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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남산에는 연인들이 서로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자는 의미를 담아 걸어놓은 자물통들이 걸려 있는 철망이 있다. 세간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다녀가 이젠 자물통을 걸어놓을 공간이 비좁을 정도로 많았다.

 

이렇게 사랑한다는 다짐, 변치 말자는 다짐들은 빼곡한데 헤어지는 연인들도 많고 결혼 한 열 쌍 중 여섯 쌍이 이혼을 한다는 보도도 있으니 청춘남녀의 사랑 고백은 그리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닌가 보다 싶기도 하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싸이기는 쉽지만, 진정 사랑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족쇄를 채우고, 자기의 욕심을 채워가며 다른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사랑한다며, 변치 말자며 자물통을 연결하여 채우고, 혹시라도 누군가의 마음이 변해 몰래 찾아와 자물통을 열어버릴까 봐 열쇠를 산 아래로 던져버리고 내려왔을 터이다. '그 버려진 열쇠를 찾고 싶은데 찾지 못해 후회하는 이는 없을까? 모두 행복할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까? 아름답기보다는 흔하디 흔한 싸구려 사랑을 보는듯해서 서글프기도 했다. 그래도 그 작은 사랑의 파편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어 놓았으니 싸구려 사랑이라고 팔 일은 아닐 터이다.


 

열쇠 없는 자물통을 보면서 나는 또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이 나뉘려면 부잣집 곳간이 열려야 하는데 요지부동 곳간을 잠근 자물통을 보는 듯도 했다. 소통 부재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때, 소통의 열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혹시 잃어버려 찾을 수 없거나 자물통 구멍이 녹슬었거나 열쇠가 녹이 슬어 자물통을 영영 열 수 없는 그런 사회가 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런 사회적인 단편들이 이런 형상들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나 구구절절 쓰인 사연마다 아름다운 것들이니 그런 아름다운 마음 변치 말자는 의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자물통을 굳게 채워 지킬 것이 있고, 열쇠로 열어 풀어버려야 할 것이 있다. 이것이 뒤바뀌면 그 삶은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과연 나는 내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내 자존심의 마지노선이라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돌아본다. 때론 사랑하는 이들이 있어 끝내 지켜야 할 자존심까지도 다 내버려야 할 때가 잦지 않은가!


열쇠는 자물통을 무장해제시키지만, 자물통에 비하면 열쇠는 작다. 소통이라는 것도 무슨 거창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며, 불통이라는 것 역시도 그런 것이다.


 

불의한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불의하다고 하지 않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당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믿는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언제라도 돌아설 기회라도 있지만, 옳은 길이라 생각하고 불의를 행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기회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열쇠 없는 자물통, 거기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사랑'이라는 의미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소망을 담은 상징물들이 하나 둘 모여 자신들도 상상하지 못했던 작품을 탄생시켰다. 간혹 이곳을 찾아 자신들이 걸어놓은 자물통을 찾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그곳에 있는 자물통처럼 그들의 사랑도 여전히 건재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망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열쇠 없는 자물통, 혹시 당신의 것인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김민수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자물통, #열쇠,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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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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