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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정답을, 방법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어보라. 그러면 대답할 것이다. 그건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도 저리로 가야 해요. 이게 문제다. 결정적인 순간에 노무현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이, 시간이, 역사가 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 2008년 3월 11일, 누리꾼 '확신범'이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글

저보다 저를 잘 그린 글입니다...다만, 이런 말은 해두고 싶군요. 저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도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납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속았다고 생각하기가 쉽지요. 그리고 실망하고, 다음에는 세상을 불신하게 되지요.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 노 전 대통령 답변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표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표지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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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마이뉴스, 2009)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천사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로 시작된다.

이 책은 노 전 대통령의 임기 말년인 2007년 10월 8일부터 22일까지 오연호 기자가 <오마이뉴스>에 6회 분으로 게재한 '인물연구 노무현'과 서거 직후인 2009년 5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10회 분으로 후속 게재한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오연호 기자는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를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선 의원 시절이었던 1991년 처음 인터뷰를 한 이래 2007년 가을까지 무려 여덟 차례에 걸쳐 단독 인터뷰의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특히 2007년의 마지막 인터뷰는 1회 당 '네다섯 시간씩' 3회에 걸쳐 이루어졌으니 가히 심층 인터뷰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로 보아 집필자는 노 전 대통령과 가장 여러 번, 그리고 가장 오랜 시간 인터뷰를 한 최종의 저널리스트가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그는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를 주관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기(telling)'보다는 '보여주는(showing)' 기술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이런 서술 전략의 구사가 집필자의 균형적인 성향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저널리스트로서의 직업의식이 반영된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무튼 이런 서술 전략은 노무현이라는 대상을 독자에게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데 특출한 효과를 내고 있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살아 있는 노무현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추구했던 노무현의 뜨거운 열정을 감촉하게 된다. 동시에 기회주의와 기득권주의에 대한 그의 억압된 분노가 어떻게 준동했는지를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노무현의 표정과 억양까지를 마치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희망을 노래하는 '절망한 사나이'의 일대기

이 책은 40대 중반의 오연호가 20세 여대생 희망씨에게 들려주는 '절망한 사나이'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혹시 날 기억하나요? 바보 노무현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던 날, 우린 시청역 근처에서 만났지요. 신희망씨. 스무 살. 대학 1학년생이라고 했죠?(책의 맨 앞부분)

이렇게 말을 붙인 오연호는 희망씨에게, "바보 노무현은 어디로 갔나요?"라고 물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노무현은 그토록 사랑하던 시민들의 가슴 속으로 떠났노라고 자문자답한다.

이어서 오연호는 그렇게도 자기를 사랑하던 이가 왜 자살했는지 의구심을 제기한다. 역시 자문자답하는 오연호에 의하면, 노무현은 마지막까지 자유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정치인이었고 마지막까지 승부사였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과 보수언론에게 온몸으로 "이제 그만, 나로 끝내라"라고 절규하며 죽어갔다고 말해준다.

노무현은 임기 중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되자 자기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토로한다. 그는 "나 때문에 내 지지자들이 구박 당하는 것을 보면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자에게 되물었다.

"오 대표, 근데 한 번 물어 봅시다. 내가 뭘 잘못 했어요? 뭐가 틀렸어요?"

이처럼 이 책은 상당 부분이 노무현이 자기 논리를 방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람에 따라 그의 오류와 무리를 일부 지적할 수는 있겠지만, 대부분 그의 논리와 주장에는 우월한 가치가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정치인으로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내용들이다.

한미 FTA과 연정에 대한 혹독한 평가

지난 2007년 9월 2일 환담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지난 2007년 9월 2일 환담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오연호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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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임기 말까지 한미 FTA의 유용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언론 권력과 맞서 싸우는 일에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임기 말년에 기자실 폐쇄라는  강경책을 거침없이 추진한 것이다. 특히 그는 검찰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그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오류라는 것을 알지만 어쩔 수 없어서 한 일이라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 글의 앞에서 오연호 집필자는 노무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고 했는데, 그것은 노무현의 인격이나 개성과 관련된 사안에 한정된다. 집필자는 정책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의 분석력과 비판력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로 노무현의 대 한나라당 연정 제안 건을 살펴보기로 한다. 노무현은 집필자에게 연정을 제안한 것은 자기의 '자만이 빚은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나는 상대방이 상당히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수류탄은 (적을 향해) 던진 것인데 우리 내부에서 터진 것이지요."

