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 제사상,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 등 유교식 기본 상차림에 어긋나는 부분도 있지만, 형수의 정성과 형제들의 혼이 담긴 소중한 제사상입니다.
 어머니 제사상, 홍동백서, 어동육서, 조율이시 등 유교식 기본 상차림에 어긋나는 부분도 있지만, 형수의 정성과 형제들의 혼이 담긴 소중한 제사상입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음력 오월 스무 아흐렛날(21일)은 1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제삿날이었다. '시민기자 기초강좌'를 마치고 군산에 도착해서 곧바로 형님댁으로 향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고소한 부침개 냄새와 마당에서 그릇을 닦던 형수님이 "어서 오세요!"라며 반겼다.  

거실문을 여니까,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과 병원에 근무하는 아내가 형님과 함께 TV를 보고 있었다. 무슨 프로를 시청하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는데, 흐뭇한 광경이었다. 마당에서 일하던 형수님도 "안나 엄마 웃음은 탁 트이고 시원해서 듣는 사람도 즐겁게 한다니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있으니까 셋째 누님과 동생 부부, 조카 부부가 왔다. 작년에 참석했던 막내 누님 부부가 빠져서 아쉬웠지만, 마침 동생이 가져온 싱싱한 광어회와 오징어를 안주로 술자리가 벌어지기도 했다.

반주를 곁들여 이야기꽃을 피우며 저녁을 맛있게 먹었는데, 사나흘 동안 일정을 빡빡하게 보낸 탓인지, 몸이 무겁고 피곤하기에 안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서야 제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성주상'을 먼저 차리는 형수

다른 해와 달리 올해는 형수님이 제사를 집례 했는데, 술을 따르고 절을 하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가족의 안녕을 빌고, 생활 속에서 겪는 고통을 하소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지 모르겠다.

제사를 집례하면서 술을 따라 올리는 조카(돌아가신 어머니에게는 외손자)를 도와주는 형수.
 제사를 집례하면서 술을 따라 올리는 조카(돌아가신 어머니에게는 외손자)를 도와주는 형수.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형수님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성주상을 먼저 차리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내가 뭘 알간디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시집오던 해부터 성주님 상부터 차려야 한다고 해서 하는 것이지"라고 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집 주인이니까 잘 모셔야지요"라고 말했다. 

형수님은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배워서 따라 할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상을 차릴 때의 진지한 표정과 몸동작 하나하나에서 고인이 된 시부모의 뜻을 기리고, 가족의 평안을 비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음을 느낀다.  

황해도에서 태어나 충청도에서 자란 형수님은 친정에서는 성주상이 무엇인지 듣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제사문화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라 언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절차와 방법보다는 마음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증이 교차하는 시아버지

술을 따라 올리고, 네 번 절을 마친 형수님은 미소를 짓는 아버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버님 아니면 내가 여기까지 안 왔을 틴디, 예쁜 손녀딸이랑 함께 만들었으니까 많이 잡숫고 돌아가세요··"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43년 전 봄에 형님과 약혼한 형수님은 '시아버지 될 분의 눈에 들어서 시집 가면 사랑을 듬뿍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동네에 자자할 정도로 마음이 부풀어 있었는데, 결혼식을 보름 앞두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고향이 같은 황해도라서 의지가 된다며 살갑게 대해주셨던 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상복을 입고 시신 앞에서 혼례를 치르고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미혼여성들의 꿈이었던 결혼드레스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40년 넘게 살아왔으니 애증이 교차할 수밖에.

음식 나눠 먹는 것도 시어머니 닮아

제사를 모두 마치고 음식을 나누는 형수. 음식을 골고루 나눈다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제사를 모두 마치고 음식을 나누는 형수. 음식을 골고루 나눈다는 게 보통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관련사진보기


형수님은 제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셋째 누님과 동생 부부, 조카 부부를 불러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과일과 부침개, 떡 등을 싸주었다. 여름이라서 음식을 먹을 만큼만 했을 터인데도 싸주는 것을 보니까 '살아도 부모 덕 죽어도 부모 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성주(城主)님'은?
성주는 집을 지키고 보호하는 가신(家神)의 하나이며 상량신(上樑神), 성조(成造)라고도 한다. 성주는 가신 중에서 가장 상위의 신이다. 한 가정의 가장을 대주(垈主)라고 하는데, 이는 가신 대표인 성주와 더불어 한 가정의 운을 결정짓는다는 의미가 있다.

한 집에는 하나의 성주만이 있다. 집을 지을 때는 반드시 성주신을 맞아들이는 상량식을 하며, 때로는 무당을 불러 성주를 받아들이는 성주받이 굿 또는 성주 맞이 굿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맞아들인 성주는 집에 부정한 일이 있거나 위험한 일이 발생하면 집을 나가버리기 때문에 다시 모시는 의식을 해야 한다.

성주신에 기원하는 내용은 가내 평안·풍년·감사·부귀·번영·무병·장수 등 복합적이다. 신체(神體)는 한지를 접어 대들보에 묶는 경우와 독이나 항아리에 쌀을 넣어 대청마루 한편에 놓는 경우가 있다. 이 독은 성주독이라 불린다. 성주 독의 쌀은 해마다 햅쌀로 바꾸며, 묵은 쌀로 지은 밥은 절대 다른 집 사람과 나누어 먹지 않는다.(브리태니커 백과)
셋째 누님과 동생이 돌아가니까 앞집, 문구점 등 이웃들에게 보낼 떡과 음식을 나누었는데, 제사 음식이 담긴 쟁반을 들고 이집저집으로 심부름 다니던 시절이 떠오르며 '음식을 나눠 먹는 것까지 어머니 닮았구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제사를 모두 마치고 제기를 닦으면서는 "어제만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태산 같았었는디, 이렇게 모두 마치고 나니까 마음이 시원하고 몸이 날아갈 것 같네!"라면서 빙그레 웃었다. 

지난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중·고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청소년 가치관 조사 결과를 보면 65,5%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답했다. 중국은 89,7%가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응답했고, 일본은 74,9%로 이웃나라와 10% 넘게 차이가 났다. 

형제들이 음식과 제주를 나누어 마시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세상에서, 예순일곱 살이 되도록 시부모 제사를 모시면서, 음식을 이웃과 나눠 먹는 형수님을 보면 '과연 집안의 어른이고 기둥이시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어머니제사, #성주상, #형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