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앙부일구

경복궁의 사정전 앞에는 세종 때 만들어져 조선 후기에 개량된 앙부일구(仰釜日晷)의 복제품이 놓여 있다. 이는 창덕궁 대조전(大造殿) 앞과 창경궁의 풍기대 앞에도 놓여 있다. 앙부일구는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전통 과학기술의 산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궁궐을 답사하다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들은 웬만한 건물은 지나쳐도 이 앙부일구는 놓치지 않고 본다. 그런데 보다가 이내 그 자리를 떠난다. 대부분은 모르겠다는 투다.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언제 우리가 앙부일구를 보는 법을 배웠으며, 거기에 새겨진 수많은 한자들을 제대로 알거나 읽어본 경우가 있었나? 물론 이것이 비단 앙부일구의 문제일까?

앙부일구를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앙부일구를 보는 법을 알아 시각을 살펴볼 수 있음은 물론, 그 하나를 통해 우리는 당시 세계 과학 기술의 한 중심지였던 우리 궁궐의 위상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그 속에 담긴 세종의 백성에 대한 지극한 사랑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까지도 배울 수 있다.

경복궁 사정전 앞에 설치된 앙부일구이다.
▲ 사정전 앞 앙부일구 경복궁 사정전 앞에 설치된 앙부일구이다.
ⓒ 강경순

관련사진보기


앙부일구의 생김새와 시각을 재는 법

앙부일구는 중국 25사 가운데 하나인 <원사>(元史)의 '천문지'(天文志)에 보이는 앙의(仰儀)를 개량해서 만든 것인데, 이것은 이슬람 해시계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앙부일구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반구형의 솥이 위를 향해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것처럼 되어 그러한 이름을 얻었다. 현재 앙의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그 실체를 알 수는 없다. 조선은 앙의를 개량하여 조선 나름의 앙부일구로 다시 탄생을 시킨 것이다. 휴대용 앙부일구도 만들어졌는데 현존하는 것은 10여 개가 넘는다.

앙부일구의 생김새를 보자. 작곡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네 발을 갖추고 있다. 먼저 시계의 안을 살펴보자. 우선 해 그림자를 만드는 바늘이 있다. 이를 시침(時針) 또는 영침(影針)이라고 한다. 그리고 해 그림자를 받아 시각을 읽는 둥그런 반구형의 면을 시반면(時盤面)이라 한다. 이 시반면은 둥그런 구를 정확하게 반으로 잘라 그 오목한 내부 면에 눈금을 새겨놓았다. 이 영침과 시반면은 앙부일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주둥이 부분을 보면 15도 간격으로 24방위가 새겨져 있다. 자오(子午)는 남북을, 묘유(卯酉)는 동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24방위와 함께 24절기도 표시되어 있다.

영침은 반구(시반면)의 주둥이 정남쪽에서 당시 조선 후기 한양의 북극 고도만큼 내려간 시반면 위의 지점을 남극으로 하여 정확히 북극을 향하도록 박혔다. 시반면을 보면 절기선과 시각선이다. 어느 것이 절기선이고 또한 시각선일까? 쉽게 생각해보자. 절기선(節氣線)은 계절과, 시각선(時刻線)은 시간과 연관이 있다. 부도나 지도에 그려진 위선(緯線, 씨줄, 가로줄, 수평)과 경선(經線, 날줄, 세로줄, 수직)과 연관 지으면 쉽게 알 수 있다. 위선은 계절, 경선은 시각과 관계가 있으니까. 다시 말하자면 동서로 그어진 선(영침과 수직하게 그어진 선)이 절기선이고, 남북으로 그어진 선이 시각선이 되겠다.

시각선을 보자. 영침이 시작되는 부분, 다시 말하자면 정남 오시를 기준으로 왼쪽 가장자리의 묘시선(卯時線)부터 오른쪽 가장자리의 유시선(庾時線)까지 일곱 개 그어져 있다. 한 시선과 다른 시선 사이의 시간은 두 시간이다. 그 사이를 여덟 등분하여 다시 작은 시선을 그었다. 네 등분이 한 시간이니까 한 등분은 15분이 되겠다. 15분을 1각(刻)으로 하여 4각을 1시로 하였다. 세종 때는 하루 24시를 100각으로 하였는데, 조선 후기에 시헌력(時憲曆)이 도입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하루 24시를 96각으로 나눌 수 있었다. 이 앙부일구가 조선 후기에 개량된 것이다.

그런데 묘시선이 서쪽에, 유시선이 동쪽에 있다고, 바뀌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림자는 해가 비치는 반대로 생기지 않는가? 그러니 묘시선이 서쪽에, 유시선이 동쪽에 있는 것이다.

절기선을 보자. 춘추분선을 한가운데로 하여 북쪽의 동지선부터 남쪽의 하지선까지 모두 13개가 그어져 있다. 이것은 절기선의 주둥이에 적힌 절기와 연결된다. 주둥이 서쪽에는 북에서 남으로 동지, 소한, 대한, ……, 소만, 망종, 하지가, 주둥이 동쪽에는 하지, 소서, 대서, ……, 소설, 대설, 동지가 차례로 쓰여 있다.

이상 앙부일구의 생김새를 살펴보았다. 이로써 영침이 만들어낸 그림자를 따라가 시간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시각이 약 30분 빠르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영침은 북극고도의 기준이 한양이었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시각은 일본의 동경 자오선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각은 정확한 것이 아니라 빠른 것이다. 수백 년 전 우리의 과학 기술 수준은 이렇게 만만치 않았다.

