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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곶진과 함께 강화입구 지키던 문수산성
ⓒ 이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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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월곶면사무소에서 강화대교로 나아가다보면 강화해협을 마주하고 병풍처럼 선 듬직한 산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한남정맥 줄기 중 하나인 해발 376m의 문수산인데, 이곳에 강화대교 건너 갑곶진과 함께 강화 입구를 지키던 조선시대 석축산성이 험준한 정상부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적 제139호인 문수산성은 문수골과 산성포의 두 계곡을 포용하여 해안지대를 연결한 포곡식 산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은 본래의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성이 있는 산은 비솔살 혹은 비아산-통진산이라고도 불려온 산으로 강화도를 건너는 요충지였습니다.

강화대교 건너기 전 성동교차로
 강화대교 건너기 전 성동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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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성 성문을 복원했다.
 문수산성 성문을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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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고려말 몽고군은 이 산에 올라 강화를 바라보고 건너려 시도하기도 했다 합니다. 산성의 명칭은 신라시대 고찰인 문수사에서 유래했습니다. 조선 숙종 20년(1694)에 돌을 이용해 산성을 쌓았고 순조 12년(1812)에 고쳐 쌓았습니다.

잘 다듬어진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몸을 숨기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을 둘렀으며, 당시의 성문은 취예루-공해루 등 3개의 문루와 비밀통로인 암문 3개가 있었다 합니다.

강화와 김포 땅 말고도 파주, 인천, 서울 그리고 북한 땅까지 두루 보이는 이곳에서, 고종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프랑스군 로스제독이 규리르호를 기함으로 하여 포함과 해방함 및 통보함 등 7척으로 600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곶진에 상륙하여 이튿날 강화성을 점령하고, 이후 문수산성에 침입했다 합니다.

강화대교 건너 갑곶진과 함께 강화 입구를 지킨 문수산성을 찾아 험한 산길을 올랐다.
 강화대교 건너 갑곶진과 함께 강화 입구를 지킨 문수산성을 찾아 험한 산길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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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쌓은 문수산성의 흔적
 돌로 쌓은 문수산성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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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따라 문수산성을 복원중이다.
 능선을 따라 문수산성을 복원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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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문수산성에는 봉상시사 한성근이 흥선대원군의 명령으로 광주의 별파군 50명을 이끌고 수비하고 있었는데, 프랑스군이 작은 배를 이용해 성의 남문 밖에 정박해 전투가 벌어졌고 무기의 열세로 결국 해안가의 성벽과 문루 등 시설이 파괴되고 성안이 유린되었습니다.

문수산성은 1995년 일부가 조사되어 길이 16m 규모의 치성이 서남쪽 끝에서 확인되었고, 평탄지에서는 성벽이 내외겹축 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다 합니다.

현재 김포시는 능선을 따라 문수산성 복원공사와 정상부 장대지 발굴조사 중에 있습니다.

복원중인 문수산성
 복원중인 문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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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들의 출입으로 훼손된 문수산성 복원공사 중이다.
 등산객들의 출입으로 훼손된 문수산성 복원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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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문수산성, #문수산, #강화, #석축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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