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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시 없애겠다는 것은 '부자 언론' '힘센 언론' 눈치나 살피겠다는 말"
"신문고시 폐지는 거대 전국지, 특히 조·중·동 공세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

한마디로 말도 안 된다는 볼멘 소리다. 단단히 화났다. 누가? 나이는 조·중·동과 비슷한 지역신문들이다. 해방둥이 또는 해방 이전과 직후에 창간한 신문들이 지역에도 더러 있다. 그러나 지역에서조차 조·중·동을 가장 경계해 온 그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나서서 총대를 멘 이유는 뭘까. 노기가 지면에 가득 묻어나고 있다.

대부분 예순을 넘은, 지역에선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신문들이 정부와 한나라당을 강하게 비토하고 나서 예사롭지 않다. 지난해 연말 실시됐던 사상 초유의 지면파업을 떠오르게 한다. 그 때도 정부와 한나라당이 신문발전기금을 삭감하려다 거센 반발을 샀다.

지난해 11월 지역신문들이 지역신문발전지원금 삭감에 강력 반발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즉각 이를 없던 일로 했다. 그간 줄곧 지원돼 왔던 지역신문발전기금과 신문발전기금을 각각 58억 원과 75억 원씩 삭감하려 하자 전국 11개 지역신문들이 '지면 파업'을 선언하며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비난하는 '공동기사'를 일제히 게재한 바 있다.

이들은 공동기사에서 "불법 신문 경품을 방치하고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등 서울 거대언론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어 지역언론 홀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지역방송의 경우도 민영미디어렙 도입, IPTV 재전송, 방송 중간광고 등 반지역방송 정책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고 정부를 비난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일이 또 벌어졌다. 왜 그럴까?

지방신문협회 회원사들, "정부는 부자신문 편"... 공동기획기사 대응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밥그릇을 정부가 정면으로 건드린 때문이다. 신문발전기금이 간접적인 지원이었다면 이번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들고 나선 신문고시는 그들의 밥그릇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강도가 높다. 공정위가 23일 "정부 방침에 따라 5년 이상 된 규제는 8월 23일 일괄 폐지키로 했으며 그 안에 신문고시가 포함돼 있다"고 밝히면서 불씨가 던져졌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신문고시 폐지가 곧 신문시장에서 불공정한 불법· 탈법 거래를 부추기는 최악의 선택임에도 이명박 정부는 최소한의 룰도 허물어버림으로써 서울의 몇몇 부자신문들만 살아남는 심각한 여론 독과점 현상을 초래하게 됐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신문고시는 폐지가 아니라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지난 25일 창원에서 열린 한국지방신문협회(회장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 정기총회 이후 한목소리로 모아졌다. 

당시 총회에서 각 지역 주요 일간지 사장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문법 제10조 2항과 3항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관련 부분을 삭제할 경우 지방신문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이에 강력 대처키로 결의했다. 그 첫 공동대응이 지면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사설에 이어 공동기획기사에서 이들은 신문고시 폐지를 지방신문의 생존의 논리가 아니라 지역말살 행위에 대한 대응임을 연이어 밝히고 나서 눈길을 끈다.

강원일보 이희종 사장, 경남신문 최웅기 대표이사, 경인일보 송광석 사장, 광주일보 유제철 사장, 대전일보 신수용 사장, 매일신문 이창영 사장, 부산일보 김종렬 사장, 전북일보 서창훈 회장, 제주일보 김대성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지방신문협회 정기총회에서는 무가지, 무상경품제공 등 불공정 행위 규제를 완화하는 신문법 개정에 강력 대처하기로 했다.

이들 신문사들은 총회 이후 25일 사설에서 신문고시 폐지방침에 강도 높은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더니 30일 공동기획기사를 통해 더욱 강한 톤으로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부산일보>, <경남신문>, <매일신문>은 30일 신문고시 폐지와 관련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게재하기 시작했다. 

<부산일보> "신문고시 폐지는 거대 전국지 공세에 날개 달아주는 꼴"

<부산일보>가 30일 내보낸 첫 공동기획기사.
▲ 신문고시 폐지 공동대응키로... <부산일보>가 30일 내보낸 첫 공동기획기사.
ⓒ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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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는 30일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이란 타이틀로 첫 편 '신문고시 폐지는 거대 전국지 공세에 날개 달아주는 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우선 "정부와 여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미디어법 강행처리 방침을 밝히고 있다"며 "각종 신문 관련 정책들은 하나같이 거대 전국지들을 중심에 놓고 있는 반면, 지역신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못박았다.

이어 기사는 "신문고시는 신문업계의 과당경쟁 상황을 완화시키고 신문판매 및 구독시장의 경쟁질서를 정상화해 신속·정확한 정보제공과 올바른 여론형성을 주도하도록 하는 공익이 크다"며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거대 전국지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를 제공하며 신문고시를 위반해왔다"며 각종 사례를 공개했다. "'기자협회보'가 2008년 4월 공정거래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4~2007년 신문고시 위반 총 537건 중 3대 거대 전국지의 위반사례가 445건에 달했다"는 기사는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는 사실상 독자의 선택권을 빼앗는 것으로 여론 독과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또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신문고시 폐지에 앞장서며 이들 거대 신문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형국이다"며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통해 부당 경품과 무가지를 규제하는 신문법 제10조 '불공정행위 규제' 항목을 전면 삭제하기로 한데 이어 문화체육관광부도 유가부수 인정기준을 50%로 낮춰 내년부터 시행하겠다고 지난달 공포했다"고 비난했다.

