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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 너무 느려. 어떻게 먹고 살지?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이더라도 천천히 느릿느릿하다. 기껏 나뭇잎이나 가지를 먹고 살 뿐이다. 많이 움직이면 안된다.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에 무리가 있다. 근육을 키워서 빨라지거나 다른 먹이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저 느리게 움직이고 소화도 느리게 시켜서 무려 한달이 걸릴 때도 있다. 똥을 쌀 때는 조심해야 한다. 냄새 때문에 천적의 공격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에 매달려(늘어져) 평생을 보낸다. 거의 자다가 깨면 느리게 움직여서 이동하기 때문에 몸에 난 털에 푸른 이끼가 끼는 것도 당연하다.

 

'나무늘보'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엔 왜 저리 느린 동물이 있는 것일까. 곤충도 아니고 눈에 잘 띄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잡식동물이 저리 느려도 무리가 없는 걸까. 천적들에게 잡혀 (너무 잡기 쉬울 것 아닌가) 벌써 멸종되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래도 여태 살아 남았다. 지구의 가장 큰 위협, 인간. 그들의 벌목으로 서식지를 위협받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나무늘보에게 배운다

 

인간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나무늘보(Sloth)에게서 가져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저자도 그중 하나다. <슬로 라이프>(김향 역, 디자인 하우스 펴냄)의 저자 오이와 게이보는 '슬로 라이프'라는 슬로건을 주창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삶과 문화, 환경과 생태의 중심에 있는 '나'와 '우리'는 공통의 가치를 통해서 지금 지구 위에 닥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느림(슬로 Slow)'을 제시한다.

 

'빠름'과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 과연 '느림'이 어떤 비전을 제시할 것인가. 어렸을 때부터 빠르고 신속함으로 단련된 학생기를 거쳐 군대에 가면 빠름이 최고의 가치로 등극하는 한국사회에서 마르고 닳은 어른이 이 느림의 가치로 복귀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나무늘보다움이란 대체 무엇일까? 움직임이 느린 것은 근육이 적기 때문인데, 그것은 저에너지로 살기 위한 지혜다. 근육이 적어서 가볍기 때문에 가는 나뭇가지에도 매달릴 수 있으며, 그만큼 적으로부터의 위협도 줄어든다. 7~8일에 한번, 그들은 주변에 위험이 없는지를 잘 살핀 뒤 나무 아래로 내려가서, 땅에 얕은 구덩이를 파고 배설한다. 이것이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나무늘보는 나뭇잎을 섭취하여 얻은 영양의 50퍼센트를 그 나무에 되돌려 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키워준 나무를 거꾸로 지원하며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한다.

- 책 중에서

 

느리고 천천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사람답지 못한 삶'의 근거로 질책의 대상이다. 일명 '게으름'이라는 단어가 좋지 않은 뉘앙스로만 쓰이는 것과 같다. 우리는 경쟁사회 속에서 서로 앞서 달려야만 행복을 잡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를 당연시여기고 다른 가치를 배척하는 것에도 익숙해져 있다.

 

여럿이 공유하는 가치와 떨어진 생각을 하며 산다는 것은 공포다. 며칠 전 고려대를 나온 김예슬씨도 그 틀에서 벗어나기까지 엄청난 고민과 지적 에너지를 썼을 것이 분명하다.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기. 그만큼 힘들다.

 

애당초 경쟁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가 바로 공포다. 암흑 속에 존재하는 공포.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해질지 모른다', '거지가 될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다. 혹은 '병에 걸리면 의사에게 가야 하는데, 어쩌면 병원에 갈 돈조차 없을지 모른다'고 하는 공포다. -책 중에서

 

'느림'의 중심잡기

 

"넌 너무 게을러. 좀 부지런해야 하지."

 

학교 다닐 때 듣던 말을 어른이 되어서도 듣는다. 도시를 떠나 시골로 내려와서 살면서 이곳저곳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하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착착 되어가지 않을 때는 이런 소리가 곱게 들리지 않는다.

 

먹고 살 땅을 놀리는 것에 대한 마을노인들의 애정 어린 충고와 집짓기에 있어서 '생태적 집짓기'의 의미를 그대로 실현하느라 비효율에 관한 충고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서 딱지가 앉았다. 무슨 소리를 해도 대범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도 그렇지 못한 것은 내 마음에 중심이 서지 않았다는 뜻이다. 스스로가 흔들리니 주변 말이 내 마음을 더 어지럽히는 것이다.

 

'뭘, 먹고 살지?'

'내년 일을 그만두면 보험료와 공과금은 어떻게 하지?'

 

1년 후에 일을 걱정하고 오늘 닥친 일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만다. 두려움. 공포가 뿌리 깊게 내린 결과다.

 

빈곤이란 풍요로움의 환상이 빚어낸 병이다. 이 병을 치료하는 데는 인간 대 자연이라는 대립으로부터 해방되어, 대자연이라는 본래의 풍요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꿈을 꾸어야 한다. 지금의 삶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자. 과거에 시키는 대로 행해온 내 삶을 주체적으로 느리고 안정적으로 주변과 교감하는 안정적이고 내안에서 풍요로운 삶으로 말이다. 어떤 세속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덧붙이는 글 | 슬로라이프/ 쓰지 신이치(이규) 지음, 김향 옮김/ 디자인 하우스/ 9,500원


슬로 라이프

쓰지 신이치 지음, 김향 옮김, 디자인하우스(2018)


태그:#슬로라이프, #쓰지 신이치, #느리게살기, #느림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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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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