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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와 쇠소깍

 

역시나 눈뜨나마자 창밖부터 내다보는 제주에서의 마지막 아침. 다행히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어제 밤, 그토록 내리던 비는 어디 가고 제주의 하늘과 바다는 그 어느 때보다 맑고 화창했다. 왜 하필 집에 갈 때가 되니 날씨가 좋은지. 혹시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어 일정을 확인해 보니 오늘 아침은 열기구 탑승이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오! 계획한대로 열기구에서 한라산을 볼 수 있겠거니.

 

기꺼운 마음으로 차를 몰아 열기구 탑승장까지 갔다. 쾌청한 제주의 하늘과 바다. 뮤직비디오에서 봐오던 바로 그런 휴양지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렘도 잠시. 탑승장에 도착한 우리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해야 했다. 열기구 첫 번째 타임은 개시됐는데 상공의 기류가 불안정해서 더 이상 운행을 할 수 없다나. 이런. 이렇게 날씨가 화창하고 좋기만 한데, 아쉬울 뿐이었다.

 

별 수 있는가.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 넋 놓고 기다리며 기상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포기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하는 수밖에.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다시 개시하면 문자라도 달라고 연락처를 남겼지만 미련일 뿐이었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쇠소깍이었다. 아내가 여행 전 인터넷을 통해 찾은 제주의 명소인데,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효돈천 끝지점에 위치한 깊은 소로서 '쇠'는 효돈(마을)을 나타내고, '깍'은 끝지점을 나타내는 제주어라 했다. 제주 현무암 지하를 흐르는 물이 분출하여 바닷물과 만나 깊은 웅덩이가 형성된 곳인데, 그 주위 계곡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워 뗏목 비슷한 제주의 민속 어선 테우를 타고 돌아다닐 수 있는 관광 상품이 개발되어 있다나.

 

쇠소깍이 멀지 않았음은 창밖으로 보이는 올레꾼들로 확인할 수 있었다. 풍광이 아름답다고 하니 올레코스로 지정될 수밖에. 이미 많은 이들이 효돈천가를 줄지어 걷고 있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과 돌아다니는데 과연 올레의 의미는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이윽고 도착한 쇠소깍. 테우를 타야 한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지만 마냥 걷는 올레꾼들만 보일 뿐, 계곡물 위의 테우에 오르는 관광객들은 없었다. 설마. 혹시 하는 마음으로 테우 관광 현수막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지만 역시나 불안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어제 밤 내린 폭우로 상류의 물이 갑작스럽게 늘어나 테우 운행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열기구에 이은 또 한 번의 퇴짜. 이런 헛걸음으로 제주에서의 화창한 오전을 모두 뺏기다니. 아점으로 먹은 제주도 특산 갈치국으로도 그 억울함은 가라앉지 않았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정오. 이젠 더 이상 서귀포 근방에서 배회할 시간이 없었다. 다음 날의 출근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천천히 제주 방향으로 차를 몰아야 했다. 좀 더 머물며 열기구도 타보고 싶었고, 여기저기 박물관도 들르고 싶었지만 어쩌겠는가. 마냥 짧은 여름휴가를 탓하는 수밖에.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용눈이 오름이었다. 그래도 제주에 왔는데 오름 하나는 올라야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제안이었다. 아내가 임신한 덕에 눈치만 보고 있던 난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래, 명색이 제주도인데 오름 하나는 올라야지. 과연 제주민들에게 오름은 무슨 의미일까?

 

그러나 오름에 앞서 우리가 향한 곳은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었다. 이전부터 아내가 추천하던 곳으로서 아내의 표현으로는 제주의 바람을 전시한 곳이라고 했다.

 

 

해변도로를 따라 제주의 동해안을 오르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타고 일주하는 이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젊은 시절, 꼭 한 번은 해보고 싶었던 제주 자전거 일주. 결혼을 하면서, 그리고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점점 멀어지는 꿈. 과연 난 그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무엇이 두려워 아직까지 뭉그적거리고 있는 것일까.

 

김영갑 갤러리는 해안가에서 좀 떨어진 제주 내륙 어느 폐교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녹슨 국기 게양대와 그 지역의 공덕비 등이 남아서 예전 이곳이 학교였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제주에는 학교 주변에 유독 조선 시대 것으로 보이는 공덕비가 많이 세워져 있었는데, 아마도 학교라는 공간이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몇 년 전 갤러리나 전시관이 되어버린 폐교를 조사한다고 돌아다닌 강화도가 생각날 수밖에. 제주도건 강화도건 이제는 학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아이들의 웃음. 그 빈 공간을 뜻 있는 예술인들이 채우고 있는 이 상황이 과연 다행인지, 비극인지.

 

 

작가의 특이한 토우들로 가득 찬 폐교 운동장을 지나고 나니 하얀 갤러리 건물이 나타났다. 전면에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큼지막이 새겨져 있었는데 정작 내 눈에 뜨인 건 바로 그 옆에 새겨진 작가의 글 한 구절이었다.

 

우리가 항상 유토피아적 삶을 꿈꾸듯 제주인들은 수천년 동안 상상 속의 섬 이어도를 꿈꾸어 왔다. 제주를 지켜온 이 땅의 토박이들은, 그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일상적 삶에 절약, 성실, 절제, 인내, 양보가 보태어져야 함을 행동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꿈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한다 하더라도 나(제주)다움을 지키지 못한다면 꿈은, 영원히 꿈에 머문다. 제주인들처럼 먼저 행동으로 실천할 때 이어도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순간 멍해지는 느낌. '둔기로 맞은 듯한 충격'이라는 상투적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이어도라는 단어 하나가 나의 심금을 울렸다. 문득 잊고 있었던 이어도. 그렇다. 제주도 사람들에게는 이어도라는 섬이 있었다고 읽은 적이 있다.

 

그것은 결국 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지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과연 난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내가 꿈꾸던 유토피아가 그냥 이렇게 일상을 소비하듯 살면 다가올 것이라고 마냥 바라고만 있는 건 아닐까. 작가의 말대로 유토피아란 내가 지금 이 순간 행동해야 닿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던가.

 

 

갑작스런 상념에 당황해하며 갤러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제 내린 폭우로 정전이라기에 또 퇴짜인가 절망할 즈음 다행히 불이 들어왔고, 나는 김영갑 작가의 내면을 좀 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고독을 삼키며 그가 남긴 제주의 오름과 바람. 그곳에는 자신이 원한 바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바를 던졌던 한 인간의 숭고한 내면이 깃들여 있었다. 또다시 밀려드는 자괴감. 과연 난 무엇을 위해 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부끄러울 뿐이었다. 도대체 나의 유토피아는 지금 어디에 있던가.

 

갤러리를 나와 다시 맑은 제주의 하늘을 바라본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체 모를 희망. 이곳 전시관이 많은 블로거들에게 제주의 명소 중 한 곳으로 추천되고 있다던데, 어쨌든 그것은 유쾌한 일이었다. 제발 많은 이들이 이곳에 와서 유토피아를 상기하고 가기를. 아직 우리들에게는 우리들의 꿈 이어도가 존재하지 않는가.

 

갤러리를 나와 아내와 함께 다시 오름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김영갑이 평생을 사랑하며 찍었다던 바로 그 오름을 오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 오르면 제주의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제주도, #김영갑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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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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