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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전 입구에 자리 잡은 물레방아. 리장은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 중 으뜸이다.
 다옌전 입구에 자리 잡은 물레방아. 리장은 중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 중 으뜸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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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전 입구 한편에 있는 소원첩. 관광객은 자신의 소원을 동파문자로 나무판에 적어 메달아 놓아 흩날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려 보낸다.
 다옌전 입구 한편에 있는 소원첩. 관광객은 자신의 소원을 동파문자로 나무판에 적어 메달아 놓아 흩날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하늘로 날려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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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해발 800m가 넘는 구름의 남쪽 나라 중국 윈난(雲南)성. 윈난은 다양한 기후조건과 멋진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한 개의 산에 계절이 있고 십리를 가면 기후가 다르다'(一山有四季, 十里不同天)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윈난은 소수민족의 왕국이기도 하다. 오직 윈난에만 거주하는 소수민족은 열다섯. 아름다운 대지 위에는 모두 42개의 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윈난성 서북부 나시(納西)·티베트족자치현에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해발 5596m의 위룽설산(玉龍雪山)이 있다. 위룽설산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은 산 구릉에 헤이룽탄(黑龍潭)이라는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었다. 맑고 시린 헤이룽탄은 다시 여러 갈래로 흘러내려 리장(麗江)을 형성했다.

리장은 고산 분지의 도시다. 윈난 서북부 윈구이(雲貴)고원과 칭장(靑藏)고원의 연결부에 위치하고 있어 평균 해발이 2400m에 달한다.

리장의 행정구역은 리장시와 4개 현, 69개 향진, 446개 촌으로 구성됐다. 2007년 현재 총 인구는 121.6만 명으로, 면적에 비해 인구 밀도는 낮다. 리장은 중국 유일의 나시족 자치구역이다. 나시족은 중국에서도 독보적인 문화와 풍습을 지닌 소수민족이다.

리장의 여러 민족 가운데 나시족은 25만 명. 중국 전체 나시족 34만 명 중 74%가 리장에 거주하고 있다. 리장은 21만 명의 이(彝)족, 11만 명의 리쑤(傈僳)족 등 여타 소수민족도 적지 않다. 하지만 리장고성(古城) 일대에 나시족이 몰려 살고 있어, 리장을 나시족의 고향으로 각인시켰다.

리장고성은 쓰촨(四川)성 랑중(閬中), 산시(山西)성 핑야오(平遙), 안후이(安徽) 서센(歙縣) 등과 더불어 중앙정부가 지정한 중국 4대 고성이다. 위룽설산과 더불어 리장의 랜드마크이다. 고산도시지만, 고원지대에서 내려오는 찬바람을 위룽설산이 막아주어 겨울철에도 춥지 않은 쾌적한 기후조건을 갖췄다.

다옌전을 뒤덮은 층층이 겹쳐진 나시족의 전통 기와집들.
 다옌전을 뒤덮은 층층이 겹쳐진 나시족의 전통 기와집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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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을 다스리던 무씨 영주의 저택 입구. 왕이 살던 궁궐만큼 크고 아름답다.
 리장을 다스리던 무씨 영주의 저택 입구. 왕이 살던 궁궐만큼 크고 아름답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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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시족은 본래 간쑤(甘肅)성과 칭하이(靑海)성 일대에 살던 유목민족이었다. 지금도 '남녀 모두 양가죽을 걸치는'(男女皆披羊皮) 유목민족 특유의 복식문화가 남아 있다.

나시족이 옛 거주지를 떠난 것은 한족, 티베트인, 창(羌)족 등 강대한 주변 민족의 핍박 때문이었다. 민족의 생존을 위해 나시족은 먹고 살 목축지를 찾아 엑서더스를 감행했다.

11세기 초 쓰촨을 거쳐 윈난에 진입했다. 처음 바오산(寶山)에 살던 나시족은 송말 원초 때에야 리장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초기 정착지는 슈에충(雪崇)과 바이샤(白沙)였는데, 위룽설산 자락이라 입지조건이 좋질 못했다. 이주하는 주민 숫자가 늘어나자, 11세기 말 지금의 리장고성인 다옌전(大硏鎭)에 정착하여 도시를 건설했다.

새로운 이주지에서 평화롭게 살던 나시족에서 첫 외풍이 밀려 들어왔다. 13세기 대리(大理)국을 정벌하려는 몽골군의 침략을 받아, 2세기 동안 쌓아 올린 재부를 모두 약탈당했다.

