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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위험한 이야기가 될 지 모르지만, 자녀교육에 투입되는 돈만큼 경제적 효용성을 검증하기 어려운 분야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효용이란 단지 '학습능력의 향상'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아이의 재능과 특성, 그리고 미래 잠재력을 토대로 교육적 효과를 가장 많이 거둘 수 있는 투자 효율을 의미한다.

한 건물에 각종 학원 6-7개가 밀집해 있는 강남의 학원가.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이 시행된 이후에도 학생들은 꾸준히 사교육을 찾고 있다.
 한 건물에 각종 학원 6-7개가 밀집해 있는 강남의 학원가.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이 시행된 이후에도 학생들은 꾸준히 사교육을 찾고 있다.
ⓒ 조은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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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이다. 우리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가를 판별하기도 어렵지만, 설사 그것을 안다 하더라도 이 재능을 효과적으로 살려나갈 수 있는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여전히 해결은 간단치 않다. 일정한 조건이란, 자녀의 재능을 살려나가기 위한 지원 즉, 부모가 가진 재정적인 능력이 우선일 것이다.

"아이가 공부보다는 다른 쪽에 소질이..."

예를 들어, 어떤 교육전문가가 당신의 중학생 자녀에게 몇 가지 재능검사를 실시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의 자녀는 학습 능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다른 아이에 비해 아주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학입시를 위한 정규교육보다는 이쪽 방면의 재능을 살려나갈 수 있는 특별한 지원 및 전공 선택이 필요합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조형 예술가, 만화가 등이 자녀에게 잘 맞는 직업입니다.

학습 능력이 좋지 않다는 것은, 영어 수학을 중시하는 정규 교과과정에서 좋은 점수를 얻기 힘들다는 것이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일 당신이 자녀를 'SKY대학 유망학과'에 입학시키길 강력히 희망하는 부모라면, 이 보고서를 읽고 심각한 고민에 빠질 것이고 또 애써 이 사실을 무시하려고 할 지도 모른다(실제 다수의 부모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당신이 이 전문가의 진단을 신뢰한다 하더라도, 이 지침에 따라 실제로 아이의 진로를 잡아가는 것은 여간 해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계층 사다리의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출입증'을 얻기 위해 사활을 건 교육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아닌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가정경제 흔들려서야

'어디에 살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장래 인생이 달라지는' 지독한 교육 불균형이 엄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현실과 무관하게 간과하지 말아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이 있다.

첫째,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공교육의 많은 문제점들은 결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 둘째, 그럼에도 이 땅의 모든 학부모들은 일정한 선택(사교육을 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문제점투성이인 현 제도권 내에 아이를 둘 것인가,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인가? 등)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끝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 대부분이 평균 16년 이상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장래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는 친구들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아이를 독립된 경제주체로 만들 때까지, 얼마의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가?'라는 사실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아이의 적성과 재능에 맞는 가장 高효율(올바른 진로선택과 성공적인 학업 마침)의 투자(교육비)인가?'라는 것을 앞서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주제의 해답을 온전히 구하려면, '난마처럼 얽혀있는 교육시스템 상의 문제점과 지역간 불균형 그리고 (승자독식의) 사회구조를 어떻게 바꾸어낼 것인가?'라는 문제를 직접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행정부와 입법기관 그리고 교육전문가의 몫이므로 여기서는 접어두기로 하자. 그럼에도 현재 자녀를 가진 100가정 중 90개가 넘는 가정들이 단지 '학업성취도 만을 측정하기 위한 이 단순한 경주에 편승하기 위해 자녀와 가정경제의 운명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문제는 꼭 짚어야 할 것 같다.

교육의 가치를 단지 '경제적 효용'이라는 잣대로 해석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한 것 같다. 효용은 차치하고, 지금 이 땅에서 자식을 낳아 기르는 절대 다수의 부모들은 자녀들의 불명확한 미래를 위해 거의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으로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그것도 '학업 성적'이라는 한 가지 평가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로 인해 개별 가정경제의 건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가능성이 열려있음에도 가능성 자체를 무시하는 것과 기대값이 별로 높지 않은 상황에서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어 무리하게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똑같이 잘못된 것이다. 간판 중심의 사회질서가 존재한다고 해서, 모두가 이 미친 경주에 뛰어들어 똑같은 방식으로 달려야 할 이유는 없다. 랠리(rally)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주자(자녀)들의 장점과 재능을 최대한 살려 '이기는' 게임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교육비를 줄이라는 말도 아니고, 사랑하는 자녀의 재능과 미래 가능성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다. 사교육비에 투입된 비용과 대학 간판 사이에는 비례관계가 성립되지 않으며, 따라서 모두가 사교육의 '효과'를 보는 것은 아님을 환기코자 할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가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고, 또 어디에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더 현명한 투자인가를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실행해 가는 부모의 '관점과 철학'이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건 부모들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으므로 부모역할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큰 투자 없이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 자식을 훌륭하게 성장시킨 현명한 부모도 많다. 이들은 모두 기성(旣成)의 질서에 의문을 제기하고,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헤쳐나간 사람들이다.

폐교 직전의 학교를 부활시켜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네트워크의 조화로운 결합을 일구어냄으로써 '공교육 안에서의 대안교육'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한 아산 거산초등학교, 10여 년간 일구어온 마을 공동체 역사를 기반으로, 아이들의 발달 단계를 고려해 국내 최초로 5-5-2(초등 5년, 중등 5년, 고등 2년) 통합 과정을 운영하는 마포 성미산 학교 등 대안교육의 효시인 영국의 섬머힐(Summer hill school)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새로운 개념의 '풀 뿌리' 교육공동체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지고 있지 않은가?

투입되는 교육비의 총량과 아이의 올바른 성장, 발전 사이에는 특별한 함수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부모의 욕심'이 아닌 우리 아이들의 '행복한 삶'을 최우선 가치로 놓고, 현재의 질서를 재해석할 수 있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18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 교육평론가 이범의 교육특강 ① - 학원비 절약형 자녀 교육법'이 열리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10만인클럽 특강> 교육평론가 이범의 교육특강 ① - 학원비 절약형 자녀 교육법'이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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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든 일이 되겠지만, 이 숨막히는 경쟁의 모노레일(monorail)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찾아나서는 도전과 용기 그리고 '자식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건강한 가정경제의 유지'라는 두 가지 과제를 균형 있게 가져갈 수 있는 지혜가 요구된다.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이 모이고 지혜의 샘이 솟아나면, '새로운'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다. 자녀 교육의 기본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공교육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안교육을 활성화하자'는 선언적 명제를 던지고자 함이 아니다. 미국의 TFA(Teach for America)같은 비영리단체를 당장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시도는 모두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들이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내는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그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일반가정에서조차 획일화된 평가방식으로 아이들을 판단하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잘못'을 더 이상 범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육혁명은 부모가 가진 생각의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성공적으로 만들어가려면, 앞에서는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뒤에서는 유능한 사교육 선생을 찾는 이중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이 땅의 '깨어있는' 부모들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이미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듯이, 국가는 이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원화 되어가는 사회질서에 조응해 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기본 소양을 함양해 나가는 첫 출발점은 '가정'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엄마, 아빠라는 '창(窓)'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부모의 판단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닮아 간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독립심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세대를 넘어, 아이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이 '엄친아'를 부러워하면서 별 의미도 없고 효율도 낮은 교육비에 투입되는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길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존재는 똑똑하고 잘난 '내 친구 딸'이 아니라 평범하지만 올바른 인격과 좋은 품성을 가진 우리의 아들, 딸이 아닌가?



태그:#사교육비, #효용, #가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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