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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는 다짜고짜 "아직도 결혼을 믿으세요?"라고 묻고 있다. 무슨 뜻인가. 이 책은 '비혼'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에세이를 모았다. 비혼은 상당히 낯선 단어다. "결혼하지 못한 미혼 여성이 아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비혼"여성임을 당당히 밝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건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남자다. 여자 친구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마는 연애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 와중에도 곧 결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여성'의 언어와 행동 때문에 곧잘 헷갈려 실수하기도 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인 셈이다.

 

그런 만큼 아직도 여성을 이해한다는 것이 까마득한데, 이런 경우의 여성이란 대개 결혼을 앞둔 또래를 의미한다. '비혼'을 이야기하는 여성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난 것이다. 그러니 그 당혹스러움을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비혼'임을 선언하게 만들었는가, 하는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책을 얼마 읽지 않아 잘못된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들의 선택은 우리가 어떤 행위와 사상을 선택하는 것처럼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들이 원했던 것이었다. 결혼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의 결정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은 남자와 여자 '결혼'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비혼을 선택한 그녀들의 가족들도 이와 비슷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독립해서 혼자 살겠다고 하면, 앞으로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온갖 방법으로 회유하거나 설득하려고 했고, 심지어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세상 무서운 줄 몰라서 그런다는 말로 그것을 합리화시키면서 말이다.

 

<언니들, 집을 나가다>의 1부와 2부는 그런 과정이 치열하게 담겨 있다. 1부 '눈물 흘리지 않고 가족과 이별하기'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른다. 누구나 어른이 되면 독립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젊은 여성이 그렇게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1부의 그녀들도 그랬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싸움까지 벌어야했다. 무엇을 위해 그랬던 것인가.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1부를 읽다 보면 손에 땀이 난다. 그들의 눈물겨운 투쟁과 그것을 거쳐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뿌듯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리라. 2부 '이토록 다양한, 결혼하지 않고 잘 살기'는 '비혼'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이 기록돼있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여성끼리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나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이야기 등이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야 잘 산다, 고 믿는 사람들의 허를 찌른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편견'이었는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3부 '뻔한 질문 따윈 두렵지 않아'는 비혼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 그리고 독립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격려와 같은 글이다. 작게는  "병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할래?", "혼자 사는데 도둑이라도 들면 어떡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처하는 법부터 넓게는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상세하게 나와 있다. '오늘도 내일도 댄스, 댄스'하며 신나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모습과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책의 마지막, "아직도 결혼을 믿으세요?"라는 말을 다시 마주치게 된다. 처음만큼 당황하지도 않고 당혹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녀들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닐지라도, 그녀들의 선택이 자유로움에 대한 갈망과 치열한 고민에서 나온 것임을 조금이나마 알았기 때문이리라. 

 

가족 밖에서의 삶을 꿈꾸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언니네, 집을 나가다>, 금성에서 온 것 같은 여자들의 또 다른 모습을 이해시켜주는 뜻밖의 지혜를 제공하고 있다.


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에쎄(2009)


태그:#언니네, #비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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