몽골 지배는 오래 가지 못했지만,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흔적 하나를 남겼다. 진샤강(金沙江) 옆에 있는 분지라 하여 처음으로 '리장'이라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리장은 진샤강의 옛 이름으로, 진샤강은 양쯔강(長江)의 상류이기도 하다. 양쯔강 상류 변을 대표하는 마을이 곧 리장인 셈이다.

1382년 리장을 다스리던 지방관 아자아(阿甲阿)는 흥기하던 명나라에 귀부했다. 이에 명태조 주원장은 아자아 일족에게 무(木)씨 성을 하사하고 리장 일대를 통치하는 지방 영주(士司)로 봉했다.

명말 청초에 이르러서 리장은 윈난 서북부의 핵심 도시로 다리(大理)와 자웅을 겨룰 정도였다.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여행객인 서하객(徐霞客)은 "(무씨) 궁궐이 아름다워, 왕이 사는 곳과 다를 바 없다"고 남겼다.

18세기 리장에 있어 두 번째 변화가 불어닥쳤다. 청나라가 개토설류(改土設流)정책을 추진하면서 470여년의 무씨 정권을 종식시키고 중앙관리를 통한 지배를 강화했다. 수차례 정권이 바뀌었지만, 중국정부에 의해 직접 통치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다옌전 입구에서 갈라진 수로는 마을 전체 3.8㎢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어느 집이든 문이나 창문을 열면 수로를 볼 수 있다.
 다옌전 입구에서 갈라진 수로는 마을 전체 3.8㎢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어느 집이든 문이나 창문을 열면 수로를 볼 수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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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전은 전통 기와집과 그 사이를 미로처럼 굽이굽이 놓여 있는 골목과 수로는 중국 고대 건축미학과 도시계획의 활화석이다.
 다옌전은 전통 기와집과 그 사이를 미로처럼 굽이굽이 놓여 있는 골목과 수로는 중국 고대 건축미학과 도시계획의 활화석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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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은 중국인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관광지다. 오늘날 중국 각지와 전 세계에서 한 해 관광객이 500만 명 이상 몰려든다. 1996년 5000여 명에 불과했던 관광객 수는 10년 뒤에 100배로 폭증했다.

오랫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리장이 세인들에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1996년 2월이다. 진도 7의 초대형 지진이 일어나 사망 293명, 중상 3700여명의 인명피해와 수많은 건물이 붕괴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지진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중국정부와 해외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은 리장의 매력에 주목했다.

지진의 여파 속에 신도시는 폐허가 됐지만, 옛 기와집이 밀집한 고성은 피해가 적었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은 수백 년 된 목조 기와집은 70% 이상 말짱했다. 기둥과 대들보를 사개맞춤식으로 결합한 나시족의 전통 건축양식이 내진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었다.

놀라움을 가져다 준 것은 가옥만이 아니었다. 마을 구석구석까지 이어진 골목과 수로는 자연친화적이고 주민에 대한 배려가 세심했다.

다옌전 입구에서 세 갈래로 나뉜 수로는 마을 전체 3.8㎢를 가로지르며 흐른다. 어느 집이든 문이나 창문을 열면 수로를 만나 볼 수 있다. 치밀하게 조성된 도시 계획은 중국 고대 도시 중 으뜸이었다.

지진은 리장에게 재앙을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기회도 안겨 주었다. 전통민가와 도로, 수로 등 계획적이고 촘촘한 고성 구조가 강진의 피해를 적게 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유명세를 탔다. 특히 1997년 12월 중국정부가 고성 전체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시켜 리장은 도약의 날개를 달았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뒤 리장에는 관광 개발의 광풍이 불어닥쳤다. 관민이 노력한 지 10여년, 지금 리장은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도시가 됐다. 여행업에 종사하는 주민만 10만여 명이고, 시정부 재정수입의 50%는 관광산업에서 나온다.

다옌전의 중심인 쓰팡제 일대의 건축물. 쓰팡제는 과거 장터이자 회합의 장소로 이용됐다.
 다옌전의 중심인 쓰팡제 일대의 건축물. 쓰팡제는 과거 장터이자 회합의 장소로 이용됐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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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팡제에 모여 나시족 전통춤을 쓰는 여인들. 독특한 나시족의 문화와 풍습은 세계문화유산 리장의 큰 자랑거리다.
 쓰팡제에 모여 나시족 전통춤을 쓰는 여인들. 독특한 나시족의 문화와 풍습은 세계문화유산 리장의 큰 자랑거리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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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상품으로써 리장의 인기는 소비자들에게서 확인된다.

