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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의 심각성이 경고되는 가운데 은행의 높은 대출금리가 이를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 가계부채는 700조 원을 넘어선 상황, 이중 은행으로부터의 대출이 400조 원이 넘는다. 은행 대출금리가 1퍼센트 포인트 증가할 때마다 가계가 부담해야 할 이자는 4조 원씩 증가하는 셈이다. 그런데 올해 초 주요 은행들은 일제히 주택담보대출금리를 상승시켰다. 현재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는 약 6퍼센트에 이르고 있는데, 한국은행의 정책금리가 1년째 2.00퍼센트로 동결되면서 초저금리 행진을 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가산금리 블랙박스

초저금리 시대에도 은행이 높은 대출금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금리 상황과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됨에 따라 이를 만회하기 위해 소위 '이자 마진(interest margin)'을 높게 유지한 것이다. 실제로 가계대출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2009년 말에는 이자마진이 3.07퍼센트에 달해 10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대출금리 상승 덕분에 2009년 하반기부터 국내 은행의 이자이익은 꾸준히 증가하여 32조 원을 넘었다. 이자이익 증가에 힘입어 경제위기 와중에도 불구하고 은행은 2009년 1분기에 흑자 전환을 실현했고, 올해는 10조 원의 순익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이자 마진은 부당하게 높은 대출금리의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고 이를 낮추어야 한다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이자 마진을 측정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가산금리를 측정하는 것이다. 가산금리는 대출금리 중에서 자금조달금리를 제외한 것을 의미하는데, 교과서적으로 설명하면 업무원가율과 위험 프리미엄 그리고 마진율을 덧붙인 것이다.

문제는 가산금리의 정체가 대단히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업무원가율, 위험프리미어, 마진율이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는 결국 각 은행의 자의적 결정에 의존하고 있어서 객관성이 의심스럽다. 위험 프리미엄을 결정하는 대부자의 신용도 산정에 있어서조차 국내 은행의 산정 능력을 높게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과 정치권이 내놓은 대안의 한계

높은 대출금리의 불공정성은 은행과 가계의 계약관계에서 은행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국민들 또한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대출금리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지는 것이다. 국민들의 불만 확산은 최근 은행과 정치권으로 하여금 부분적인 대응이나마 내놓도록 만들었는데 이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자. 은행과 정치권의 대응은 기준금리를 변경하는 것과 가산금리를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먼저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의 새로운 기준금리로 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를 도입했다. 이는 첫째, 은행의 자금조달 현실을 반영했다는 측면과 둘째, 기준금리의 변동성을 줄였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의 기준금리였던 CD금리에 비해서 COFIX는 다양한 자금조달 채널을 반영하고 있으며, 고정금리의 성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준금리가 바뀐다고 해도 가산금리가 줄어들지 않는 한 가계의 이자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지난 16일 최초로 COFIX 금리가 공시되었지만 각 은행은 가산금리 결정에 있어서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상품출시를 미루고 있다. 게다가 COFIX 금리는 신규취급액 기준 연 3.88퍼센트로 그 자체가 CD금리의 2.88퍼센트에 비해서 1퍼센트 포인트 높다.

한편 얼마 전 국회에서는 은행의 가산금리를 법으로 규제하는 은행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정희수 의원(한나라당)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의 취지는 가산금리가 2008년 평균 1.51퍼센트에서 2009년 10월에는 3.11퍼센트까지 올랐으며 이는 은행 경영상황 악화에 따른 부담을 소비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안이 통과된다면 현재 국내에서 은행 금리를 규제하는 유일한 법이 될 것이다.

개정안에 의하면 각 금융기관은 대출의 종류마다 기준금리와 가산금리의 분기별 평균을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하며, 금융위원회는 최근 5년 간 가산금리의 분기별 평균을 내어 각 금융기관이 그 범위 안에서만 가산금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제한다. 이렇게 하면 결국 가산금리의 상한선이 정해지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어 가산금리의 급격한 상승을 막을 수 있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이자부담의 급격한 증가 역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개정안이 도입되었을 때 실제로 금리가 어느 수준에서 결정되는지를 주택담보대출 신규취급액을 기준으로 계산해보자. 가산금리는 이제까지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이 되어왔던 91일물 CD금리에서 은행의 대출금리를 빼는 방식으로 구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2005년부터 2009년까지의 가산금리 평균을 구하면 1.70퍼센트이다. 따라서 올해 각 은행은 1.70퍼센트 이하로 가산금리를 책정해야 한다. 이는 현재 2~3퍼센트에 이르는 가산금리를 1퍼센트 정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온다.

