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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 투표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씻을 권리'를 헌법에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기 씻을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환경미화 노동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13일 오후 1시 반 국회 의원회관 로비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민주노동당 등 10여단체로 구성된 '환경미화노동자에게 씻을 권리를!국민캠페인단'이 출범식을 갖고 '환경미화노동자의 씻을 권리'를 요구했다.

 

환경미화원 출신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환경미화원이 국회에 왔는데 아직까지 환경미화원 이용시설이 나아지지 않아 참담하다"며 "청소업무는 공적 영역인 만큼 민간위탁이 아닌 지자체가 나서서 환경미화원 환경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정혜경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출범식 기자회견에서 "일하던 그대로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고 집에 가는 분들이 55%나 된다"며 "환경미화원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입었던 옷 그대로 집에 가는 상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 부위원장은 "열악한 작업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환경미화노동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 노동자들의 씻을 권리를 보장하고 나아가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촉구하고자 국민캠페인단을 출범하려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날 출범식에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해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소속 환경미화노동자 20여 명이 함께 했다. 하지만 출범식과 함께 사진전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의 관심도는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공적서비스인 쓰레기 수거업무, 민간위탁은 안 돼"

 

이어진 '환경미화원 건강권 보호를 위한 토론회'에서는 쓰레기 수거업무의 민간위탁 문제점 지적과 함께 환경미화행정의 바람직한 운영방안에 대한 모색이 함께 이뤄졌다.

 

발제를 맡은 남우근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 정책위원은 "쓰레기 수거라는 공적 서비스 향상을 위해서 민간위탁이 아닌 지자체의 직접 운영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남 위원은 민간위탁의 문제점으로 ▲ 항상적인 고용불안 ▲ 차별적인 저임금 ▲ 예산 낭비와 서비스 질 저하를 꼽았다. 남 위원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민간위탁은 대부분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활용하는 외주 용역화라는 것.

 

남 위원은 "비정규직 활용을 통해 공적 서비스 질을 높이려는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 남 위원은 "공공서비스의 질 저하라는 원칙적 문제를 제외하고라도 민간위탁 업무 단가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환경미화행정의 바람직한 운영을 위해서는 자치단체의 직접운영, 직영과 민간위탁 중간 형태인 공영화 등의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인욱 좋은예산센터 사무국장 역시 "민간위탁 관련 비리 사례도 있듯이 개선이 시급하다"고 공감했다. 나아가 최 사무국장은 환경미화 업무를 직영이나 민영으로 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 주민들에게 직접 물어볼 것을 제시했다.

 

최 사무국장은 "환경미화는 매우 직접적인 대민 서비스인데 공무원들이 탁상공론으로 단번에 운영형태를 바꿔버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환경미화원 얼굴의 미생물 790개, 사무직의 약 260배

 

이날 토론회에서는 환경미화원들의 씻을 권리 요구와 함께 열악한 작업환경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산업위생실장은 "작업을 끝낸 환경미화원의 얼굴과 옷의 미생물을 채취한 결과 환경미화원 얼굴의 미생물은 790개로 사무직 연구원 얼굴의 3개에 비해 무려 260배나 높은 수치"라고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김 실장은 "쓰레기 처리장은 주거단지로부터 멀리 쫓겨나는 현실 속에서 환경미화원들은 썩은 고기, 동물의 분변, 구더기 등 오물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온 몸에 묻은 상황에서도 씻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환경미화원들이 근무하는 작업현장을 둘러보고 왔다는 김 실장은 "환경미화원들은 대부분 호흡장애, 눈 따가움, 기침 등을 호소했으며 피부이상도 많았다"며 "조사결과 회사에서 마스크를 제공하는 경우는 20%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최동호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담당자는 "환경미화노동자 노동환경을 위한 (정부의)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며 "앞으로 신중하게 쓰레기 수거 현장을 방문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동부에서 나온 이정인 사무관도 "노동부차원에서 쓰레기 수거현장에 대한 감독과 제도개선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컵도 버리세요" 소리에 바닥에 주저앉아 울어

 

그러나 무엇보다 환경미화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인식이 높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현재 경기 안양 청소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최봉현(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부위원장)씨는 발제에 앞서 성남에서 정년퇴임을 앞둔 한 환경미화원의 사례를 소개했다.

 

"40대에 사업이 망하고 먹고 살기 위해 환경미화원을 시작한 이 분은 더운 여름날 주택가를 청소하다가 젊은 아주머니에게 물 한 잔을 부탁했고 친절한 아주머니는 물 한 잔을 주셨다. 하지만 이 환경미화원이 물을 마시고 컵을 아주머니에게 주자 아주머니는 '컵도 버리세요'라고 말했다. 순간 이 분(환경미화원)은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고 한다."

 

최씨는 이것이 환경미화원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들에게 아빠 직업은 환경미화원이라고 이야기 한다"며 "내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아빠는 환경미화원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이 나만의 꿈이 아니길 바란다"며 바람을 전했다.

 

고정근 환경정의 국장은 "환경미화원의 사회 가치를 높이려면 스스로도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고 국장은 "환경미화원은 단순히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쓰레기가 더럽다고 안 줍는 환경미화원은 없다"

 

토론회의 발제가 모두 끝났지만 환경미화원의 실질적인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는 방청석의 목소리는 그칠 줄 몰랐다.

 

경상남도에서 올라왔다는 한 환경미화원은 "환경미화원의 전반적인 문제를 위탁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건강권'의 문제로 접근해줬으면 좋겠다"며 "노동부도 민간업체나 직영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에서 나아가 환경미화원 작업환경에 대한 정확한 산재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환경미화원은 "뺑소니나 음주운전 차량에 목숨을 잃는 환경미화원이 많은데 이들에게 도로 위에서 (쓰레기를) 쓸어야 하는지 밑에서 쓸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작업방법'까지 노동부가 제시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안전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미화원에게 씻을 수 있는 환경에 앞서 시급한 것은 쓰레기작업량 처리를 위한 인원증감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다른 방청객은 "환경미화원에게 손 씻을 수 있는 환경, 목욕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준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며 "손 씻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도 할당량 때문에 커피를 마시고 손 씻을 시간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소방관이 무서워서 불을 피하진 않는다. 경찰이 무서워서 도둑을 피하지는 않는다. 환경미화원이 더럽다고 쓰레기를 피하지는 않는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실장은 "각종 오염물 등 더러운 환경으로 인해 환경미화원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유일한 길은 그분들의 의견을 정부부처가 귀 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라며 "환경미화원도 결코 쓰레기가 더럽다고 피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해 이를 듣던 방청석의 환경미화원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태그:#환경미화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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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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