리장은 여행 마니아들이 주로 이용하는 셰청(携程)이 뽑는 중국 내에서 가장 가볼 만한 여행지 1위를 수년간 독차지하고 있다. 제1회 중국 관광산업포럼에서 선정한 중국 10대 휴양도시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리장의 번영은 지방정부와 주민의 끊임없는 노력에서 비롯됐다. 리장시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공사비 10억 위안(한화 약 1700억원)을 투입, 2010년 초 완공 예정으로 국제공항까지 건설하고 있다. 2011년 개통을 목표로 리장과 다리 간 고속도로도 공사 중이다.

리장 주민은 친절하고 정이 많기로 이름 높다. 나시족은 평소에도 민족 전통의상을 즐겨 입는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다옌전 입구 광장이나 쓰팡제(四方街)에 나와 주기적으로 춤을 춘다. 나시족은 귀찮은 법한 여행객의 카메라 세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리장 관광산업의 핵심인 고성을 단장하는 사업이다. 리장시 문물보호관리국은 2003년부터 리장고성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31만 위안(약 40억원)을 출자하여 새로이 민가 299채, 정원 236개를 되살렸다. 복원사업은 웅장한 위룽설산을 배경으로 나시족의 민족 특색을 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리장고성 복원 프로젝트는 미국 문화유산기금회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국제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2007년 10월 유네스코는 리장고성 복원사업을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지역 문화유산보호상'에 선정했다.

유네스코는 복원 프로젝트가 지역경제와 민족특색을 강화하여 건축물의 복원과 과학적인 보호를 진행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역사적인 도시를 현대화와 관광개발의 위협 속에서 효과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전통민가 복원과 더불어 마을 곳곳을 지나는 수로의 수질 향상에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옌전은 지금도 나시족의 거주공간이다. 다옌전 곳곳에 우물이 있어 주민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
 다옌전은 지금도 나시족의 거주공간이다. 다옌전 곳곳에 우물이 있어 주민들의 생활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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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 변의 물레방아는 곡식이나 동파종이 원료를 빠는데 사용되고 있다.
 수로 변의 물레방아는 곡식이나 동파종이 원료를 빠는데 사용되고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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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이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또 하나의 중요한 비결은 나시족의 독특한 문화와 풍습이다. 오늘날 한족을 제외한 중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독자적인 언어·문자·종교·예술을 보존한 소수민족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랜 세월 동안 부침이 있었지만 나시족은 자신만의 전통과 풍속을 고집스레 잘 지켜왔다. 티베트·강(羌)어계에 속하는 언어, 뜻과 음을 있는 상형문자인 동파(東巴)문자, 동파라는 사제가 주관하는 샤머니즘 원시종교인 동파교, 기본음계의 악보와 나시족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나시고악(納西古樂) 등은 중국에서도 독보적이다.

특히 동파문자는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상형문자이기 때문이다. 동파문자의 기원은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시족은 기원전부터 만물의 형상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 기록했다. 나무를 나무로, 돌을 돌로 그리는 방식으로 뜻과 음을 겸비한 상형문자로 발전했다.

나시족이 윈난으로 민족의 대이동을 하면서 동파문자는 더욱 풍부하고 다채로워졌다. 13~15세기경 완성된 동파문자는 오늘날 각종 문헌을 통해 1400여 개 글자가 확인되고 있다.

여타 민족의 문자에 비하면 동파문자의 글자 수는 그리 많지 않지 않다. 하지만 단어가 풍부해 인간의 세세한 감정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건의 기술, 시와 문학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

동파문자는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나 중국 은나라 갑골문자보다 더욱 원시적이어서 현대적인 그래픽 부호를 연상케 한다. 대담한 과장과 생략, 요약 등의 기법으로 사물의 뜻과 의미를 생동감 있는 표현한다.

예를 들어, 한자 '고'(苦)는 입으로 검은 물체를 밖으로 내뱉고 있는 모습을, '행복'(幸福)을 남녀가 함께 춤을 추고 기뻐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인간의 희로애락, 선과 악, 온갖 사물에 대한 관념을 자연본연의 감정과 감각으로 기록한 것이다.

