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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은 무려 50~60종이란다. 그중 하나인 서울제비꽃
 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은 무려 50~60종이란다. 그중 하나인 서울제비꽃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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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일마다 배배 꼬이고, 사소한 말 한마디로 시시비비를 따져야 할 때가 있다. 올 4월은 내게 그런 달이었다. 심지어는 별다른 대가 없이 애써 해준 일이 화근이 되어 억울한 지경에까지 몰리기도 하면서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었다.

이렇게 사람 때문에 지쳐 있던 어느 날, 메일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야생화를 좀 더 알고 싶어 지난해 6월에 가입한 한 야생화 카페에서 보낸 '야생화 기행' 관련 단체 메일이었다. 난 10개월 동안 이 카페를 거의 잊고 있었다. 가입 당시 단 한 번 갔을 뿐이었다. 열람을 하고자 정회원 등업을 위해 짧은 가입인사를 남기고 더 이상은 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난 야생화 기행 자체에 약간은 회의적이었다. 시골 태생이라 늘 들꽃들을 보고 자라 꽃에 관심이 많지만, 야생화를 찾아 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먹고 살기 바쁜 내게는 사치 같았다. 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꽃부터 아는 것이 좋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무심결에 메일을 열게 되었고 그동안 사진으로만 본 얼레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혹해 기행까지 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K산에서 지난 수년 동안 그렇게 만나보고 싶어 했던 얼레지 군락을 만났고 말로만 듣던 태백제비꽃과 털제비꽃을 만났다. 처녀치마는 아직 꽃을 피우지 않고 있었는데 그 자리를 떠날 때까지 그렇게 많은 얼레지가 피어 있다는 사실이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제비꽃 6종을 모두 만난 그날, 행복했다

멸종위기라 보호종(제27호)으로 지정되었다는 깽깽이풀
 멸종위기라 보호종(제27호)으로 지정되었다는 깽깽이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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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기행지 퇴촌 어디쯤에서 보호식물 제27종 보호종이라는 깽깽이풀과 화원에서 몇 번 본 적 있는 야생의 앵초를 만났다. 야생의 앵초는 무척 건강해 보였다. 깽깽이풀은 이날 처음 알았다. 가녀리고 어여쁜 소녀를 연상하게 하는 깽깽이풀 앞에서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며 웃었더니 함께 간 어떤 이가 "옛날 사람들이 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잡아 깽깽이라고 불렀는데 그 깽깽이"라고 일러 줬다.

천남성, 피나물, 나도개감채, 괭이눈, 복수초, 흰털제비꽃, 알록제비꽃, 으름덩굴꽃, 다화개별꽃, 괴불주머니, 금붓꽃 등, 세 번째 기행지에서는 더 많은 꽃들을 만났다. 모두 이름만 들었지 처음 본 것들이라 '정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거듭 들고 있었다. 낯선 사람들과 수많은 야생화들과 어울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지난 며칠간의 시시비비가 부끄러워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은 무려 50~60종이란다. 그중 하나인 알록제비꽃.잎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은 무려 50~60종이란다. 그중 하나인 알록제비꽃.잎이 특이하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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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야생화 기행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제비꽃 6종류를 하루에 모두 만났다는 것이었다. 난 수많은 꽃들 중 제비꽃을 가장 좋아한다.

어린 시절 봄이면 담 밑이나 길가, 밭둑 등에서 가장 흔하게 보고 자라며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있을까' 어린 마음에도 신기해했던지라, 제비꽃을 볼 때면 어린 시절의 고향과 부모님이 떠오르곤 했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더욱 좋아하게 됐다.

이렇게 좋아하는 제비꽃이건만 최근 2, 3년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50~60종의 제비꽃이 자란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주변에 흔하고 그게 그거 같지만, 제비꽃마다 종류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나니 제비꽃의 수많은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지라 3년째 제비꽃을 참 많이 찍었다. 그런데 남산제비꽃은 올해 처음 만났다. 야생화 기행을 가기 6일 전, 북한산 산행 중에 한 포기를 만났는데 활짝 피지 않아 아쉬웠다. 그런데 세 번째 기행지에는 남산제비꽃이 몇 포기나 보여서 정신없이 찍었다.

정신 없이 사진을 찍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려다 5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남산제비꽃을 찍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됐다. 같이 간 회원이었다. 좀 떨어져 있었지만, 한 눈에 봐도 이제껏 내가 봤던 것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탐스럽고 예쁜 남산제비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만난 남산제비꽃은 겨우 2~3포기가 뭉쳐있는 정도였는데 언뜻 5~6포기는 넘을 것 같아 보였다. 그정도로 그 남자가 찍고 있는 남산제비꽃은 정말 예뻤다. 그리하여 그 사람이 어서 찍고 내 차례가 오길 기다리면서도 맘이 설렜다.

