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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과 소송에서 맞붙어 이겼다. 그것도 변호사 없이 '나 홀로 소송'에서다. 서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려 했지만 경찰이 막아 피해를 봤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서 88명이 10만 원의 위자료를 받게 된 것이다.

 

한미FTA저지 경남도민운동본부는 지난 5월 28일 대법원 제3부(주심 박시환 대법관)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경남 20개 시·군의 노동자·농민들이 2007년 11월 11일 '2007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하려 했지만, 경찰이 원천봉쇄한 것이다.

 

이에 의령·함안·양산지역 시민 88명은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위자료(6801만9780원)를 달라며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원고가 1심과 2심 모두 이겼고, 대법원까지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은 경찰의 상경원천봉쇄는 위법한 공무집행이라 보았다. 서울 집회가 공공의 안녕질서 유지 등의 이유로 적법하게 금지처분 됐다손 치더라도 집회 예정시간보다 무려 9시간 30분 전에 400여km나 떨어진 곳에서 상경하려 했다는 행위만으로 범죄행위가 목전에서 행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것.

 

이번 소송은 이병하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위원장이 맡아서 했다. 그는 2007년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 때 '경남범국민행동의날 조직위원장'으로 있었다. 경남도청 공무원 출신인 그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본부장으로 있다가 해직되어 시민운동에 나섰다.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 '공권력 남용'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 승소한 이병하 위원장으로부터 소감과 함께 앞으로 계획을 들어보았다.

 

- 소감은?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경찰이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대법원에 상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명박 정부가 공권력의 기를 살려주고 가는 부분이 있어 조금 우려했다. 그런데 1심과 2심 판사와 대법원도 경찰의 실질적인 공권력 남용이 명확하다고 본 것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가 공권력을 남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법부 양심이 살아 있는 것에 반갑고 기대치를 갖게 되었다."

 

- 소송을 내면서 변호사 없이 왜 혼자 했는지?

"시민사회단체가 실질적으로 상근자들의 인건비도 주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열악하다. 그런데 당시 상경 집회를 위해 많은 돈을 거두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송비용을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100% 이긴다는 보장도 없었다.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찰로부터 자료가 나오고,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 틀림없이 이긴다고 생각해서 하자고 했던 것이다. 이전에 공무원 생활하면서 그런 부분을 다루었던 지식도 있었다. 주위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리라 보았다. 처음에는 소송 당사자 신청을 했을 때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도 됐는데, 법원에서 받아 주었고 그래서 끝까지 갔던 것이다."

 

- 소송 비용은 어느 정도 들었는지?

"인지대가 전부였다. 큰 금액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50만 원 정도였다. 당시 경남진보연합의 자체 돈으로 했다. 상근자 월급을 못 주고, 그 돈을 돌려서 인지대로 썼다."

 

- 소송을 진행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우리가 시민사회단체나 일반 국민들이 법의 지배 간섭을 받으면서 법 가까이 가려는 게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법은 권력을 잡은 자들이 마음대로 조종한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보니, 당하고도 거기에 대응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처음 소송을 내려고 하니까 주위에서도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였다. 지난해 촛불문화제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불법집회니 뭐니 하면서 출두요구서에다 구속까지 시켰다.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기본권을 행사하는데, 공권력이 제한해 오면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그런 부분에 더 관심을 갖는 형태로 움직여 주었으면 한다. 인권 등 작은 권리라도 기본권이 침해되면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 소송을 진행하면서 경찰에 대항할 자료들은 어떻게 마련했나?

"초기에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부터 공부하고, 기본 부분만 갖고 대응했다. 소송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경찰측으로부터 자료들이 나왔다. 경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물인데, 그 자료들이 오히려 우리한테 유리하게 된 것이다. 경찰이 낸 자료가 우리들이 이기는데 증거자료가 된 셈이다.

 

가령 경찰이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앞두고 경찰서장 회의를 한 모양인데, 그 회의자료가 나왔다. 그 회의 자료에서는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를 처음부터 불법으로 보았고, 서울에는 5만 이상이 모이면 교통이 마비되니까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각 지역마다 통제 수치를 정해 놓았다. 그리고 경찰은 말과 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당시 경찰서장 회의 자료에 들어 있는 내용을 보고 개탄했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찰서장의 회의 자료를 경찰이 법정에 증거자료로 제출한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역으로 우리한테 유리한 증거자료로 법정에서 주장했다."

 

- 이번 소송에는 의령·함안·양산지역의 88명만 참여했는데, 추가로 소송을 낼 것인지?

"당초에는 많은 지역과 사람들이 소송을 낼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긴다는 보장도 없어 우선 3곳만 한 것이다. 당시 경남지역 20개 시·군에서 상경하려 했지만 경찰에 의해 막혔다. 물론 일부 상경한 사람도 있었다. 위자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공소시효가 3년으로, 아직 남아 있다. 다른 지역에서도 추가로 소송을 낼 것이다. 조만간 시민사회단체에서 회의를 해서 결정할 것이다.

 

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공권력 남용을 막아야 한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방경찰서에 신규로 들어오는 경찰들한테는 이번 판결이 공권력 오남용의 교과서가 되기를 바란다. 당시 상경집회를 막은 것은 경찰청과 경남지방경찰청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지만, 전국의 일선 파출소에서 공명정대한 공권력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당시 '범국민행동의 날' 상경집회가 차단되면서 지역 곳곳에서 경찰과 마찰이 빚어졌고, 일부 시민들은 형사 사건으로 되어 법정에 서기도 했는데?

"의령 등지에서는 경찰이 상경을 맞으면서 충돌이 빚어졌고, 일부 시민들은 형사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현재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형사사건에서 검찰은 애당초 폭력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경찰이 막아서 그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형사사건에 관련된 사람들도 이번 민사 판결에 따라 참작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법원까지 공권력의 오남용을 인정한 것이기에, 형사사건 변호사는 통해 자료를 제출하고 거기에 합당한 주장을 하도록 하겠다. 형사사건의 원인 제공을 경찰이 먼저 해놓고, 뒤에 공무집행 방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

 

- 다른 지역에서도 상경집회 원천봉쇄와 관련해 소송을 내서 이긴 사례가 있는지?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다. 아마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지역은 아마도 안 된다고 보고 안 했을 수 있다. 당시 전국적으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번 소송에서 이겼으니까 다른 지역에서도 소송을 내면 될 것이라 본다. 법원에 불만족스럽더라도, 헌법의 기본 정신은 그러하다는 것을 명확히 받아놓아야 한다."


태그:#공권력 남용, #상경집회, #원천봉쇄, #이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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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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