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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순결을 주장한 토니 애보트 호주 자유당 당수에 관해 보도한 abc-TV 웹사이트.
 결혼 전 순결을 주장한 토니 애보트 호주 자유당 당수에 관해 보도한 abc-TV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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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호주에서는 '처녀성' 논란이 뜨겁다. 제1야당인 자유당 토니 애보트 당수가 2월초에 발간된 <우먼스 위클리>와 인터뷰 도중에 "처녀성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주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들고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고, 케빈 러드 총리를 비롯한 각계 인사들도 애보트 당수 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 지도자가 해서는 안 되는 부적절한 발언이었고, 세 딸을 둔 아버지 처지에서도 섹스 같은 이슈는 피해가야 했다"는 것.

태양과 맥주, 그리고 섹스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호주인들은 성문제와 관련해서 무척 개방적인 편이다. 그래서일까. 호주통계청(ABS)이 발표한 2002년 통계에 의하면, 호주 젊은이의 72% 정도가 결혼 전에 동거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981년 통계는 31%였다.

사정이 이런데, 2010년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 제1야당 당수가 왜 뜬금없이 섹스 문제를 거론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보수 강경파에 속한 애보트 당수가 오랫동안 피임과 임신중절을 공개적으로 반대해온 터라서 여성계의 눈길이 곱지 않은데.

본인은 19세에 여자친구와 성관계

그 답변은 애보트 당수의 과거 행적에서 찾아야 한다. 혼전순결을 그토록 강하게 주장하는 그가 아이러니컬하게도 19세에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에 낳은 아들을 입양시킨 다음, 27년 동안 아들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애를 태웠기 때문이다.

약 5년 전, 애보트 당수(그때는 보건장관)는 아들을 찾을 뻔했다. 그를 쏙 빼닮은 27세 청년이 "아버지, 제가 아들입니다" 하면서 나타났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의 어머니가 자신의 여자친구였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 얘기는 마치 미스터리가 가미된 멜로드라마 같아서 끝까지 들어봐야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오죽하면 애보트 당수가 "진실은 소설보다 더 낯설다"면서 장탄식을 했을까? 대략 이런 얘기다.

1977년 토니 애보트가 시드니대학교 법대 재학 중에 여자친구 캐시 도넬리와 혼전 성관계를 가져 사내아이를 낳았다. 초등학교 동창생인 두 사람의 나이 19세 때였다. 결국 아이를 입양시킨 다음 그들은 헤어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도 시드니대학교 법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애보트는 그 당시 호주 청년들의 꿈이었던 '로드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도 성적이 좋아 장래가 촉망되는 엘리트로 귀국했지만 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들 입양시킨 후 죄의식에 시달린 27년

권투선수로 링에 오른 토니 애보트 당수.
 권투선수로 링에 오른 토니 애보트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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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로 돌아온 애보트는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셨고 권투선수가 되어 링에 올라 실컷 두들겨 맞기도 했다. 영국 유학까지 마친 엘리트의 행로치고는 엉망진창의 나날이었다. 그러다가 방황을 끝낼 심산으로 가톨릭 신부가 되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3년 동안 공부한 세이트 페트릭 신학교에서 '미친 수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적응에 실패해서 끝내 포기하고 말았다. 철없는 불장난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죄의식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애보트는 극단주의자로 변해갔다. 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는 과정에서 순결지상주의에 함몰된 것. 결국 피임과 낙태를 반대하는 경직된 사고를 하게 됐고, 그 내용으로 대중 캠페인을 벌인 적도 있다.

그는 오랫동안 건설현장 허드레 일꾼, 과수원 감시원, 트럭운전사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그러던 중에 파트타임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직장에서 만난 마가렛 에잇킨하고 결혼했다. 딸 셋을 낳아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다가 1994년에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나의 난소에서 당신의 묵주를 치워라!"

