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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를 취소한다, 처벌을 원치 않는다' 등의 명시적 표현이 없더라도 합의서를 법원에 내는 순간 고소가 취소된 것으로 간주돼 가해자를 다시 고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따라서 피해자는 가해자 측과 합의한 내용이 나중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합의조건이 완전히 이행된 후에야 비로소 합의서를 재판부에 제출하는 게 안전하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27)씨는 지난해 8월27일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S(25,여)씨를 만나 울산 삼산동의 한 모텔로 데려가 강간한 뒤 A씨의 지갑에서 현금 3만원과 MP3를 훔쳤다.

또한 A씨는 지난해 9월2일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K(19,여)양에게 "잠깐 얘기만 하고 가라"며 청주에 있는 한 여관으로 유인한 뒤 울면서 집에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K양을 힘으로 제압하며 2회에 걸쳐 강간했다.

결국 강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장애인에 대한 준강간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A씨는 "K양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1심인 청주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김연하 부장판사)는 지난 3월 K양을 강간한 부분은 무죄로 판단하고, S씨를 강간한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K양에 대한 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것은 "사건 당시 여관비를 K양이 냈고, 피고인이 여관에서 자지 않겠다고 하자 K양이 '돈 아까우니까 자고 가자'라고 한 점, 당시 K양이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고, 여관방에서 나와 카운터 직원을 만났을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할 때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서 강간을 당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편 K양은 공소제기 후인 지난해 10월16일 A씨의 어머니를 만나 합의금 명목으로 400만원을 받기로 합의하고 1심 법원에 출석해 "합의금 400만원을 받고 가해자와 합의를 보았습니다"라는 합의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A씨의 어머니는 당초 약속과 달리 합의금으로 25만원을 건네고 나머지는 지급하지 않자, K양은 10월30일 1심 법원에 증인으로 출석해 합의를 취소하고 다시 A씨의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그러나 항소심 법원은 이 부분을 지적했다. 대전고법 청주재판부(재판장 송우철 부장판사)는 지난 7월 K양을 강간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S씨를 강간한 혐의는 그대로 인정돼 징역 1년6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록 합의서에 피고인에 대한 고소를 취소한다거나 또는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을 묻지 않는다는 표현을 명시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피고인에 대한 처벌을 구하는 의사를 철회한다는 의사로 합의서를 1심 법원에 제출했으므로 피고인에 대한 고소는 적법하게 취소됐다"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피해자가 10월30일 증인으로 출석해 합의를 취소하고 다시 처벌을 원한다는 진술을 함으로써 고소취소를 철회하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해도 그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며 "결국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한 이상, 1심 법원은 강간에 대한 입증 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할 것이 아니라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했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차한성 대법관)도 12일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K양에 대한 강간 혐의를 공소기각 결정하고 S씨에 대한 강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고, 검사가 상고이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고소취소에 관한 법리오해 등의 위법이 없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합의서, #고소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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