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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을 몽트뢰는 시용 성으로 더욱 유명하다
▲ 시용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레만 호수 아름다운 마을 몽트뢰는 시용 성으로 더욱 유명하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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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만 호수의 물비늘은 오후 늦도록 파들거린다. 잦아드는 태양빛에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호숫가에는 헤엄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갈처럼 깔려 있고, 일광욕을 즐기는 연인들은 설풋 잠이 든 듯 고요해 보인다.

여기는 '스위스 리비에라의 빛나는 진주'로 불리는 몽트뢰. 차이코프스키,바그너,릴케가 사랑한 마을.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시용의 죄수>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더욱 유명해진 시용(Chillon) 성이 있는 곳.

호수를 천연의 해자로 삼은 시용성은 9세기에 처음 세워졌지만, 12~13세기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대주교의 성으로 지어졌다가 사부아 공작의 저택이 되고, 한때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지체 높은 귀족의 저택이었으면서 죄수들의 감옥이기도 했다니, 이것이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성(城)'에 대한 이미지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부분이다.

긴 소맷자락을 늘어뜨리고 뾰족한 보닛을 쓴 채 군중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름다운 공주가 사는 곳인가 하면, 누군가의 분노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성루에 갇히기만 하면 머리카락이 바닥까지 자라도록 결코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이 바로 성(城)이라는 게, 어린 시절 무수하게 읽은 공주 시리즈를 통해 각인된 이미지이다.

특이한 구조를 가진 시용성에는 세 개의 안뜰이 있다. 사진은 세번째 안뜰
▲ 시용 성의 안뜰 특이한 구조를 가진 시용성에는 세 개의 안뜰이 있다. 사진은 세번째 안뜰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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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용성의 뜰에서부터 시작되어 1번부터 46번까지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밖에서 바라볼 때에는 아름답고 견고해 보이지만 안을 둘러보다 보면, 한여름인데도 서늘한 기운과 음산함이 느껴진다. 겨울이 되어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두터운 태피스트리를 겹겹이 내려뜨린다 해도 돌덩이가 전해주는 냉기를 견뎌내기는 쉽지 않을 것만 같다.

바위가 삐죽삐죽 그대로 드러난 지하 감옥에는 처형실도 있었고, 죄수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손바닥만한 창도 있었다. 닿을 수 없는 고딕식 궁륭천장이 더욱 아름답고,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호수 물결이 더욱 아득한 것은 지하 감옥이기 때문이리라.

반갑게도 한국어로 된 안내서를 받을 수 있다
▲ 시용 성 입구 반갑게도 한국어로 된 안내서를 받을 수 있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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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감옥을 기어 나와 지상의 성 내부를 순서대로 돌아보았다. 어둡고 가파른 계단들, 썰렁하게 뻥 뚫린 오래된 나무변기, 미로처럼 얽혀 있는 방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번호를 따라간다 해도 한번쯤 순서를 놓쳐버릴 정도다), 아무래도 이 성안에서 지낸다는 것 자체가 벌 받는 느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를 왕비처럼 대접해 주는 멋진 신사를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귀중품이나 사부아 가문의 고문서들이 보관되어 있다는 보물전을 돌아 나오는 길에는 시용성의 세 번째 안뜰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붕 없는 계단이 있었다. 계단이 끝나는 저 아래에는 작은 문이 달려 있는데, 금발머리 소년이 그 문을 놓지 않고 잡고 있다. 한 여덟이나 아홉 살쯤 되었을까. 소년은 나보다 한참을 먼저 내려갔는데도 다음 사람인 나를 위해서 문을 잡고 있는 것이다.

흠, 좋았어. 우아하게 왕비 걸음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볼까 싶은데, 어째 어린 소년은 안절부절이다. 보아하니 소년의 가족들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소년은 문을 계속 잡고 있어야할지 가족을 따라 가야할지 이쪽 저쪽 번갈아보며 갈팡질팡이다.

우아하게 내려가기를 포기하고 서두르면서 나는, 괜찮으니 가도 좋다고 외쳤다. 그런데 그 소년, 그 말을 듣고도 선뜻 문을 놓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는 눈치다. 나는 얼른 가족을 따라 나서라고 손짓을 했다. 그의 가족들은 성 안의 세 번째 안뜰을 벗어나 두 번째 안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소년은 결국, 자신의 예의를 다하지 못해 아주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가족을 서둘러 따라잡는다. 나는 멀어지는 소년에게 환한 미소를 날려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라는 표시로.

그러고 보니 외국인들은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주는 게 생활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나만 열고 들어가면 그만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심지어는 내가 연 문으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누군가 내 등 뒤에 찰싹 묻어 들어 올까봐 얌통머리 없이 문을 놓아버리기 일쑤인데. 또 어쩌다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 준다 해도 그 뒷사람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괜한 친절을 베풀었나 심사가 꼬일 때도 있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비로소 깨닫게 된다. 우리의 표정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고맙다는 말을 목구멍 아래로 삼켜 버리고 만 우리의 입이 얼마나 무뚝뚝한지를. 또 우리의 어깨가 얼마나 거칠게 다른 사람의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지를. 그러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얼마나 뻔뻔한지를.

11세기에 지어진 이 공간은 그 후 여러 차례 확장과 보수 작업을 거쳐 13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 지하의 고딕식 궁륭 천장 11세기에 지어진 이 공간은 그 후 여러 차례 확장과 보수 작업을 거쳐 13세기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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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트뢰로 넘어오니 같은 스위스인데도 모든 게 달라진 느낌이다. 강렬해진 건 태양빛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명랑하고 밝다. 레만 호수처럼 반짝이는 미소들을 짓는다. 그들의 환한 표정들은 태양처럼 빛난다. 프랑스 국경에 가까워서일까. 프랑스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우리는 예약해 놓은 숙소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고 몽트뢰에서 멀지 않은 비비(vevey)로 향했다. 경쾌한 파마머리를 한 롯지 하우스의 아가씨는 화사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아가씨는, 다음날 비비를 여행할 것인지 잠만 자고 떠날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우린 일찍 떠나야 한다고 말하자 상냥한 아가씨는 아쉬워하며 아침에 만나기 힘들거라고 미리 인사를 건네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주방에서는 키 큰 빡빡머리 여행자가 웃통을 벗어 던진 채 요리를 하고 있었다. 예의 바르고 흐트러짐 없는 게르만인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테라스 난간에는 비둘기들이 앉았다 날아가곤 했다.

잠을 방해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호숫가 가설무대에서 들려오던 축제의 음악소리도 어둠이 내리자 이내 멈춰버렸다. 잠만 낼름 자고 일어나 내일 아침 베네치아를 향해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아쉬워지는 밤이다.

13세기에 지어진 화장실의 나무 변기를 통해 내려다 보이는 바닥은 아득히 멀었다
▲ 시용 성 내부의 화장실 13세기에 지어진 화장실의 나무 변기를 통해 내려다 보이는 바닥은 아득히 멀었다
ⓒ 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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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2009년 8월, 2주 동안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스위스 고성, #몽트뢰, #레만 호수, #시용 성, #바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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