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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마산 봉암수원지 둘레길 
 경남 마산 봉암수원지 둘레길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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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김호부 선생님과 함께 경남 마산시 팔용산(八龍山, 328m) 산행을 나서게 되었다. 팔용산은 옛날 이 산에 여덟 마리의 용이 하늘에서 내려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오르는 길은 수십 가닥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먼등골이라 부르기도 하는 탑골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전북 진안군에 있는 마이산탑(馬耳山塔) 못지않은 팔용산 돌탑이 있기 때문이다. 산행 들머리인 탑골 주차장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산행 초입부터 벌써 마음이 설렌다.

오전 11시 30분께 우리는 통일기원탑이라 할 수 있는 팔용산 돌탑에 이르렀다. 팔용산 도사라 불리는 이삼용(62)씨가 오로지 남북통일을 기원하면서 17년 동안이나 돌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아 쌓아 올린 탑들이다. 2003년 한반도를 강타하여 안타깝게도 마산에서도 18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 갔던, 그래서 추석 연휴를 한순간 악몽으로 바꾸어 놓았던 태풍 매미도 비껴간 곳이다.

경남 마산시 팔용산 돌탑 길에서. 
 경남 마산시 팔용산 돌탑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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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용산 돌탑.  팔용산 도사 이삼용씨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쌓아 올렸다.  
 팔용산 돌탑. 팔용산 도사 이삼용씨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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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주변에 흩어져 있는 낙엽을 치우고 있는 그와 운 좋게 마주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일로 당시 그가 마산시 보건소에 근무하는 평범한 공무원이란 사실에 적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를 속세와 담을 쌓고 아예 산에 눌러앉아 아무도 모르게 밤새 축지법을 써서 돌을 나르고 신출귀몰한 솜씨로 돌탑을 척척 쌓는 도인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날마다 새벽 3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이곳으로 올라와 정화수를 떠 놓고 남북통일을 기원했다고 하는데, 재작년 새해 첫날에는 진안군 마이산 자락에 있는 은수사와 탑군 주변처럼 정화수에서 얼음 기둥이 위로 솟아오르는 신비의 역고드름 현상이 일어나 화제가 되었다.

팔용산 정상에 웬 무덤이? 
 팔용산 정상에 웬 무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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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용산 정상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 25분께. 처음으로 이곳을 찾은 등산객이라면 정상에 오르자마자 눈앞에 턱 버티고 있는 무덤을 보고 깜짝 놀랄 것이다. 성주(星州) 이씨 고암 문중에서 적어 놓은 글에 의하면, 이 묘의 주인은 고려 시대의 문신으로 정당문학(政堂文學)과 예문관대제학에 올랐던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으로 숙종 때 창원시 북면 고암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팔용산 정상이 워낙 명당이라 운구 비용 2만 냥을 들여 안장하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사연이 쓰여 있다.

마산 봉암수원지 둘레길로 내려가는 길에서 
 마산 봉암수원지 둘레길로 내려가는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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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 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갑자기 학창 시절 때 배워서 꽤 친숙한 이조년의 시조를 김호부 선생님이 읊기 시작했다.
이조년의 형제들은 우애가 남달랐다고 전해지는데, 형 이억년(李億年)과의 금덩어리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들에게 좋은 가르침이 되고 있다.

어느 날 그들이 함께 길을 가다가 금덩이를 우연히 주워 하나씩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강을 건너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 아우인 이조년이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 버리게 된다. 형이 놀라서 그 이유를 물어 보니 형이 없었으면 금덩이를 혼자 독차지할 수 있었는데 하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형도 가지고 있던 금덩이를 미련 없이 강물에 던졌다는 내용이다.

팔용산 정상에 서면 마산 무학산(761.4m), 창원 천주산(638.8m)과 봉림산(566m)이 눈앞에 펼쳐지고 진해 천자봉(465m)도 아스라이 보인다. 우리는 1.5km에 이르는 봉암수원지 둘레길로 내려가기로 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년 5월에 준공된 마산 봉암수원지(등록문화재 제199호, 경남 마산시 봉암동)는 1970년대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절대 용량 부족으로 1984년 12월에 폐쇄되었는데, 지난해에 그곳에 둘레길이 조성되었다. 

우리는 이조년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나누면서 수원지 둘레길을 한 바퀴 빙 돌았다. 그의 다섯 형제들은 이름이 참 독특하다. 맏형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그리고 막내 이조년((李兆年)으로 5형제 모두 문과에 급제했다고 한다. 아이를 바라보는 기쁨과 사랑이 갈수록 커진다는 뜻일까, 형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때는 어떤 깊은 뜻이 있을텐데 말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 거북선 돌탑! 
 톡톡 튀는 아이디어, 거북선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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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어도 그다지 외롭지 않은 길, 마산 봉암수원지 둘레길. 
 혼자 있어도 그다지 외롭지 않은 길, 마산 봉암수원지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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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수원지 둘레길을 걸으면 고요가 흐르는 아름다운 호숫가나 금모래빛 반짝이는 강변을 걷는 기분이다. 혼자 걸어도 그다지 외롭지 않고,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걸으면 괜스레 삶이 유쾌해지는 것 같은 길이다. 건강을 위해 공기를 쌩쌩 가르며 신나게 달리는 사람도 지나가고, 어린아이처럼 도시락 들고 소풍 나온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강인 듯, 호수인 듯 잔잔한 물 위로 고운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오후가 되면 더욱 아름답다. 마음이 외로워서 찾고, 그저 걷고 싶어서 찾는 길이기도 하다. 길을 걷다 무엇인가를 애절히 기다리는 듯한 돌탑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거북선 돌탑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즐거움을 준다.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걸으면 삶이 유쾌해지는  길이다. 
 친구와 소곤소곤 이야기하고 걸으면 삶이 유쾌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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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 천국인 팔용산. 진안 마이산에 이갑용 처사가 있다면, 마산 팔용산에는 이삼용 도사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그가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 하나하나에서 이산가족의 아픔과 남북통일의 간절한 염원이 내게도 전해진다. 또한 예쁜 둘레길이 조성되어 새로운 휴식 공간으로 우리들에게 돌아온 마산 봉암수원지에서 나는 유쾌한 삶을 그려 본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 마산시 양덕2동 먼등골(탑골): 105번(월영아파트~먼등골)/ 106번(해운동~먼등골), 대림하이빌아파트 맞은편에서 산행 시작.



태그:#팔용산돌탑, #수원지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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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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