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진은 외형적으로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실적이다. 하지만 사진은 시간과 시간, 사물과 사물 그리고 공간과 공간의 순간적인 만남이자 절취의 결과물이므로 한 장의 사진은 애매모호하고 극단적으로 사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은 그 사용목적과 관계없이 다양한 내용과 의미를 드러낸다. 당대의 문화와 삶이 반영되어 있고, 그 사진을 찍은 순간에 내재된 작가의 심리적인 상황도 사진의 내용과 얽혀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내용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을 보는 이들은 다양한 문화적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사진은 순간적으로 이미지가 형성되어 최종 결과물로 드러나지만, 그것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작가로서의 고뇌와 인문학적인 학습과정 등 작품의 외형에는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과정이 누적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단순한 기록사진이나 기념사진 그리고 상업적인 목적의 사진과 예술사진 등 여러 목적의 사진이 존재하는데, 그 사진들이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메시지가 명료하게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사진가의 사진적인 표현능력과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예술로서의 사진에는 작가의 표현목적 외에도 작가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작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 외에도 동 시대의 문화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작가도 미처 깨닫지 못한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서 한 장의 사진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인문학적인 소양과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한다. 그것이 사진이 타 매체와 구분되는 매력이기도 하다.

 

 

 

청계천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이다. 그런데 광복과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지역은 슬럼화 되었으며, 위생과 도심경관의 개선을 목적으로 청계천 복개계획이 세워졌다. 그러나 1971년 청계천 고가도로가 완공되고, 교통 혼잡과 환경훼손의 문제가 심해졌으며, 고가도로의 유지보수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등 경제적 비효율성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번에 갤러리 브레송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김학리는 이러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있는 청계천 주변풍경을 표현대상으로 삼았는데, 주로 청계천복원 공사를 시작하기 직전에 청계고가도로를 중심으로 펼쳐진 풍경을 기록하였고, 복원 공사 중인 청계천의 상징적인 밤풍경도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작가는 역사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많은 사연이 내재되어 있는 청계천이라는 특정한 지역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찍었는데, 표현대상을 통하여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지극히 사적인 추억과 감정을 재생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이번에 발표한 청계천 사진들은 사회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이라기보다는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경험과 주관적인 미감이 누적되어 생성된 창조적인 조형언어이다. 그 결과 이번 전시를 보는 관객들은 인화지 표면에 재현되어 있는 이미지들을 매개로 작가의 사적인 감정과 사유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작가가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은 여러 가지로 복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지극히 객관적인 태도로 다가가서 찍은 사진이 있는가 하면 작가의 감정적 요소와 에너지가 충만하여 지극히 주관적인 태도가 드러나는 사진도 있다. 그것은 작가 자체의 내면이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층위의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 복잡 미묘한 사고체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결과이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작가가 선택한 표현대상과 카메라 앵글에서 작가의 미묘한 심리적인 흐름과 직, 간접적인 경험 그리고 인문학적인 소양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 흔적들이 느껴진다. 전시 작품마다 사회적인 현실과 작가 개인의 회고적인 기억이 내재되어 보는 이들의 지각에 감정적인 충격을 주는 내피와 외피가 생성된 것이다. 특정한 사회적인 현실과 작가 개인의 사적인 기억이 얽혀서 생성된 결과물이 김학리의 '청계천 블루스'이다.

 

도시풍경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차갑게 또는 뜨거우면서도 역동적으로 다가오는데 변화무쌍한 풍경 그 자체가 초현실적이면서도 현대성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리고 도시의 공간은 자연물보다는 인공물로 가득 차 있는데, 후기 구조주의 이론가 쟝 보드리야르의 이론이 시각화 된 듯하다. 동 시대문화의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지시적인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그 자체가 가장 사진적인 소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동 시대의 많은 사진가들이 자연풍경이 아닌 도시를 표현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도시가 동시대인들의 삶과 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표현대상이 도시에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 그 자체가 동시대 사진가들과 지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 코드가 일치하는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은 자연이 아니고 인공물로 그 구조를 이루고 있는 도시이다. 그래서 동시대 사진가들의 가장 큰 관심사도 도시에 있다. 도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는 사진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표현대상으로 영원히 남아 있을 것 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김학리의 청계천사진들도 그러한 동시대인들의 심적 세계를 알레고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일시 : 2009. 5. 8 ~ 5. 21 

장소 : 갤러리 브레송 


태그:#청계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