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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사진의 살아 있는 신화, 사라 문 특별사진전(한겨레주최)이 예술의 전당 브이(V)갤러리에서 11월 29일까지 열린다. 사라 문(Sarah Moon 1941~)을 보고 느낀 첫 인상은 소녀처럼 유연하고 상냥해 보인다. 그는 창조적이려면 어린아이처럼 돼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동심과 삶에 대한 동경을 평생 놓지 않는 자의 모습이다.

 

그는 패션사진을 예술품으로 바꾸고 생의 아름다움을 환상적 동화 속에 담아 찬양코자 하는 열망이 컸던 것인가. 그에게 중요한 건 관객에게 꿈을 심어주고 상상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리라. 그의 사진은 관객을 미궁으로 빠지게 할 만큼 신비하고 매혹적이다.

 

예측불허의 우연한 순간 포착

 

 

"나는 어디서도 일어나지 않는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한 작가의 말이 신선하게 들린다. 명명할 수 없는 예측불허의 우연의 순간을 포착하여 사진을 찍겠다는 뜻인데 그 포부가 대단하다. '작약'이나 '아드리아나'는 바로 그런 우연의 일치가 낳은 성과물이 아닌가 싶다.

 

그는 사진에서 개념이나 지식보다 본능과 직감을 중시한다.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그렇게 항상 날카로운 촉수를 세우고 산다는 뜻이리라. 오프닝행사 때도 사라 문은 뭔가 찍을 것을 찾는 사람처럼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특정 장소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론이나 강령도 관심밖이다. 전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우연히 포착한 걸 잽싸게 낚아챌 뿐이다. 이렇게 그의 작업에서 키워드는 '우연(coincidences)'이다.

 

규정할 수 없는 마술 같은 사진

 

 

그의 사진은 위 '아네모네'나 '진홍잉꼬'에서 보듯 마술적이다. 그래서 마치 잠이 들었다 깨어난 것 같은 몽롱한 색조를 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상력의 폭은 더 커진다. 거기에 추상과 구상의 요소도 섞인다. 규정할 수 없는 매직이 해프닝처럼 작품 속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그가 이런 사진이 가능하게 하는 건 느린 셔터와 저해상도를 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때문이다. 이 사진기는 렌즈를 붓처럼 사용하여 그림효과를 내기가 용이한가보다. 점, 얼룩, 반점 등이 오히려 사진에 활력을 주고 고풍스런 분위기를 낳는다. 그래서 현실을 뛰어넘는 색다른 꿈과 비전과 환상을 선보인다.

 

패션사진의 새 장을 열다

 

 

사라 문은 사진작가이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그러나 20대 때 6년간 파리와 런던에서 오트 쿠튀르 모델도 했다. 패션은 그에게 능통한 분야다. 그리고 프랑스의 카샤렐, 장 폴 고티에와 일본의 이세이 미야케 등 세계패션의 대가들과 교류해왔다. 여기서 많은 영감을 얻고 패션사진이라는 새 장을 연다.

 

그는 모델과 공모하여 사진을 찍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면 그는 패션사진을 찍을 때 모델이 움직이는 것도 허용할 정도로 감정이입이 잘 되고 소통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는 모델을 그냥 찍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작가의 혼을 불어넣어 생명체로 만든다. 

 

 

그는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가졌고 그래서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를 낳기 위해서 상업사진도 마다하지 않는다. 다만 사진에 울림이나 떨림, 설레는 추억과 뜻밖의 사건을 일으키면 그만이다. 그는 이렇게 사진으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때로 사진이 예쁘기만 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그 속엔 애잔한 슬픔과 고통도 숨어 있다.

 

본 대로 아니라 느낀 대로 색채를 표현

 

 

사라 문은 인상주의처럼 본 대로 아니라 느낀 대로 색을 낸다. 위에 적청록이나 흑백도 색이 자연적이 아니고 인공적이다. 꾸불꾸불한 선을 넣고 연극에서 쓰는 어둔 조명과 때론 차가운 당혹감도 주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사진이 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상상하게 한다.

 

보이는 현실보다 보이지 않는 이상세계를 보여주며 패션사진을 더 유려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그러나 궁극적 목적은 더 자연스럽고 진실한 사진을 만드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하여간 요즘 보편화된 회화 같은 사진에서 그는 누구보다 선구적이다.

 

대상을 찍기보다는 픽션으로 쓰기

 

 

그는 사진으로 가상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두고 누구는 '팩트를 픽션으로(from fact to fiction)' 바꾸는 2차원사진이라고도 말한다. '모건'은 아더 왕에 나오는 마법사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결혼' 역시 많은 사연이 담긴 픽션처럼 보인다. 게다가 흑백의 세피아 톤은 그런 분위기를 북돋운다.

 

이는 카메라를 붓처럼 사용하여 정황을 정밀하게 그려나갔다고도 할 수 있는데 사라 문은 이렇게 대상을 렌즈에 담아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바꾼다. 이런 경지의 사진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기에 작가로서 뿌듯함을 느끼리라.

 

순간적 일상을 드라마로 연출하기

 

 

작가는 이런 작업을 2008년 영국의 사치갤러리와 인터뷰에서도 "사진은 순간의 파편을 드라마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수잔'이나 '네바'를 봐도 평범한 풍경에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빛을 주어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의 사진혈관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꿈이다. 사라 문은 몽상가로 외로움과 삶의 버거움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시적 감성과 일상의 활력을 되찾아주려 한다. 그래서 소설가 도미니크 에데(D. Edde)는 그의 작품을 두고 "상실의 끝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절망의 끝에서 유머를 찾는다"고 그랬던가.

 

컬러보다 더 미묘한 흑백의 실루엣효과

 

 

사라 문은 컬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상업미술이나 현장감을 살리거나 명암의 균형을 맞추려 할 때만 쓸 뿐이다. 게다가 컬러는 블랙코미디 같은 인생의 희비를 다 담을 수 없다. 삶을 관조하거나 추상적 분위기, 실루엣을 살리는 데는 역시 흑백사진이 제격이다.

 

그가 컬러를 달가워하지 않는 데는 유태인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다. 유년기를 밝히지 않는 걸 보면 그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2차 대전 때 독일의 침공이 시작하자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피신한다. 그의 작품에서 짙은 애수가 흐르는 건 이런 연유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런 점은 역으로 그에게 매력 포인트가 된다.

덧붙이는 글 | 예술의 전당 브이갤러리 1층 전시장. 전시장에선 사라 문의 영화 '서커스'도 상영. http://www.haniphoto.kr




태그:#사라 문, #예술의 전당, #우연의 미학, #패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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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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