토니 애보트 의원은 극단적 보수성향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여 존 하워드 정부에서 보건장관직에 올랐다. 피임과 낙태 문제가 그의 업무소관이 된 것. 그렇지 않아도 고리타분한 그의 언행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던 여성의원들이 의도적으로 공격을 해서 심심치 않게 충돌이 벌어졌다.

호주 여성들이 '낙태약'으로 활용하는 사후피임약 'RU486' 판매 허용 권한을 보건장관으로부터 박탈해서 식약청으로 넘기는 법안을 여성의원 4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것도 그중의 하나다. 그 법안은 1주일 동안의 난상토론 끝에 표결에 붙여져 허용 권한이 식약청으로 넘어갔고, 약 10년 만에 'RU486 판매금지 조치'가 풀렸다.

그 논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이런 일도 벌어졌다. 녹색당 소속 캐리 네틀 상원의원이 "나의 난소에서 당신의 묵주를 치워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등원하여 의사당이 발칵 뒤집힌 것.

그뿐이 아니다. 그는 야당의원으로 처지가 바뀐 다음에도 사사건건 여성 의원들과 부딪쳤다. 특히 앙숙처럼 지내는 줄리아 길라드 부총리에게는 '똥 씹는 듯한 미소(a shit-eating grin)'라는 부적절한 발언을 해서 24시간 동안 의사당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했다.

2년 동안 의사당에서 마주친 청년이 내 아들이라고?

길라드 부총리도 반격에 나섰다. "애보트 의원은 낮시간 TV에서 방송하기 어려운 내용의 악담을 쏟아내는 인물이라서 의사당 생중계를 하는 녹음 담당자를 계속 긴장하게 만든다"고 쏘아붙인 것. 애보트 의원한테는 뼈아픈 공격이었다. 바로 그 방송담당자가 한때 그의 아들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2004년 12월, 의사당 프레스갤러리에서 녹음 담당(국영 abc방송 소속)으로 일하는 다니엘 오코너가 입양부모를 졸라서 알아낸 전화번호로 생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애보트의 여자친구였던 캐시 도넬리였다. 입양 후 27년 만에 최초로 걸려온 아들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란 생모는 아들에게 "토니 애보트 의원이 너의 아버지"라고 알려주었다.

다니엘은 기가 막혔다. 의사당에서 근무하면서 같은 빌딩 안에 사무실을 갖고 있는 토니 애보트 의원을 수도 없이 만났기 때문이다. 생모와 통화한 다음날, 애보트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두 사람은 한참동안 말없이 웃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다니엘이 생부에게 한 첫마디는 "날 낳아주어서 고맙습니다"였다.

27년 만에 이루어진 감격적인 '부자 상봉' 통화였다. 당연히 수많은 얘기들이 오갔다. 나중에 생모와 함께 만나서 바비큐파티를 하자는 약속도 했다. 애보트와 도넬리는 27년 전에 헤어진 남남의 관계였지만 입양시킨 아들의 소식을 얻기 위해서 정기적인 통화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토니 애보트 당수와 한때 그의 아들로 알려졌던 다니엘 오코너(왼쪽). 오른쪽은 애보트의 전 여자친구 캐시 도넬리.
 토니 애보트 당수와 한때 그의 아들로 알려졌던 다니엘 오코너(왼쪽). 오른쪽은 애보트의 전 여자친구 캐시 도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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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 어려운 세 가족 바비큐파티 열려

그 당시, 토니 애보트 의원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특히 아들과 통화한 날이 크리스마스 이브여서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비큐파티는 애보트 의원의 집에서 새해 첫날에 열렸다. 그런데 그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이 놀랍기 그지없다.

토니 애보트 부부와 세 명의 딸, 그의 학창시절 여자친구 케시 도넬리 부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4명의 자녀, 그리고 27년 전에 다이넬 오코너를 입양시킨 존 오코너 가족들이 모두 모인 것. 그 자리에서 존 오코너가 한마디 했다. "우리 세 명이 다니엘의 삶을 갖고 놀이를 한 느낌"이라고.