전체적으로, 정부와 한나라당 모두 각종 신문관련 정책들은 하나같이 거대 전국지들을 중심에 놓고 있는 반면, 지역신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서운함이 짙게 깔려 있다. 2편이 주목된다.

<경남신문> "정부·한나라당 하나같이 지역신문 외면하고 있다"

<경남신문>의 첫 공동기획기사.
▲ 공동기획기사 <경남신문>의 첫 공동기획기사.
ⓒ 경남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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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도 이날 '지역신문 공동기획'이란 타이틀로 가세했다. 첫 기사 '지역신문 유린하는 신문고시 폐지'에서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신문법 등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하려는 한편 각종 신문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하나같이 지역신문은 외면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2002년 7월 몇몇 신문이 제기한 위헌소송에 대해 '신문고시는 합헌이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고 한 이 기사는 "하지만 조·중·동 등 거대 전국지들은 '합헌' 판결 이후에도 끊임없이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로 신문시장 질서를 유린하고 신문고시를 위반해왔다"고 전했다.

기사는 덧붙여 "'기자협회보'가 2008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4~2007년 신문고시 위반 537건 중 조·중·동 3개 신문사가 445건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며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6월15~16일 조·중·동 지국 90곳에 대해 신문고시 준수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9곳이 신문고시를 위반했다"고 전했다. 

현 정부 들어 조·중·동의 신문고시 위반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기사는 부각시켰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한 중소신문, 특히 지역신문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기사는 지적한다. 

<매일신문> "조·중·동, 끊임없이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로 신문시장 질서 유린"

<매일신문>도 이날 '미디어 정책 이대로 좋은가'란 기획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첫 편은 '지역신문 유린하는 신문고시 폐지'란 제목으로 앞의 두 신문과 비슷한 맥락에서 의제를 끌어갔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이번 임시국회에서 신문법 등 미디어법을 강행처리하려 하면서 편향된 신문관련 정책을 끼워 넣고 있다"는 기사는 "하나같이 조·중·동 등 거대 신문사들에 혜택을 주려 할 뿐, 지역신문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고 기사 리드에서 푸념했다.

기사는 또 "지역신문은 지역여론을 형성하고 지역민들의 권리를 보호하면서 지역문화 창달로 지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공적 존재"라며 "고가의 경품·무가지로 대표되는 '과당·불법·출혈경쟁'과 '강제투입' 등 우리처럼 왜곡되고 무질서한 신문시장을 가진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문제점을 열거했다.

"특히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는 사실상 독자의 선택권을 유린하는 여론 매수행위로 자본력을 앞세운 몇몇 신문사들에 의한 인위적인 '여론 독과점'으로 이어진다는 데서 문제가 심각하다"며 "조·중·동 등 거대 전국지들은 '합헌' 결정 이후에도 끊임없이 고가의 경품과 무가지로 신문시장 질서를 유린하고 신문고시를 위반해 왔다"고 다른 지역신문들과 똑같이 지적했다.

이들 신문은 이날 기사를 시작으로 매일같이 기획 시리즈물을 통해 정부의 <조·중·동> 편향적 언론정책을 질타하고 대안마련을 촉구한다는 방침이어서 주목된다. 

<광주> <대전> <국제> "신문고시, 더 엄격해도 모자랄 판에 폐지라니"

<광주일보> 25일 사설.
▲ 이상한 공정위? <광주일보> 25일 사설.
ⓒ 광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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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신문시장에 '반칙'이 난무하며 공정거래 질서가 파괴되고 있음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신문시장 질서를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신문고시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는 지적은 다른 지역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일찍이 사설에서 분을 삭이지 못한 신문들도 있다.

<광주일보>는 25일 사설 '신문시장 불·탈법 부추기는 이상한 공정위'에서 "신문고시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공정위의 태도는 한마디로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규정하면서 "신문시장에 만연한 불법경품이 신문고시와 신고포상제 실시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되레 신문시장의 불·탈법을 더욱 부추기겠다니 공정위가 제정신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사설은 또 "메이저 신문 3사의 전국 일간지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60% 가까이 된다"며 "메이저 신문은 자본력을 바탕으로 포화상태의 신문시장에서 무차별적인 독자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건전한 신문시장 형성을 위한 최소한의 제어장치인 신문고시를 허문다면 여론시장의 심각한 왜곡으로 나타날 것이다"고 지적했다.

<대전일보>도 이날 사설 '신문고시 없애면 지방신문 시장 다 잠식된다'에서 "2004~2007년 공정위가 적발한 신문고시 위반건수의 82.9%가 조선· 중앙· 동아일보에 몰려있고, 과징금 총액의 94.3%가 이들 3사에 부과됐다"며 "사정이 이런데도 신문고시를 없애겠다는 것은 '부자 언론' '힘센 언론' '중앙 언론'의 눈치나 살피겠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경고했다.

<국제신문>도 25일 사설 '신문고시, 더 엄격해도 모자랄 판에 폐지라니'에서 "현 정부 들어 공정위가 신문시장에 대한 규제를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조짐은 감지돼왔다"며 "공정위가 지난 3월 말까지 신문 불법판촉 신고를 접수하고도 과징금을 부과한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설은 이어 "경고나 시정명령 등 솜방망이만 휘두른 셈이니 시장이 바로 잡힐 리 없다"며 "그 불법판촉은 몇몇 중앙지가 대부분 자행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이목을 끈다. 지역신문들의 정부를 향한 공동대응, 릴레이 쓴소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태그:#신문고시 폐지, #지역신문공동대응, #지면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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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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