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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솜털 구름에 감싸인 도봉산 5봉
 하얀 솜털 구름에 감싸인 도봉산 5봉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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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큼 너그럽고 넉넉한 품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마음이 울적할 때면 산을 찾는다. 주말(25일) 아침 아파트 뒤쪽 베란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북한산과 도봉산 풍경이 시원하고 상큼했다. 특히 도봉산 5봉은 솜털처럼 하얀 구름에 감싸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동안 무섭게 쏟아 퍼붓는 폭우 때문에 산행이 뜸했었다. 그러다가 모처럼 맑은 주말을 맞아 울적한 마음도 달랠 겸 등산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어느 산을 오를까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봉산 5봉이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그쪽으로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산이 불러 길을 나서다

당장 친구 몇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모이는 장소는 우이동 고개 입구 파출소 앞이었다. 우이령이 개방되었지만 26일까지만 무제한 개방되고 27일부터는 인터넷 예약으로 서울 쪽과 양주시 쪽에서 각각 390명씩만 입장시킨다지 않는가. 그래서 아직 우이령 탐방을 하지 못한 친구들과 함께 넘어보기로 한 것이다. 나는 이미 41년 만에 개방한 다음날 한 번 고개를 넘었었다.

집에서 일찍 출발하여 우이동에 도착했다. 우이령 입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무제한 입장이 허용된 날이 바로 내일까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친구 두 명과 함께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친구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나무 그늘 밑에는 우리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앉거나 서서 쉬고 있었다.

화려한 모습의 배롱나무꽃
 화려한 모습의 배롱나무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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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며느리 얼굴처럼 화사한 부용화
 맏며느리 얼굴처럼 화사한 부용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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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동료나 가족 친구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기에 지쳐 짜증을 내는 사람도 있었다.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미디어법인지 뭔지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거라고 요란하게 싸우고 그러는지 모르겠어? 야당들 말이야."
"그러게 말이야? 방송 그거 누가 하면 어때? 신문들이 방송 좀 하면 안 될 것 있나?"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디어 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가 아니면 조중동에 가까운 사람들인 것 같았다.

"그거, 그렇지 않습니다, 조중동 같은 신문들이 방송까지 장악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잖아도 그들이 왜곡하여 주도하는 여론몰이를 어떻게 하겠는가? 그거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정색을 하며 다른 일행들에게 미디어법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두 사람보다 나이가 조금 젊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진분홍색으로 얼굴 붉힌 능소화
 진분홍색으로 얼굴 붉힌 능소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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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직책으로 아랫사람 의견을 억누르는 사람들

"이 사람도 야당 국회의원들 하고 똑같은 소리 하고 있네. 조중동이 뭘 어떻게 여론을 왜곡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조중동이 뭘 잘못하고 있다는 거야?"

먼저 말했던 두 사람이 약간 언성을 높여 조중동을 비판한 젊은 쪽을 못 마땅하다는 듯 몰아세웠다.

"그게 아니고요. 제 말은 집권여당이 미디어법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면 안 된다는 거지요. 잘못 했잖아요? 조중동에게 방송까지 넘겨줘 장기집권 하겠다는 의도잖아요? 그러니 야당이 가만있겠어요? 두고 보세요? 앞으로..."

"뭐라고?"
"뭐가 어째?"

젊은 쪽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말을 가로막고 나서는 두 사람 때문에 그들의 기세에 눌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보아 나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젊어 보이는 사람의 직장 상사인 것 같았다.

"거기 두 분 담배 좀 안 피우면 안 되겠습니까? 주변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담배연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잖아요?"

여당의 미디어법과 조중동을 옹호하는 두 사람이 담배 연기를 푹푹 내뿜고 있었다. 옆에 서있던 비슷한 또래의 등산객이 두 사람에게 신경질적으로 항의를 하자 두 사람이 머쓱하여 피우던 담배를 발로 질끈 밟아 뭉갰다.

누가 저렇게 벌을 세웠을까?
 누가 저렇게 벌을 세웠을까?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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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무식한 자들 같으니라고..."

그들이 담배를 발로 짓밟아 뭉개는 것을 바라보던 사람이 혼잣말로 욕을 하며 우리들 옆을 지나친다. 그는 조금 전 세 사람이 미디어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듣고 몹시 못마땅했던 것 같았다.

그때 기다리던 친구들이 도착했다. 우리 일행들은 우이령 고개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고갯길도 사람들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르는 길에는 맞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아 서로 비껴지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서로 부딪치지 않게 우측통행 합시다."

그때 앞쪽에서 내려오고 있던 몇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자 마주보고 걸어 올라가던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비켜서 걷는다.

"왜 갑자기 우측통행이야? 좌측통행이면 좌측통행이지."

뒤쪽에서 올라오고 있던 몇 사람이 역시 큰 소리로 외친다. 그들은 그대로 길 왼쪽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위에서 내려오던 사람들이 옆으로 비켜서 걸어 내려와 부딪치지 않고 비켜 지나간다.

