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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산하 SH공사는 고등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분양원가 관련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숨기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22일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이 사무실 한쪽에 쌓인 12개의 A4 용지 상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분양원가 공개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는데, 이번 건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최근 경실련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는 SH공사를 상대로 간접강제 신청을 법원에 냈다. SH공사가 법원의 판결대로 자료를 내놓지 않을 경우, 하루에 1억 원씩 벌과금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김헌동 단장은 "수년간의 공방에서 건설회사의 이익을 대변하고 고등법원 판결 이후에 자료 제공이 6개월 이상 지연된 것 등을 보면, SH공사가 불리한 자료를 빼는 등 자료를 조작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앞장서 분양원가 공개했던 오세훈 시장인데..."

 

경실련과 SH공사가 공방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 2월과 8월 서울 상암지구 5~7단지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공개했다. 원가 대비 50~60%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나타났고, 경실련은 이 자료를 분석한 결과 더 큰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7년 4월 발산·장지지구 특별공급 아파트의 분양원가를 더욱 상세하게 공개했다. 이에 경실련은 같은 해 10월 이명박·오세훈 서울시장 때 지어진 아파트의 분양원가 내역을 검증하기 위해 SH공사를 상대로 22개 아파트 단지의 분양원가 상세자료에 대한 정보공개를 요청했다.

 

경실련이 요청한 자료는 설계내역서, 도급·하도급 내역서(최초·최종), 도급·하도급 대비표, 계약서 등이다. 이에 대해 신영철 경실련 정책위원은 "자료가 공개될 경우, 대형건설업체가 SH공사로부터 아파트 건설을 발주받은 공사비용 중 하청업체에 지급한 금액을 뺀 '진짜 건설원가'를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헌동 단장은 "대형건설업체가 '삽질' 한 번 안 하고 폭리를 취하는 구조도 밝힐 수 있다"고 전했다.

 

경실련은 정보공개 청구를 하면서 "전향적인 서민주택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오세훈 시장의 진정성에 큰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SH공사는 한 달여 동안 정보 공개를 미루더니 결국 공개를 거부했다.

 

SH공사는 공개 거부 이유로 도급·하도급 내역서 등의 자료는 건설사들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중대한 영업기밀이라는 점을 들었다. 이는 1년 7개월 동안 이어진 지루한 소송전의 시작이었다.

 

1년 7개월 재판에 자료 늑장 제출, 부실자료 제공까지... 경실련 "조작 가능성"

 

 

경실련은 2008년 2월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냈다. 경실련은 "도급·하도급 내역서 등의 자료는 건설회사의 정당한 이익을 훼손하지 않고 오히려 국민의 재산과 생활을 보호한다"며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자료가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SH공사는 법정에서 건설사만 대변했다. SH공사는 경실련의 주장에 대한 답변서에서 "도급시공사(대형건설사)는 영업비밀 유지 등의 이유로 정보공개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고, (SH공사는) 이를 수용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경실련의 손을 들어줬다. 2008년 10월 서울행정법원은 "도급·하도급 내역서 등의 공개가 건설업체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한 이미 분양원가를 공개했고, 서울시민의 주거생활을 안정시키고 복지를 향상시킨다는 SH공사의 설립목적에 비춰보면 SH공사는 관련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SH공사는 서울고등법원에 즉각 항소했지만, 2009년 9월 또 패소했다. 이후 SH공사는 갑작스레 태도를 바꿔 상고를 포기했고, 6개월이 지난 올해 4월 관련 자료를 경실련에 제공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온전하지 못한 자료였다는 게 경실련의 설명이다. 김헌동 단장은 "도급내역서의 경우, '최초 내역'이 빠진 곳이 많아 도급금액이 처음 계획보다 얼마나 증가했는지 확인이 불가능하다"며 "또한 내역만 있고 목록이 대부분 누락된 하도급 내역서의 경우, SH공사에 불리한 내역이 빠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경실련이 요구하는 자료는 원도급자로부터 제출받아 보관하는 자료로서, 의지만 있다면 한 달이면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며 "SH공사가 고등법원 판결 이후 8개월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된 자료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자료를 임의로 수정하거나 조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경실련은 현재 법원에 간접강제 신청을 냈고, 법원은 지난 9일 SH공사에 6월 30일까지 누락된 자료를 제공하라고 명령한 상황이다.

 

SH공사 "자료가 많아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곧 공개할 것" 해명

 

한편, SH공사 설계기준팀 관계자는 경실련의 간접강제 신청에 대해 서면답변을 통해 "관련부서가 다수이고, 공개 자료량이 많아 자료취합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며 "조만간 (경실련이 요구한 자료를) 공개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서울고등법원에서 패소한 후 항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승소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밝혀, 법원의 판결에 마지못해 수긍한 것이라는 태도를 내비쳤다. 이어 "지금껏 SH공사가 자료 제공을 거부한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뜻이냐?"는 지적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태그:#분양원가 공개, #정보공개 청구, #경실련, #SH공사, #오세훈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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