제왕의 책무, 관상수시

이렇게 우리의 전통 과학 기술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훨씬 이상으로 수준 높았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 무수히 보이는 날씨나 천변 현상 관련 기사들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세종 시대의 천문학 수준은 세계적이었으며, 그에 관련된 많은 기구들도 만들어졌다 아울러 세종대에는 앙부일구를 비롯하여 많은 해시계, 물시계도 만들어졌다. 왜 이랬을까?

그것은 제왕의 가장 중요한 권한이자 책무가 바로 '관상수시'(觀象授時)였기 때문이다. '관상수시'는 '관상'과 '수시'를 합친 것인데, '관상'은 하늘의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며, '수시'는 그러한 관찰을 통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해서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단순히 과학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제왕의 중요한 정치적 활동이기도 했다.

이는 유학에서의 독특한 천관(天觀), 재이관(災異觀)과도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곧 천문이나 기상, 기후 등의 이상 현상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람에게 무언가 잘못이 있을 때 하늘이 이를 고치라고 미리 경고해주는 일종의 사인(sign)으로 인식하여,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 모든 인간사를 책임지는 왕이 혹시 자신의 정치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은가를 살피면서 이를 두려워하고 반성하는(공구수성(恐懼脩省)) 자세를 취하여야 재이가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천변이나 자연 이상 현상에 관한 풍부하고 자세한 기록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농정(農政)을 근본으로 했던 조선이었다. 국왕은 하늘의 뜻을 살피고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들을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살게 할 책임을 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기본인 농업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했다. 궁궐 안에 있었던 논은 이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상의 내용을 본다면 천문, 기상, 시각 등과 관련된 기구가 만들어지고 궁궐 안에 두어져 계속 쓰였을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세종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경복궁의 편전인 사정전과 그 주변은 세종의 치세 당시 세계 과학 기술의 한 중심지였다. 우리가 사정전 영역을 특별히 눈여겨 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더들이여, 앙부일구에서 수직과 수평의 조화를 배워라

나는 앙부일구를 보면서 세상에 대한 가르침도 그 속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서 궁궐을 살펴볼 때마다 이 앙부일구에서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한다.

앞에서 앙부일구의 시반면에 새겨진 선은 절기선과 시각선의 두 부분으로 크게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세로줄이 시각선이라면, 가로줄은 절기선이다. 세로줄은 시각과, 가로줄은 절기, 계절과 관련 있다 하겠다. 이를 경선과 위선과 연관시켜 보자. 위선은 계절과 관련 있는 씨줄, 곧 가로줄이다. 경선은 시간과 관련 있는 날줄, 곧 세로줄이다. 위선이 수평이라면, 경선은 수직이다. 일이 진행되어 온 과정이란 뜻의 경위(經緯)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다. 수평과 수직의 조화 속에 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편 옷은 씨줄과 날줄이 서로 조화롭게 얽혀야 이뤄질 수 있다. 씨줄과 날줄로 이룬 천의 짜임새, 씨줄과 날줄을 교묘하게 짜서 얽어서 만든다는 뜻의 조직(組織)이라는 단어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주로 쓰는 조직 그 말이다.

여기에서 나는 조직 관리의 가장 중요한 명제 하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수직과 수평의 조화이다. 우리 CEO들이, 정치가들이, 리더들이 조직 관리의 가장 중요한 명제가 이것임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절대로 망하거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일에 따른 역할, 서열, 위계는 분명히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조직 관리는 중구난방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역할, 서열, 위계라는 것은 한쪽의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억압, 권한 행사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역할, 서열, 위계에 따른 서로의 존중과 예의에서 출발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 우리는 이것을 어린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에게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만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말 잘못 안 것이다. 서로의 믿음을 바탕으로 서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장유유서의 진정한 뜻이다.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어른의 자격이 없다. 마찬가지로 젊은이가 젊은이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젊은이로서의 자격이 없다.

조직 관리는 그와 같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사원은 사장을, 사장은 사원을 서로 아껴주고 우러러보며 존중해야 한다. 수직은 수평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수평이 있어야 수직의 균형이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수평은 수직의 엄정함이 없다면 버티기 힘들다. 그 속에서 조직 관리의 기본은 시작된다.

세종은 앙부일구를 제작한 뒤 이것을 궁궐 안에만 두지 않았다. 시신(時神)을 그려 넣은 앙부일구를 만들어 이를 혜정교(惠政橋)와 종묘(宗廟) 남쪽 거리에 설치하게 하여 백성들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과거 제왕들이 시간을 독점하고 백성들에게 알려주는 것에 그쳤다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만든 세종의 이러한 행동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세종의 이러한 모습이 수평과 수직의 조화와 다름 아니고 무엇일까?

♧ 참 고 문 헌 ♧

문중양, <우리역사 과학기행>, 동아시아, 2006.
이태진, '조선왕조실록 - 나의 접관기', <한국사시민강좌> 제23집, 일조각, 1998.
전상운, <한국의 과학사>,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99. (2판)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홍순민, '창덕궁과 후원', <한국사시민강좌> 제23집, 일조각, 1998.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11월 5일~6일 다시 궁궐을 답사하면서 여기에 여러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제 생각을 담아 새로 쓴 글입니다. 사진은 2008년 10월에 촬영한 것입니다.



태그:#앙부일구, #세종, #수직과수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