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50cc 급의 스쿠터와 크기나 모양이 같다고 보면된다. 머플러가 보이지 않는 외관이 다를 뿐.
▲ 화물택배로 배달된 스쿠터 50cc 급의 스쿠터와 크기나 모양이 같다고 보면된다. 머플러가 보이지 않는 외관이 다를 뿐.
ⓒ 임준연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스쿠터를 장만했다. 모양도 잘 빠진 게 요즘 젊은 애들이 보면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다. 바람을 가르며 경쾌하게 달리는 스쿠터에 센스 넘치는 소품을 걸치고 있으면 주위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30대 후반, 감각은 떨어졌지만 스쿠터에 오르면 젊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구매까지는 쉽지 않았다. 무려 6개월여를 고민했다. 처는 나에게 괜히 겉멋 들어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그런다며 반대했다. 어느 날 이후론 너무 위험해서 안 된다고 역성을 내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결국 마음먹은 대로 사고 말 것이라는 것을. 끝내 허락을 받고 말았다. 아자.

스쿠터 구매는 "기름을 쓰지 않고 사는 방법은?"이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차 대신 스쿠터가 기름이 훨씬 적게 먹힌다는 사실은 그 물음의 답이 되지 못한다. 그것보다 좀더 급진적인 해답. 아예 기름 없이 달리는 것이다.

난방이나 차량을 위해, 농사짓느라 밭을 갈면서도 쓰게 된다. 거의 모든 생필품과 가구·가전제품·장식품·기구 등은 석유화학제품이니 우리는 기름을 입고, 먹고, 쓰며 사는 것이다. 나는 그러기가 싫어졌다. 모르면 몰라도 뻔히 미래가 보이는데 거기에 기대어 살다가 갑자기 겪게 될 '충격'에 대비하고 싶어졌다. 자라나는 아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제일 눈에 보이게 기름을 많이 쓰는 것은 보일러와 차(탈것)다.

집을 지으면서 난방을 고민했다. 화목 보일러로 기름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비용 면이나 환경 면에서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보일러 비용이 5배 이상 차이가 나는 현실에서 결국 돈을 가볍게 지출하는 쪽으로 기울어버렸다. 화목 보일러를 위한 장작들은 누가 해다 쌓아놓을 것이며 그렇지 못할 때는 결국 나무를 사다 부려야 하는데 그 비용도 마찬가지 아니겠냐는 주변인들의 이야기와 짧은 산수실력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결정에 대한 합리화로 충분했다. 일단 후퇴. 여전히 '지속가능한' 난방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 중이다. 소규모 장작 화로를 고민하고 있다.

'차'는? 3000cc에다가 무게만 1.5톤인 '골리앗'을 기껏 70킬로그램의 나를 위해 끌고 가는 것이 몹시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물론 왕복 6리터(거리 60km)의 기름값만 생각하자면 만원이 안 되는 돈으로 그 먼 거리를 편하게 오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차량의 감가상각까지 생각해보자. 매일 60여 킬로미터의 운행이 누적될 때 소요되는 각종 부속의 마모와 부품교체비용, 오일교체, 경정비 공임의 비용들과 화재보험료 등을 넣으면 하루 이동에만 만원 넘게 쓰는 것이다. 비용도 그렇지만 역시나 내 몸뚱이 달랑 하나 움직이는데 5인승 좌석의 짐도 없는 트럭이 움직여야 한다는 불합리함이 내 머릿속을 파고든 것이 결정적이었다(카풀이라도 했으면 이런 마음을 안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빠름'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뿌듯함'

작년부터 6개월 동안 이곳저곳을 검색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기름을 때지 않는 차량은 상용화된 것이 없었다. 저렴하고 기름을 소비하지 않는 '탈것'을 찾았다. 전기 자전거, 스쿠터가 있었다. 전기 오토바이는 국내에서 생산되어 판매하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최근에 국산 전기 스쿠터가 출시되었으나 200~300만 원의 가격이 꽤 비싸다).

2년 전부터 국내 전기 오토바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스쿠터 브랜드를 찾을 수 있었다. 물론 중국산이다. 6개월 할부하면 지금 한 달 소비되는 기름값과 매달 지출해야 할 스쿠터 값이 비슷했다. 출퇴근을 6개월 하면 스쿠터 값이 빠진다. 충전을 위한 전기는 한달 5000원. 게다가 기름 한 방울 소비하지 않고 전기를 충전해서 이동할 수 있다. 신난다!

혹시 언덕길에서 서버리면 어떻게 하지? 정속 주행 시 80킬로미터를 주행한다는 업체 설명에도 불구하고 불안했다. 한번 '겔겔거림' 없이 엑셀 손잡이를 당기는 대로 움직여 주었다. 다행히 출근하고 충전하고 퇴근하는데 성공했다. 손가락이 꽁꽁 얼어도 입은 헤벌쭉 벌어졌다.

오늘이 기름 없이 출퇴근한 지 4일째다. 쌀쌀한 아침 날씨에 온몸에 1시간 동안 바람을 맞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손발이 얼고 다리가 펴지지 않을 정도다. 콧물 범벅 코에 볼은 탱탱 붓기도 한다. 날이 풀리면 이런 괴로움도 사라질 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왜 서두르냐 한다. 이유는 몸이 겪는 괴로움을 이기는 기쁨 때문이다.

스쿠터에서 내릴 땐 뿌듯하다. 이동에 걸린 시간은 '얻었다'는 생각이다. 주변을 돌아보고 자연의 변화를 출퇴근길에 몸소 느끼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차량으로 보지 못할 그 '느림'이 주변의 꽃과 나무들을 눈에 담게 한다. 도로와 주변의 풍경, 집과 마당의 부속물들까지 보이고 하늘과 구름, 숲속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빠름'이 주는 것보다 훨씬 더 풍요로운 느낌이다.

덧붙이는 글 | '진안신문'에 기고했습니다.



태그:#전기스쿠터, #오일쇼크, #오일피크, #지속가능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