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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년 그 해의 마지막 날이 되면 하는 일이 있다. 남들은 이 일을 하는 나를 보고 '쥐뿔도 없는 놈이, 잘난 체를 하려고 쓸데 없는 일을 한다'고 핀잔을 한다. 그러나 난 12월 말경이 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매년 12월 31일에 해 오던 일을 하기 위해서다. 남들처럼 큰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마음을 먹고 해오던 작은 일, 그것 하나만이라도 계속 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매해 말, 내가 재래시장을 찾는 까닭

매년 12월 25일이 되면 난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좋은 물건을 살 수가 없으니, 재래시장에 나가 값이 싼 털목도리와 털장갑을 50켤레씩 구입을 한다. 매년 하는 일이라 재래시장의 상인들도 나름 값을 싸게 해주기도 하니,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50개씩을 구입하고 난 후에는 과일과 음료 그리고 빵 등을 사러 돌아다닌다. 과일이나 빵, 음료 등은 12월 30일에 구입한다. 이렇게 50개씩을 구입을 하면 그것을 비닐봉지에 각각 하나씩 담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50벌, 즉 50명에게 전달할 수가 있다. 값으로 치면 한 봉지에 1만원 꼴이다. 남들이 보면 참 별게 아니라고 하겠지만, 나에게는 큰돈이기도 하다. 또한 그 1만원이라는 돈이 내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게 준비를 한 것을 처음에는 역전에 기거하는 노숙자들에게 전달을 했다. 물론 내가 직접 가지는 않는다.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하는 분들에게 전달을 하거나, 종교단체, 혹은 사회복지 일을 하는 곳을 찾아 전달해 줄 것을 부탁드리고는 했다.

살다가 보면 어려울 때도 있다. 나 역시 하는 일마다 몇 번이나 실패를 하고나니, 어떤 해는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마음에 편치가 않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 쌀을 걷기도 한다. 그렇게 모인 쌀이 한 가마를 훌쩍 넘어, 그것을 노숙자들에게 밥을 해주는 종교기관에 전달을 한다.

내가 어려워 그만한 쌀을 구입하기가 힘드니, 주변에 있는 '기자(祈者)'라는 사람들에게 부탁을 한다. 그들에게는 언제나 쌀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몇몇 분들은 그래도 '용하다'라는 말을 듣고 있어, 풍족하기 때문이다. 어느 것을 전하든지, 누가 전하는지는 일체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노숙 생활한 나, 그들 마음 조금은 안다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노숙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추위를 가시게 해 줄 수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찾아낸 나름의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노숙자들은 일도 안 하고 게으르기만 하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말도 맞는 말이다. 그렇게 노숙을 하지 말고 아무데라도 가서 막노동이라도 하라는 것이다. 엊그제 방송을 보니 노숙자들이 폐지를 주어다가 팔아, 쪽방을 구해 들어갔다는 내용을 방영했다. 그런 내용을 보면 많은 노숙자들이 '정말 게으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대로 노숙자를 도와주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내가 노숙자를 도와주는 이유는 바로 내가 노숙자 같은 생활을 해보았기 때문이다. 작은 사업에 실패를 한 후 집도 절도 없어진 나는 불도 안 들어오는 방에서 몇 해 겨울을 나야만 했다. 물론 그 고통이 한데서 잠을 자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적인 고통이나, 그러한 춥고 배고픔을 이겨야 하는 것은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조금 안정을 되찾으면서 그런 일을 되풀이를 했다. 남들은 그런 고통을 모른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밖에서 잠을 자지는 않는다고 해도, 정신적인 노숙자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사회에서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해대고, 가끔 방송을 통해 좋지 않은 부분들이 방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따듯한 마음 한번 쯤 보여준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는 것이다. 올해는 그들을 돕고 있는 손길들도 줄었다고 한다. 모두가 다 어렵다고 하니, 그 도움의 손길이라고 어렵지 않을 것인가?

2009년의 마지막 날,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기온은 영하 13도로 내려갔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정도라고 한다. 오늘도 그들에게는 따듯한 국밥 한 그릇이 무엇보다도 큰 선물인 텐데.

노숙자가 없는 곳에 가서 살아야 할 때는, 독거노인들에게 보내달라며 만 원짜리 봉지를 만들었다. 혼자라는 것, 그리고 주변에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른다. 노숙자들이라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가족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 가족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그들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 내 마음이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09년의 12월 31일은 나도 춥다 

그렇게 해오던 것을 올해는 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가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추위에도 방에 불을 넣지 않는다. 내가 방에 불을 넣지 않는 이유를 주변 사람들은 물어 본다.

"이 추운데 방은 따듯하죠?"
"아니 방에 불이 안 들어와. 그래도 지낼 만은 해."
"이렇게 추운데 불을 안 놓으면 어떻게 해요."
"사무실로 쓰던 방이라, 아예 보일러가 없어."
"그런데서 어떻게 살아요. 올 겨울은 무척이나 춥다는데."
"하루 종일 햇볕이 들어서 견딜 만해."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 되풀이 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이 10평 정도가 되는 방이다. 사무실로 사용되던 방을 칸을 막아 사용한다. 보일러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불을 땔 수가 있다.

하지만 난 보일러가 없다고 말을 하면서, 기름을 넣지 않는다. 올해는 나 자신이 힘이 들어, 그 만 원짜리 봉지 50개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보일러가 없다는 핑계를 대고 불을 넣지 않는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이래저래 형편이 안 된다. 그저 마음 속으로만 미안할 뿐이다.

큰 도움도 되지 않은 하찮은 것, 그런 것 하나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없는 세상. 그저 미안함 뿐이다. 날이 이리도 추운데. 내일은 2010년이 첫 해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해맞이를 한다고 한다. 가장 춥다고 하지만, 그곳에 나아가 한 해 소원을 빌어야겠다. '2010년에는 이 땅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단 한 사람의 노숙자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태그:#12월 31일, #노숙자, #비닐봉지, #불이 없는 방,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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