다옌전 남쪽거리에 있는 동파문자 채자벽. 동파문자는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상형문자다.
 다옌전 남쪽거리에 있는 동파문자 채자벽. 동파문자는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상형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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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옌전 내 모든 상점 간판은 위로는 동파문자, 아래는 한자가 써져 있다.
 다옌전 내 모든 상점 간판은 위로는 동파문자, 아래는 한자가 써져 있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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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동파문자는 19세기 중엽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서구 세계에 전해졌다. 동파문자가 서양인으로 하여금 리장을 주목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1907년과 1909년 두 차례 리장을 찾은 프랑스의 파커 교수는 1913년 서구 세계에서는 최초로 동파문자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책을 발간했다. 1922년 식물 채집을 위해 리장에 온 미국인 탐험가 루크도 동파문자에 심취했다. 그는 무려 27년 동안 리장에 머물면서 동파경 연구에 매달렸다. 루크가 쓴 <나시어·영어백과사전>과 <살아있는 상형문자 동파경>은 동파문자 연구의 백미로 꼽힌다.

나시족은 동파문자를 이용해 신화전설, 종교의례, 천문역법, 민속풍습, 의학 등을 기록한 동파경을 남겼다. 오늘날 확인된 동파경의 수는 무려 1만4000여 권. 전통적인 제조법으로 만들어진 종이와 목판에 남겨진 놀라운 기록유산이다.

동파경에는 우주와 인생에 대한 고뇌, 하늘과 땅, 현세와 내세에 대한 탐색, 세상의 진리 등 철학적인 문제에서부터 하늘, 달, 산천, 새와 귀신, 물고기와 곤충 등 간단한 소재까지 다양하게 담겨져 있다. 그야말로 고대 나시족의 문명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종합 백과사전이 셈이다.

동파교 사제와 나시족 지식인은 '상형문자의 활화석'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근세기까지 동파문자를 쓰고 이용해왔다. 나시족에게 있어 인문 소양의 척도는 동파경을 얼마나 잘 쓰는 것으로 좌우됐다. 2003년 동파문자와 동파경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데에는 이러한 저력이 바탕에 깔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 동파문자는 그저 보기 좋은 옛 문자로 잊혀지고 있다. 나시족 중에서도 동파문자를 쓸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예품 제작이나 티셔츠, 수건, 머플러 등 장식품에서 상징으로 애용될 뿐이다.

지방정부가 다옌전 내 모든 안내판과 상점 간판은 동파문자로 표기하고 일부 학교를 선정해 학생들에게 강습하지만, 한자를 대체하긴 어렵다. 동파문자의 암울한 미래는 리장을 아끼는 이방인에게 가슴 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동파경이 걸려 있는 한 종이공방. 나시족은 지금도 닥나무 껍질을 이용해 전통제조방식으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한다.
 동파경이 걸려 있는 한 종이공방. 나시족은 지금도 닥나무 껍질을 이용해 전통제조방식으로 종이를 만들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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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이 산 전통종이에 동파문자를 써주는 동파. 동파교의 사제였던 동파는 오늘날 종이공방에 고용되어 동파문자를 써주며 살아가고 있다.
 관광객이 산 전통종이에 동파문자를 써주는 동파. 동파교의 사제였던 동파는 오늘날 종이공방에 고용되어 동파문자를 써주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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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Tip 1

윈난성 리장은 더 이상 오지의 도시가 아니다. 현재 중국 연해 대도시에서는 리장으로 바로 가는 항공편이 개설되어 있다.

가장 많은 항공편이 있는 도시는 윈난성 수도 쿤밍(昆明)과 쓰촨성 청두(成都), 서부직할시 충칭(重慶)이다. 그 곳에서 리장을 갈 경우, 비행기 표값을 여름 휴가철과 국경절 연휴를 제외하면 60~70%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쿤밍에는 리장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데, 대략 7시간이 소요된다. 쿤밍과 다리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다리와 리장까지는 일반 국도로 달린다. 버스비는 150위안(약 2만5500원) 안팎이다.

# 여행Tip 2

리장 내 고성과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서는 고성보호비 80위안(약 1만3600원)을 내야 한다. 투어 여행사나 일반 호텔에서는 강제로 사도록 하지만, 현지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여행객의 자유의사에 따라 구매토록 한다.

동파문자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다옌전 남쪽거리에 있는 채자벽과 종이공방을 찾아가야 한다. 종이공방에서는 전통적인 제조법으로 만든 동파종이를 판매한다. 그냥 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를 구입한 여행객에게 동파가 직접 상형문자를 써주어 기념 가치를 높여준다. 가격은 종류와 종이 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윈난, #운남, #리장, #동파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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