[표1] 최근 5년간 가산금리 평균
 [표1] 최근 5년간 가산금리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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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법안이 가산금리 상승의 추세를 꺾지는 못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2010년 이후를 계산해보면 2011년에는 1.69퍼센트, 2012년에는 1.80퍼센트, 2013년에는 1.92퍼센트, 2014년에는 2.00퍼센트로 가산금리의 상한선이 결정된다. 2009년의 가산금리가 3퍼센트에 육박했던 탓에 이후에도 가산금리의 평균은 조금씩 오르게 된다. 또한 새로 만들어진 COFIX의 경우 지난 5년의 평균 가산금리를 산출할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법안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가계대출 금리 규제 방향

전체 은행에서 기준금리와 시장금리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를 겪은 후부터이다. 즉, 은행의 수익성 추구가 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1999~2006년 동안 총 19개 일반은행의 118개 관측치를 사용한 분석에 의하면 시장성 수신 비중이 높은 은행일수록 가계대출 비중은 높았으나 기업대출 비중은 낮았다. 또한 운전자금 대출 비중은 높았으나 시설자금 대출 비중은 낮았다. 이는 은행들이 값비싼 모니터링 비용과 높은 부도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기업대출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높고 심사하기 편하며 수익성이 높은 가계대출을 선호했다는 것이다. 운전자금과 시설자금의 차이 역시 이러한 맥락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내 일반은행의 금융중개기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결국 문제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이라는 본연의 역할, 공공적 성격을 소홀히 하고 수익성 추구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은행의 자금중개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 문제의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금리 결정에 이용되는 위험 프리미엄과 마진율 등의 원가를 공개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기관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금리 결정의 블랙박스를 해체하는 의미를 갖는다. 금융은 곧 신용이다. 신용이 금리를 결정한다. 금융산업은 국가가 보증하는 신용의 기반 위에 서있고 금융기관의 신용창출 권한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아서 수행하는 것이다. 은행이 갖고 있는 금리 결정 권한 자체가 사회적으로 주어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사회적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정당하다.

둘째, 최근 발의된 은행법 개정안과 같이 국가가 은행의 금리를 상시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금융 조정 기능을 강화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가계대출을 포함한 소비자 금융의 대부분을 은행이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중앙은행이 3개월에 한 번씩 소비자 금융, 부동산 금융, 사업자 금융 등의 시장평균금리를 조사하여 발표하고, 이것의 1.3배를 넘는 금리는 소비자법에 의해 폭리로 규정하여 처벌한다. 독일의 경우 민법 및 판례에 의해 시장평균금리의 2배를 넘는 금리는 폭리로 규정하여 무효가 된다. 무효로 판명된 거래의 경우 이자를 갚을 의무는 없고 원금만 갚으면 된다.

정리하자면 은행의 투명성을 높이고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은행의 공공적 성격인 자금중개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최근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이자 없는 은행인 이슬람 은행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이슬람 은행의 경우에는 아예 이자가 없다. 대신 수익도 손실도 함께 나누는 배당금의 개념으로 운용된다. 은행이 예금을 받은 경우 그 돈을 운용하여 수익을 거둔 만큼 이자를 돌려주고, 은행이 대출해준 경우 대출받은 사람이 그 돈을 운용하여 수익을 거둔 만큼 은행에게 이자를 내면 된다.

이슬람 은행에 이자가 없는 표면적 이유는 코란에서 돈놀이를 엄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적정한 이자와 고리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과 손실이 나더라도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면 자본을 가진 자는 언제나 수익을 얻게 되는 자본주의의 불공정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오히려 더 합리적이고 투명하며 시장의 원칙에 맞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활발한 외환이동과 국제무역을 통해 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슬람처럼 이자를 없앤다는 것은 지나친 이상일 것이다. 그러나 은행이 완전한 시장의 가치에 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 위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일은 지금 우리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새사연 이수연 연구원이 작성한 글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출금리, #가산금리, #은행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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