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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0 경제 블로거 토론회 '쾌도난담'에서 발표한 블로거 7명. 왼쪽부터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 석진혁 청년유니온 간사, 정다혜 연세대 총학생회장, 강기대(고대 09학번)씨, 김현 변호사, 블로거 민노씨, 이성규 태터앤미디어 팀장.
 23일 오후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0 경제 블로거 토론회 '쾌도난담'에서 발표한 블로거 7명. 왼쪽부터 이정환 미디어오늘 기자, 석진혁 청년유니온 간사, 정다혜 연세대 총학생회장, 강기대(고대 09학번)씨, 김현 변호사, 블로거 민노씨, 이성규 태터앤미디어 팀장.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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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청춘? 난 못 지내고 있는데…."

두 번째 발표 블로거 석진혁(32·청년유니온 간사 blog.naver.com/hero990926)씨의 첫 마디였다.

"제 나이 서른 둘. 대학 졸업하고 학자금 대출 갚고 나니 여자 친구가 생겼습니다. 결혼을 고민하게 됐는데 대출 안 하면 못할 지경입니다. 제가 사는 하남시 웬만한 전세도 억대를 넘어 다시 빚을 지어야 하는 구조죠. 빚 갚다 아기라도 낳으면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이태백, 이구백, 청년실신... 이 단어 뜻 아세요?"

블로거 눈으로 올해 우리 경제를 전망해보는 2010 경제 블로거 토론회 '쾌도난담'이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과 태터앤미디어 주최로 23일 오후 2시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대학생, 기자, 변호사 등 블로거 7명에게 주어진 발표 시간은 단 10분. 그간 체험한 삶을 담기엔 너무 짧았다.

"이태백, 이구백, 청년실신, KTX풀, 홈퍼니족…. 이 단어 뜻 아세요? 이 단어들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청년이거나 청년을 이해할 준비가 되신 분입니다."

청년실업을 상징하는 20개의 은어를 선보인 석씨는 '고용 없는 성장' 문제를 짚었다. 20, 30대가 대부분인 이날 방청객 50여 명에게 가장 와 닿는 문제이기도 했다. 석씨는 올해 정부의 장밋빛 전망에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고용대란이 우려된다면서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을 성토했다.

"대통령은 눈높이를 낮춰라, 인문대 지방대는 기술 배워라, 25만 일자리 창출하겠다, 하는데 문제는 25만 일자리 대부분이 '청년인턴' 같은 비정규직이어서 5~6개월 지나면 대안이 없다는 것이죠."

 "이태백, 이구백, 청년실신, KTX풀, 홈퍼니족... 이 단어 뜻 아세요?" 23일 열린 경제 블로거 토론회에서 석진혁 청년유니온 간사가 청년 실업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태백, 이구백, 청년실신, KTX풀, 홈퍼니족... 이 단어 뜻 아세요?" 23일 열린 경제 블로거 토론회에서 석진혁 청년유니온 간사가 청년 실업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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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할 때 1000만 원 빚은 기본... '스펙' 싸움에 '낭만 죽은 20대'

"요즘엔 졸업할 때 1000만 원 정도 빚 갖는 게 센스"라고 운을 뗀 연세대 총학생회장 정다혜(you47.tistory.com)씨 역시 대학생 관점에서 등록금과 취업 문제 등을 짚었다.

정씨는 "등록금 상한제는 사실상 평균 5% 정도 인상을 허용한 '등록금 인상제'고 ICL(취업후 등록금 상환제)은 기존 학자금 대출보다 더 위험한 제도"라고 따졌다. 연 5.8%의 높은 이자율에 졸업 이후에는 복리 이자가 적용되는 데다, 졸업 후 3년 안에 취업이 안 되면 강제 징수하거나 일반대출로 전환되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등록금보다 더 심각한 건 역시 취업 문제였다. "취업할 때 졸업예정자 신분이 유리해 1학점짜리 수영 과목이라도 들으며 평균재학기간이 6년이 넘지만, 대졸 취업률은 계속 하락하고 대졸 초임은 삭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20개 공공기관 1614명 인턴 중 정규직 전환은 3명에 불과했다, 언제까지 인턴만 하다 졸업도 못하고 살아야 하나"며 정부에서 실업대책으로 내놓은 행정인턴제를 꼬집기도 했다.

