 '경영할 영(營)'자를 쓴다. 뜻을 품은 선비들이 미래를 경영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역할을 했던 곳이다. 굽이도는 영산강과 드넓은 동강들녘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울창한 팽나무와 여러 그루의 고목이 운치를 더해 준다.

 

 

몽탄면 사창리에 가면 호담항공우주전시관도 있다.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이 마을 출신 옥만호씨가 만들어 놓은 전시관이다. 올해 한국전쟁 60년이 되는 해인데, 남도에서 전쟁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 그런데 여기에 가면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실물 항공기와 전투기, 헬리콥터 그리고 연습용 비행기(건국기)를 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기를 만든 라이트형제 이야기에서부터 로켓의 원리와 구조까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실내전시관도 있다. 분청사기 도요지와 승달산 법천사, 목우암도 여기서 가깝다.

 

무안은 뻘낙지의 본고장. 두 말이 필요 없는 대표적인 먹을거리가 뻘낙지다. 이 뻘날지를 재료로 한 탕과 볶음, 전골 등 갖가지 요리가 별난 맛을 자랑한다. 된장연포탕도 있다. 물에 된장을 풀고 무와 양파, 팽이버섯,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뻘낙지를 넣어 끓인 탕이다. 국물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속풀이에 으뜸이다. 짚불에다 돼지고기를 구워서 내는 돼지짚불구이도 몽탄면에서 맛볼 수 있다.

 


태그:#학마을, #무안, #용월리, #상동마을, #식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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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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