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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 대부분의 청년들이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아르바이트.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3년하고도 반이라는 시간을 꾸준히 '알바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오고 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흔히 그렇듯, 특별한 능력이 없는 한 일할 수 있는 범위는 카페, 음 식점, 편의점, PC방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편의점부터 시작해서 음식점, 술집을 돌며 다양한 경력을 쌓았지만, 누구도 인정해 주는 이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건강한 몸'과 약간의 '서비스정신'만 있으면, 하루 이틀의 교육으로 누구나 해낼 수 있는 단순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서빙한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는 것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늘어나는 가게의 매출도 나와는 상관없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기 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고, 이왕이면 남들이 흔히 하지 않는 일이길 바랐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관 알바.

 

그 곳에서 일하는 나는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 마냥 신기하고, 그저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만으로 뿌듯했던 20살의 내가 아니었다. 4년째 겪고 있는 아르바이트 현장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딱딱한 지식 이상의 것을 남겨 버렸다.

 

지난 6개월 동안 영화관에서 일을 하며 얻은 것, 혹은 잃은 것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나아가 그 안에서 보았던 우리 사회의 모습까지도.

 

"영화관 알바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음식점에서 흔히 하게 되는 서빙과 먹다 남은 음식 치우는 일에 신물이 난 나에게 '영화관'이란 그야말로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한 회사의 종업원이 아닌, '문화 전달자'이다.

 

티켓을 판매하면서도 '좋은 영화'를 추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상영하는 영화의 영상과 사운드를 체크하면서 보다 나은 관람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간혹 일어나는 영사사고에는 신속하게 대처해야 했으므로 늘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일종의 '스릴'을 느낀다.

 

매주 쏟아지는 개봉작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영화를 선택할 때 종종 물어보곤 했다. 일반인들은 개봉작의 반응을 알기 위해 네이버 평점을 찾지만, 영화관 알바는 관객 수와 영화가 끝난 후 관객의 표정을 살핀다. 포털 사이트를 통해 본 평점에는 '허수'가 존재하지만 '관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우리 사이에서는 불변의 진리다.

 

작년 여름에 개봉했던 '적벽대전'의 경우, 13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무색하게도 적벽대전이 시작하기도 전에 후속편을 예고하며 끝이 났다. 일부 관객들은 불편한 심기를 웃으며 인사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드러냈고, 우리는 미안해야만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반면에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일명 '대박영화'를 본 관객들의 즐거운 표정 혹은 '좋은 영화 잘 봤어요'라는 인사는 바쁜 업무 중에서도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이유다.

 

영화관 알바생만의 특권이라고 한다면 개봉 날 새벽, 필름테스트를 통해 남들보다 미리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전 세계 동시개봉작이었던 '원티드'의 경우, 일한 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며 아침을 맞이했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을 내보내고 상영관 뒷정리를 할 때는 영화음악을 들으며 캄캄한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영화관 특유의 싫지 않은 냄새와 잔잔한 영화음악은 분주한 근무시간 중에 5분간 짧은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물론, 아이들이 쏟아놓은 팝콘을 쓸어야한다거나 공포영화 상영 후 그 음악을 들어야할 때는 빼고!

 

영화관 알바가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정말 영화를 공짜로 보는지'다. 그렇다. 주말과 관객 수가 많은 영화를 제외하고는 하루에 한 편씩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하나. 혹시 영상이 흔들리지는 않는지, 자막이 잘리지는 않는지 노심초사 한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에서 영화의 여운을 즐기고 싶지만, 빨리 청소하고 입장을 받아야하는 빠듯한 스케줄을 알기에 상영관을 서둘러 빠져나간다.

 

영화가 모두 끝나고 불이 켜질 때까지 나가지 않는 고객을 우리는 일명 '진상손님'이라 부른다. 영화관 벽에는 '성숙한 관람문화를 위해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감상하자'는 멘트가 적혀있지만 우린 '성숙한 관람문화'보다 청소가 급하다.

 

이처럼 영화관 알바생은 특별한 경험을 하는 대신, 때로는 불편함을 겪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약과다. 화려한 문화 공간 속에 가려진 영화관의 운영 시스템은 나를 여러 번 울렸다.

 

<영화관알바체험담2>계속됩니다.

"1분 지각에, 30분 연장근무?"

첨단 문화 공간 속에 가려진 숨 막히는 영화관

덧붙이는 글 | 5부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이기사는 http://blog.ohmynews.com/haimil87/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영화관 ,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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