사진 찍자마자 제비꽃 뽑아버린 그 남자

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은 무려 50~60종이란다. 그중 하나인 남산제비꽃. 잎이 갈라졌다.
 우리나라에 사는 제비꽃은 무려 50~60종이란다. 그중 하나인 남산제비꽃. 잎이 갈라졌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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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진을 모두 찍은 그 남자가 다짜고짜 우악스러운 손으로 남산제비꽃을 뽑더니 등산 배낭 앞주머니에 후다닥 집어넣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사태에 당혹스러워진 나는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듯이 몸을 황급히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다가왔다. 당황한 나머지 난 조금 전에 촬영했던 남산제비꽃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그 남자에게 물었다. 그는 참 친절하게 그 옆에 있던 꽃들까지 설명해 줬다. 멀리 떨어져서 봤을 때보다 나이가 훨씬 들어 보인 그는 제법 비싸 보이는 덩치 큰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꽃에 대해 이렇게 잘 아는 사람이 제비꽃을 캐다 심으면 죽는다는 것을 왜 모를까? 6월쯤에 씨앗을 받아 뿌리면 되지 않나? 남산제비꽃이 그렇게 귀한 건가? 그래서 욕심냈나?'

꽃 한 송이 피지 않은,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이름 모를 풀들을 보는 족족 이제까지 전혀 들은 적도 없는 이름을 대며 척척 알려주는 그 사람과 10여 분 가량 어울리는 동안 좀 전의 일이 자꾸 생각났다. 멋진 제비꽃을 찍지 못한 아쉬움은 쉬 털어지지 않았다.

잊었다. 집에 돌아와 사진 정리를 하며 다시 떠올랐지만 그냥 잊었다. 그리고 지난 5월 2일, 다시 그 야생화 카페 기행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강원도 T산. 4월에 이어 일도 놓고 있었고 나 혼자 갈 수 없는 곳이라, 또 첫 번째 기행의 여운이 좋아 망설임 없이 참여했다.

강원도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산에서만 자란다는 한계령풀
 강원도 해발 1000미터 이상의 고산에서만 자란다는 한계령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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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기행이 거의 끝나고 부근에 있는 절에 들렀다. 등산복 차림에 저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러 맨 우리를 보면서 막 절에 들어서고 있던 한 일행이 우리 등 뒤에서 말했다.


"어디서들 왔소? 서울? 뭐 볼 것이나 있다고 그 멀리서 들 허구헌날 오는지. 그런데 볼 것이 있기나 있소? 아 이거? 그거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풀이지라. 그거 찍으러 왔소?"


강원도 주민으로 보이는 그 남자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산괴불주머니 포기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춘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그 남자는 덧붙였다.

"그런데 사진작가 선상님들이요? 선생님들도 이쁜 꽃을 찍고 그 꽃을 망가뜨리오? 가끔 보면 그런 선상들도 있던데…."

설마 그럴까? 얼토당토 않지! 난 그 아저씨에게 "꽃을 찍는 사람들은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설마 그럴라고요. 말하기 좋은 누가 지어낸 말 아닌가요?"라며 반문했다. 하지만 함께 걷던 일행 몇이 한 마디씩 했다.

야생화 붐에 몸살 앓는 우리 꽃들

'동강할미꽃, 몸살'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처럼 '1997년에 한 사진작가 때문에 널리 알려진 이후 봄이면 사진 작가나 야생화 모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동강할미꽃이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가 여럿 검색된다.
 '동강할미꽃, 몸살'을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처럼 '1997년에 한 사진작가 때문에 널리 알려진 이후 봄이면 사진 작가나 야생화 모임,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동강할미꽃이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가 여럿 검색된다.
ⓒ 웹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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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말씀.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대요. 다른 사람들도 그 꽃을 보고 찍으면 자기 사진이 죽으니까 좋은 모델이 보이면 자기만 얼른 찍고 꽃을 꺾어버리거나 깔아뭉개거나 뽑아 없애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그 꽃을 찍지 못하고 그만큼 자기 사진이 돋보이잖아요. 의외로 유명한 사진가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작품사진을 찍는다고 스프레이에 물을 담아와 뿌리며 이슬 맺힌 것처럼 해서 찍는 사람들도 있는데 수돗물을 받아와 뿌리는 사람들도 태반이래요. 야생화에게는 정말 안 좋은데."

"그거는 양반이게? 심지어는 자동차용 스프레이를 뿌리는 사람도 있던데?"

"좋은 사진 찍는다고 주변에 있는 낙엽 같은 것들을 말끔하게 치우고 사진 찍는 사람들도 많은데, 사실 그것도 야생화에게는 좋지 않아요. 낙엽이 야생화에게 필요한 습기나 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거든. 그러니 함부로 치워서는 안 되는 거지. 그런데도 당연하다는 듯 치우고 찍은 다음에 원래대로 해놓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데 잘못하면 죽기도 해요."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날 그 남자가 사진을 찍은 후 남산제비꽃을 우악스런 손으로 무지막지하게 뽑아 버린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사진을 찍자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동강할미꽃이 몸살 난다는 기사도 떠올랐다. 두 차례 야생화 기행 중 사진을 찍다가 봤던 무참히 밟혀버린 꽃 몇 포기도 떠올랐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소행이겠지만 희귀한 야생화를 찾아서 전국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사진이 먼저인지 야생화가 먼저인지 묻고 싶다.


태그:#야생화, #남산제비꽃, #사진, #한계령풀, #깽깽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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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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