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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협상타결 소식에 낙농업계와 양돈업계가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협상 무효를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15일에는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이번 협상을 규탄하는 농축산단체들의 기자회견이 개최되는 등 한-EU FTA 타결 소식에 농축산단체들의 반응은 격앙돼 있다.

'이번 한-EU FTA는 양쪽에 모두 이득이 된다'는 협상 참가자들의 발표와 유럽산 명품백·자동차·삼겹살의 세일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일부 언론의 희망적 이야기 이면엔 당장 충격을 받게 될 우리 축산업계의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있다. 이에 정부의 발빠른 피해 예방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미 양돈업계와 낙농업계는 한-EU FTA 협상 시작 초기부터 연구용역을 통해 FTA가 타결되면 약 5200억 원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협상 중단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양돈업 4200억 원 피해 추정

정부는 우리 양돈농가들의 피해를 감안, 한미FTA보다 냉장육과 냉동 삼겹살의 관세를 최장 10년까지 유지하도록 협상에 힘을 기울였다며 성공적인 협상이라고 자평하고 있지만 양돈업계가 피부로 체감하고 있는 상황은 다르다.

유럽의 삼겹살 가격은 현재 국내 삼겹살의 87% 수준으로 관세가 철폐되면 가격 격차는 더욱 벌어져 가격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특히 유럽에선 지방이 많은 삼겹살 소비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물량 소모, 즉 수급조절 차원에서 우리에게 삼겹살을 현재도 밀어내고 있는 상황으로 유럽의 양돈업계는 삼겹살에서 이익을 발생시키겠다는 의도조차 없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우리 양돈업계는 삼겹살 등 얼마 되지 않는 구이용 부이에서 대부분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기 때문에 한-EU FTA를 산업의 존폐를 가름할 중대한 사안으로 판단하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한양돈협회는 한-EU FTA가 발효되면 양돈 농가의 피해 규모가 연간 42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낙농업 1000억 원 피해 추정

EU는 낙농의 본고장으로서 미국, 뉴질랜드, 호주와 함께 낙농 4대 강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낙농업계는 최근 정부가 추진한 모든 FTA에서 피해를 보게 될 산업으로 정부의 FTA 추진 자체가 낙농산업 고사 행위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번 협상결과 치즈(관세 36%)는 15년 이내에 관세를 없애는 대신 의무적으로 저율관세로 수입하는 TRQ를 두게 되고, 탈지분유와 전지분유(관세 176%)는 현재 관세를 유지하지만 마찬가지로 TRQ를 설정하기로 했다. 유장(단백질과 지방을 뺀 우유·관세 49.5%)은 10년에 걸쳐 관세를 철폐하되, 마찬가지로 TRQ를 두어 사실상 무관세로 들어오는 물량으로 인해 우리 낙농산업의 축소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에 따르면 전지분유와 탈지분유 등의 경우 현재의 관세율을 유지하더라도 사실상 무관세가 될 TRQ 물량을 내주기 때문에 국내 낙농 농가의 피해는 연간 1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원유생산량은 210만 톤 내외로 낙농육우협회는 한-EU FTA가 발효되면 최고 1.8%의 수요 감소를 예측하고 있다. 1.8%의 물량이 많지 않은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낙농업계는 1990년대 UR협상 실패의 산물인 잉여원유를 10년 이상 처리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UR협상 실패 이후 경험했던 대규모 잉여원유 발생으로 촉발된 구조조정이 또 다시 도래할 수 있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닭고기와 쇠고기는 피해 미미 예상

유럽산 쇠고기의 경우 한미FTA와 동일한 기준인 40% 대의 관세 유지로 수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광우병 최초 발생지역답게 수입위생조건이 까다롭게 운영될 것으로 보이고 특히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호주나 미국산 쇠고기에 비해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닭고기의 경우 일부 부분육의 경우 수출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 브라질에 비해 가격 경쟁력 면에서 현저히 떨어지고 유럽지역에서 AI가 주기적으로 발병하는 등 국내 닭고기 시장에 끼칠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보여 국내 생산자들도 큰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반응은 태평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한-EU FTA 타결 이후 14일 연 기자간담회를 통해 2300억 원 정도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낙관적인 피해 전망치를 제시하고 구체적 대책은 9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돼지고기의 경우 삼겹살 가격 하락으로 농가들의 소득은 분명 감소하겠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국내에서 소비가 적은 뒷다리 등의 부위를 수출해 피해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게 장 장관이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이유다.

그러나 돼지 뒷다리 수출은 유럽 수준의 MSY 22두 달성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현재 14마리 수준인 국내 양돈업계가 조금만 노력하면 22두를 달성할 수 있다는 논리는 지나치게 희망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유럽은 이미 엄청난 양의 삼겹살을 수출하고 있고 더 수출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는 상황인데, 언제 확보하게 될지도 모르는 돼지의 생산성을 전제로 수출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여기에 수출을 위해 극복해야 할 돼지 열병의 청정화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피해액을 감추기 위해 FTA의 긍정적인 효과만을 부풀리려 하는 것은 아닌지, 축산업계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정부를 바라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축산경제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한EU FTA, #FTA, #낙농, #양돈,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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