석굴암 대웅전 앞 연등과 나리꽃
 석굴암 대웅전 앞 연등과 나리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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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노랗게 피어난 원추리꽃
 샛노랗게 피어난 원추리꽃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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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아니라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어서 어느 한쪽 방향으로 걷지 않아도 부딪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종전처럼 좌측통행을 하거나 자율적으로 서로 부딪치지 않게 걸으면 될 것을 공연스레 우측통행을 하자고 큰 소리로 떠든 사람만 우스꽝스럽게 된 것이었다.

산길을 걷는데도 정도가 있다, 없다

고개를 넘어 넓은 마당에 이르자 마당 한쪽 둥글게 모여 앉아 간식을 들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머리를 땅에 박고 거꾸로 서 있는 사람이 보인다. 누가 벌을 세웠느냐고 물으니 주변 사람들은 웃기만 한다. 운동 중이라는 것이었다, 두 다리를 하늘을 향해 V자 형으로 벌리고 거꾸로 서있는 모습이 역시 여간 우스꽝스런 모습이 아니었다.

"저 사람 혹시 야당 국회의원 아닐까? 미디어법 막지 못했다고 스스로 벌서고 있는 것 아냐?"
"아니지. 어쩌면 양심이 조금 남아 있는 여당 국회의원인지도 모르지, 양심에 찔려 저렇게라도 스스로 벌서고 있는지... 하하하"

재미있는 모습이라는 듯 물끄러미 바라보던 두 사람이 물구나무 서있는 사람을 향하여 제멋대로 해석을 하고 지나친다.

내려가는 길에 석굴암에 들렀다 석굴암 길도 사람들이 많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갯길 개방 후 등산객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군 유격훈련장은 시설을 일부 해체해 놓아 사용할 수 없었다. 석굴암 대웅전 뜰 위에는 지난 4월 초파일에 걸어놓은 연등들이 마당 끝의 나리꽃과 어우러져 더욱 화려한 모습이었다.

고추밭을 지키는 누렁이
 고추밭을 지키는 누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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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스럽게 익어가는 토마토
 탐스럽게 익어가는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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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에서 내려와 교현리로 가는 길가 절벽에서 떨어져 내린 낙석은 그대로 있었다. 지난번에 다녀와 지적한 것이 조금 효과가 있었는지 울타리를 둘러놓았다. 낙석 위험을 아예 제거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울타리만 만들어 놓은 것이 너무 소극적인 것 같아 아쉬운 모습이었다.

고갯길을 다 내려가 교현리로 빠져 나가니 큰 도로가 나타난다. 의정부에서 송추를 거쳐 구파발을 잇는 도로였다. 도로를 따라 구파발 쪽으로 걸었다. 길가에 있는 집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민 능소화가 지나가는 길손이 부끄러운 듯 진분홍색으로 얼굴을 붉힌다.

바르고 추한 사람들의 모습보다 변함없이 아름답기만 한 자연

길가 화단의 몸매 고운 배롱나무 꽃이 탐스럽다.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데 여름철에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 무려 3개월 동안이나 계속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줄기의 껍질이 없는 것처럼 매끈한 배롱나무는 옛날에는 선비들과 승려들이 좋아했던 꽃이지만, 벌거벗은 것 같다하여 안뜰 규수방 근처에는 심지 않았던 나무였다.

개울가 막걸리 집에 잠간 들러 술 한 잔에 목을 축인 일행들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주제는 역시 한나라당이 억지로 강행처리한 미디어 법이었다. 한 잔 술에 얼큰하여 집권여당을 성토하며 핏대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특이한 모양의 천사의 나팔꽃
 특이한 모양의 천사의 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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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여 살펴보니 고추밭 가에 매어 놓은 두 마리의 누렁이들이었다. 막걸리 집 주인에게 물어보니 지나다가 고추를 슬쩍 따가는 사람들로부터 고추를 지키라고 개 두 마리를 배치해 놓았단다. 개들은 고추밭 보초병인 셈이었다.

"요즘 사람들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남이 농사지은 고추를 왜 몰래 따가는 거야?"

"어디 고추뿐이겠어? 대다수 국민들이 싫어하는 미디어법인지 뭔지를 그렇게 엉터리로 강행처리하는 정치집단도 있는데...."

길가 고구마 밭 옆에는 토마토 몇 그루가 서 있었다. 탐스러운 토마토가 발그레 익어가는 모습이 먹음직스럽다. 마당가 화단 한쪽에는 샛노랗게 피어난 원추리 꽃이 아름답다. 순박한 맏며느리 모습처럼 화사하게 꽃을 피운 부용화도 싱그럽고, 기다란 나팔 모양의 천사의 나팔꽃도 한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도봉산 5봉, #아름다운, #미디어법, #이승철, #우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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