사실 노 전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무모했을 뿐 아니라 이어진 변명은 다소 경박한 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시민 모두가 지도자가 되자. 이제 시민도 전략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시민이 연정과 합당을 구별할 줄 알아야 되고, 시민이 연정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 집필자는 지체 없이 대통령에게 의문을 표시한다.

"그러니까 노 대통령은 대연정 시도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아무런 정치적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만심이 부른 뼈아픈 패착'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발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모순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해 노 대통령은 자기에게는 모순이 없다고 방어한다. 그러고는 민주당 시절부터 연정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서, "(마침) 민주당도 분열돼 있었고 내가 수습해 갈 자신도 없었고 또 그 당 가지고 우리가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정을 제안했다고 변명한다.

이에 대한 집필자의 분석은 다소 서늘했다.

결국 준비 안 된 무모한 그 점프는 실패했다. 노 대통령의 '뼈아픈 실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의 대연정 시도는 패배주의와 승부사적 기질이 동전의 양면처럼 합쳐진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두 이질적 요소의 결합이 만들어낸 대도박, 그래서 노무현을 찍었던 그의 지지자들은 그의 시도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됩시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 사람사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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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책에서 여론보다는 민심을, '국민의 눈높이'보다는 '역사의 눈높이'를 중시한 세련된 지도자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이 "하룻밤 더 쉬어 가시지요. 대통령이 그것도 마음대로 결정 못합니까?"라고 기습적인 제안을 했을 때, 노 전 대통령이 응대한 즉석 답변은 그의 세련됨이 범상치 않음을 실감케 한다.

"큰 것은 내가 결정하지만 작은 것은 내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합니다. 의전팀, 경호팀과 상의해 봐야 합니다."

집필자는 노 대통령의 이 답 한마디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신뢰를 줬다고 말한다. 평상시에도 저렇게 시스템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책에서 노무현의 적지 않은 단점과 오류를 만나기도 한다. 먼저 그가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았던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는 자기가 북한과 합의해 놓은 것을 차기 정부가 전혀 손대지 못할 것으로 낙관했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한 정몽준과도 단일화하려 했고 박근혜와도 연정하려고 했던 그가 김근태, 천정배, 정동영과는 왜 그리도 먼 거리감을 가졌는지? 그는 임기 말 열린우리당을 깬 사람들이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판했으면서도 임기 초 민주당을 분당한 자신의 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는 국민에게 권력을 되돌려주었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일부 국민들은 그가 권력을 국민에게 되돌려 준 게 아니라 한나라당에 되돌려 주었다고 비판한다. 이런 비판에는 어떤 논리로 응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은 이 책에 나와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걸어 나가겠다고 호언했던 그가 고향 생활의 여유도 누려보지 못한 채 벼랑에 몸을 던져야 했던 현실이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시민 권력이 주체가 되는 '사람 사는 세상'과 바람직한 진보의 청사진을 그리던 그가 아니었던가? 

'패배는 수용할 수 있지만 패배주의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던 노무현, 그렇다면 그의 자살은 패배였는지 아니면 패배주의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엇이 또 있는 것인지? '권력에 위임은 하되 지배는 거부한다'고 했던 노무현, 과연 그는 죽음으로써 지배를 거부한 것인지? 나는 모든 것이 모호하기만 해서 미심쩍은 마음을 좀처럼 지울 수가 없다.

그러나 집필자는 이 책의 마지막을 신통하게도 책의 서두처럼 '희망씨에게 부치는 편지'로 장식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너무 '신통해서' 혹시 불온한 서적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는 집필자의 선량한 낙관주의에 심정적으로 동조한다.  

희망씨!
제가 찾아 나선 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노무현 공부를 하다 보면 부족한 사람 노무현과 마주칠 수도 있겠습니다. 노무현 이어달리기를 하다 보면, 함께 길을 가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족한 면들을 발견하고 실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망씨!
바보 노무현이 가르쳐 준대로,
우리 부족한 그대로 동지가 되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통령 노무현과 기자 오연호의 3일간 심층 대화, 개정판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7)


태그:#노무현마지막인터뷰, #오연호, #희망씨,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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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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