갑자기 큰 그룹이 된 세 가족의 바비큐파티는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특히 다니엘을 연결고리로 형제자매가 된 2세들이 크게 환호한 것. 27년 동안 죄의식에 시달렸던 애보트 의원이 크게 기뻐한 건 두말 할 나위가 없고,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생모 캐시 도넬리도 기쁨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고 한다.

마치 한 편의 멜로드라마 같은 세 가족의 얘기를 언론에서 크게 다루었다. 애보트 의원은 축하인사 받기에 바빴고, 사사건건 티격태격했던 여성 의원들까지 "엘리트 출신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애보트 의원의 말도 안 되는 기행(奇行)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런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다니..." 하면서 화해무드로 돌아섰다.

친자확인 위해 DNA 테스트 결심한 애보트

그러나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던가? 아니면 한 편의 완전한 멜로드라마가 되기 위해서 극적 반전이 꼭 필요했던 것일까? 애보트 의원이 생면부지의 남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면서부터 모든 스토리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 남자가 "아무래도 다니엘이 내 아들 같다"고 말한 것.

애보트 의원에게는 청천벽력이었지만, 그로부터 "다니엘의 외모가 내 아이들과 너무 많이 닮았다"는 얘기를 들은 다음 중대결심을 했다. DNA 테스트를 통해서 친자확인을 하기로 한 것. 차마 케시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볼 수도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애보트 의원의 아들이 아니라는 테스트 결과가 바로 나왔다. 케시 도넬리가 토니 애보트 말고 또 다른 남자친구와 더블 데이트를 했던 것. 결국 신원을 밝히지 않은 그 남자가 27년 동안 모르고 지냈던 아들을 찾는 어부지리 행운을 얻은 셈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 남자는 비공개적으로 애보트 의원을 만나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린 다음 애보트 의원은 어깨가 축 처진 모습으로 <채널7>에 출연해서 "쇼크이고 크게 실망스럽다. 그러나 다니엘은 여전히 내 여자친구였던 케시의 아들이 아닌가. 더욱이 27년 동안 그토록 애를 태웠는데 다니엘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성장했다. 앞으로도 자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토니 애보트 호주 자유당 당수.
 토니 애보트 호주 자유당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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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젊은 여성들은 스스로 결정한다"

그 인터뷰가 방송된 날이 2005년 3월 21일이었으니 약 5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처녀성 발언이 불거져 나온 것일까? 최근에 제1야당 당수로 선출된 것을 계기로 자신의 오랜 신념을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성년이 된 세 딸 루이스(20), 프란시스(18), 브리지트(16)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이나 호주 가릴 것 없이, 요즘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혼전순결을 값없이 여기는 풍조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짐짓 '총대'를 멨을 가능성도 있다. 언뜻 고리타분하고 공허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딸을 둔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공통적인 바람을 담아서.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호주 젊은 여성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애보트 당수의 발언이 보도된 이후 "웬 물색없는 참견"이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여성의 기본 인권"까지 거론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소개한다.

"이건 여성의 기본 인권에 관한 문제다. 젊은 여성들은 처녀성에 관해서 스스로 결정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왜 섹스가 후회를 연상하게 만드는가? 그건 즐거움이지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이런 얼간이가 어떻게 야당 당수가 됐을까? 다행인 것은 그가 계속해서 그따위로 발언하면 총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우리는 구닥다리들을 포함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견해를 가질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게 다양성 아닌가. 만약에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첫날밤에 첫 섹스를 하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면 그들에게도 행운을 빌어주자."

혼전순결을 지키겠다는 표시로 악마의 뿔을 매단 호주 여성.
 혼전순결을 지키겠다는 표시로 악마의 뿔을 매단 호주 여성.
ⓒ 윤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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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처녀성, #애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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