등록금이나 취업만 문제가 아니다. 뉴타운 개발 등으로 수도권 대학가 주변 집값이 오르면서 지방 대학생들은 주거권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정씨는 "중앙대 근처 흑석뉴타운 집값이 월 5~20만 원 오르면서 학생들이 학교 근처에 못 살고 점점 먼 곳으로 이사 가는 현실"이라면서 "대학생 삶의 위기를 맞아 20대 관점에서 경제정책을 얘기하고 패러다임 바꾸도록 논의해야 한다"고 연대를 강조했다.

토론회에 참석하려고 블로그를 급조했다는 '학혼' 강기대(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09학번 blog.naver.com/kkdzpswl)씨야 말로 지금 대학생들의 현주소였다.

"우리 20대는 낭만이 죽은 세대입니다. 수업을 재끼고 술 마시고, 수업 전날 토론으로 밤을 지새운다는 건 상상도 못 합니다. 학점과 토익, 자격증 등 이른바 '스펙'을 쌓을 시간도 부족하거든요. MT 참석률도 절반이 안됩니다. 과외 아르바이트 때문에 못 온다는데, 그것들이 추억보다 '값진'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기부터 '명문대 가야 안정적으로 취업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자랐기 때문이죠."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일자리 나누기로 풀자"

20대 대학생, 청년 블로거들이 이런 현실적 고민을 털어놓았다면 나머지 '기성세대' 블로거들은 나름 이 세상을 바꿀 해법을 제시했다.

"블로거가 본업, 기자는 부업"이라고 자신을 밝힌 이정환(38·미디어오늘 기자 leejeonghwan.com)씨는 노동시간 줄이기와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 사회적 일자리 늘리기를 대안의 하나로 제시했다.

이씨는 "연봉 7천 귀족노조라고 비판하는데 자동차 공장 사장 입장에서는 당장 주문이 늘면 공장 늘리기보다 야근, 맞교대에 주말 특근으로 직원들 일 더 시키는 게 이득이다"면서 "덕분에 노동시간은 연간 2354시간(2005년 기준)으로 OECD에서 가장 높은데, 시간당 생산성을 따지면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1인당 근무시간을 줄이고 신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밖에 개인 주식 투자의 함정을 지적한 김현 변호사(www.blog.lawfully.kr)나  파워 블로거의 현주소와 블로거 연대 방안을 제시한 민노씨(minoci.net), 뉴미디어 등장과 '공유경제'의 가능성을 전망한 이성규 태터앤미디어 팀장(blog.ohmynews.com/dangun76)의 발표 모두 20, 30대들이 관심 가질 만한 화두였다.

 23일 오후 열린 2010 경제 블로거 토론회 '쾌도난담' 마지막 순서로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23일 오후 열린 2010 경제 블로거 토론회 '쾌도난담' 마지막 순서로 종합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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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투자가 모든 20대에게 희망이 될 수 없는 까닭

마지막 종합토론 때 한 중년 여성 방청객은 지구 온난화에 대비해 한전 주식 3천만 원어치를 자식에게 물려줬다며, 20대들이 현실적 문제에 절망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고 좀 더 희망을 가져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정다혜씨는 "주변에 좋은 직장에 취업한 친구도 있지만 100명 중 1명이 희망 갖고 산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사는 건 아니"라면서 "희망이나 대안은 주식에 투자하고 회사에 한두 명 취업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20대 모두의 문제를 풀 대안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그 희망이 한전 주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토론은 5시간이 걸려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마쳤으며 그 분위기는 20여 명이 모인 뒷풀이자리까지 이어졌다. 이날 기조 발표를 한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와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도 뒤풀이 자리에서 이날 토론회 주인공으로 젊은 블로거들을 치켜세웠다.

손석춘 새사연 원장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경제는 통계와 어려운 수치로 포장돼 있지만 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는 세계적 경제학자들이 얼마나 무능한지 보여줬다"면서 "우리 모두가 주변의 어려움에 대해 말할 때 경제 민주화가 가능하다, 이번 블로거들의 토론이 함께 대안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도록 앞으로 이런 자리를 계속 만들겠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토론회 발제문 등은 쾌도난담 메타 블로그(blogfestival.kr/meta) 참고하세요



#블로거 토론회#쾌도난담#새사연#태터앤미디어#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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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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