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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코 곱창’ 출입문. 유리창 사이로 50-60년 전 사진 액자들이 보이는데. 겨울이면 나타났던 동네 포장마차를 떠올리게 했다.
 ‘뻥코 곱창’ 출입문. 유리창 사이로 50-60년 전 사진 액자들이 보이는데. 겨울이면 나타났던 동네 포장마차를 떠올리게 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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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었다. 장보기를 마치고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가는데 형님이 전화를 해왔다. 후배와 술 한잔 하려고 '곱창집'에 왔는데, 일제 강점기와 50-60년대 군산 거리 사진들이 걸려 있는 걸 보니까 생각나서 했다며 와보라는 것이었다.

양손에 각종 찬거리와 잡곡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있어서 움직이기가 거북했다. 하지만,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작으나마 동생이 하는 일에 신경을 써주는 형님이 고마웠고, 어떤 사진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곱창집은 군산 동고등학교가 있던 삼학동에 있었다. 간판이 '뻥코 곱창'이었는데 가게는 작지만, 길모퉁이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마침 석쇠에 곱창을 굽고 있었는데, 풍기는 냄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아하 이곳에 맛집이 숨어 있었구나!"

홀은 넓지 않았지만, 한글 예서체가 인쇄된 한지로 도배해놓은 벽과 여기저기에 걸린 사진들이 일제강점기와 60년대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예술 감각이 뛰어난 분이 설치한 것으로 보여 주인아주머니(여사장 42세)에게 물었더니 형부가 해준 거라며 웃었다. 

형님이 후배라고 했던 분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인이었다. 해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돼지곱창 양념구이는 1인분에 7천 원. 한우 소 곱창구이는 1인분에 1만 1천 원이었는데 그동안 먹어본 곱창보다 알이 굵고 양도 많은 편이었다.

곱창전골. 우리가 즐겨 먹는 소 내장이 거의 들어가 국물이 진액이고, 개운하고 얼큰한 맛이 환상적이다.
 곱창전골. 우리가 즐겨 먹는 소 내장이 거의 들어가 국물이 진액이고, 개운하고 얼큰한 맛이 환상적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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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솥밥 누룽지. 직접 긁어먹는 재미도 쏠쏠한데, 입안 구석구석을 즐겁게 해서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돌솥밥 누룽지. 직접 긁어먹는 재미도 쏠쏠한데, 입안 구석구석을 즐겁게 해서 더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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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반가운 지인을 만나서 그런지 곱이 꽉 차고, 부드럽고, 고소한 한우 소곱창과 소주가 입에서 어울리는 맛이 오묘하게 느껴졌다. 술잔이 몇 차례 돌아가니까 돌판 위에 있던 곱창이 몇 개 남지 않아 자리가 끝나나 보다 했다. 그런데 형님이 곱창전골(중 1만6천원)을 주문했다.

조금 있으니까 팔팔 끓는 곱창전골이 그릇에 가득 담겨 나왔다. 보기만 해도 푸짐했는데, 국물을 한 수저 입에 떠 넣는 순간 '아하, 여기에 맛집이 숨어 있었구나!'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가 부실한데도 맛에 정신이 팔려 건더기를 모두 꺼내먹었으니까.

불황이 깊어지면 미니스커트가 유행을 탄다고 했는데 살기 어려운 지금보다 좋았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복고 지향적인 심리 때문일까. 참새구이와 포장마차를 상징했던 곱창이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곱창은 '추억' '옛날' 같은 수식어가 자주 따라다니는 음식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복고풍으로 장식한 실내 분위기는 곱창전골 국물을 더 진하게 해주었고,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옛날 사진들은 얘깃거리를 만들어내면서 소주와 곱창을 더욱 당기게 했다.

"뻥곱창 쥑여줘요!"

여사장은 무척 친절했는데 시원시원하고 미인이어서 술과 음식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외환위기 때 남편의 부도로 살림이 어려워지자 직접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는데 10년 전 아는 언니의 도움으로 곱창집을 시작했다고.

여사장은 돼지곱창은 양념 맛이고, 소곱창은 곱에 들어 있는 톱톱한 국물 맛이라며 국물을 '엑기스'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정성 들여 맛있게 한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고 아마추어라며 겸손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는 '뻥코 곱창'의 소 곱창전골에는 '양, 막창, 허파, 염통, 홍창, 곱창부위'가 들어가는데, 그렇게 들어가야 국물이 톱톱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진국을 맛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국물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칠맛과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심부름하는 미인 아가씨에게 "'뻥코 곱창' 간판이 정겹고 재미있고, 곱창 맛도 좋은데 진짜 한우입니까?"라고 물으니까 잠시 멍하고 바라보더니 "그람요, 뻥곱창 쥑여줘요, 뻥 아니라요!"라고 하는데 잠시 헷갈렸다. 알아봤더니 중국에서 온 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했다.

음식 주문도 지혜가 필요해

대부분 애주가는 곱창을 안주로 소주 몇 병 마시고 그냥 일어난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곱창전골을 하나 시켜서 얼큰한 국물로 속을 달래보시라. 속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과식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먹는 지혜를 짜내면 된다.

 연탄불 위에 굽는 곱창.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는데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연탄불 위에 굽는 곱창. 고소하면서도 담백했는데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한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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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을수록 고소한 진액이 나오는 소곱창. 이가 부실한데도 자꾸 가는 손을 말릴 수가 없었다.
 씹을수록 고소한 진액이 나오는 소곱창. 이가 부실한데도 자꾸 가는 손을 말릴 수가 없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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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이 가서 곱창을 주문할 때 2인분만 주문하는 게 좋다. 주인에게 미안하다고? 천만의 말씀. 야박한 도시생활에서 찌든 잘못된 고정관념일 뿐이다. 술도 한 잔씩 파는 나라도 많으니까 말이다. 퍼주기 인심으로 유명한 도시이고, 2인분만 시켜도 이것저것 덤 안주가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시도록.

곱창 2인분을 다 먹으면 곱창전골(중)을 시켜 술안주로 하면 적은 돈으로 다양한 맛을 음미할 수 있고, 몸에도 좋다. 씹을수록 고소한 국물이 우러나는 곱창에 소주 한 잔, 그리고 구수한 진국이 들어가면 술이 보약으로 용해되니까.

국물이 조금 남았을 때 밥을 한두 공기 넣고 비빈 비빔밥은 전국의 주당들에게 '진짜 술안주'로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으며 돌솥에 달라붙은 누룽지는 미각을 감지하는 혀는 물론 입안 전체를 만족하게 하는 별미 중의 별미이다.

비교적 싼 편이라는 게 마음을 끄는데, 추운 날 5-6만 원이면 네 명이 실컷 먹고 마실 수 있는 '뻥코 곱창'집을 한번쯤 들러보면 어떨까. 테이블이 다섯 개로 조금 좁기는 하지만, 가족과 친구 서넛이 추억의 앨범을 넘기면서 술잔을 주고받기에 적합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뻥코곱창, #곱창전골, #소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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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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