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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당당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국 무너졌다.

 

'손 크고 마당발'이라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측에 건넨 '600만 달러' 때문이 아니다. '40년 지기' 친구이자 최측근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공금 횡령' 때문에 지지자들에게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호소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정 전 비서관의 청와대 공금 횡령은 그를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뜨렸다. 그렇다면 정 전 비서관은 '왜' 그리고 '어떻게'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것일까?

 

'묻지 마 예산' 매년 100억원대... 정 전 비서관이 지출에 전결권 행사

 

박연차 게이트를 수사중인 대검 중앙수사부는 지난 21일 저녁 정 전 비서관을 전격 구속했다. 그가 받은 혐의에는 '뇌물수수' 외에도 '횡령'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2005년부터 2007년 7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총 12억5000만 원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했다는 것.

 

노 전 대통령과 정 전 비서관은 1972년부터 친분관계를 맺어왔다. 그렇게 두터운 친분관계는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을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발탁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37년간의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청와대의 인사·경리·시설관리·자금 등을 총괄하는 청와대의 핵심요직에 앉힌 것. 

 

정 전 비서관은 2003년 9월부터 2008년 2월까지 4년 반 동안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까지 청와대 살림살이를 도맡아온 셈이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의 지위와 관련 다음과 같은 내용을 구속영장에 '특별히' 추가했다.

 

"특히, 피의자는 대통령 비서실에서 국가의 회계사무 중 지출원인행위를 담당하는 재무관으로서 대통령 비서실의 업무추진비 및 특수활동비 등에 대한 집행 및 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다."

 

'특수활동비'란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그래서 돈이 사용된 뒤에 사용처가 남지 않는다. 감사원 결산감사나 국회 자료제출 대상에서도 특수활동비의 사용내역은 제외된다. 특수활동비는 '묻지마 예산'이라고 부를 정도로 '감시체계'에서 벗어나 있다.

 

정 전 비서관은 100억원대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경리담당 직원으로부터 현금으로 건네받아 보관한 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수시로 지출했다.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 특수활동비의 지출에 전결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고 횡령은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중대 범죄"

 

국회 자료에 의하면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특수활동비는 2003년 103억원, 2004년 106억원, 2005년·2006년 108억원, 2007년 111억원 등 대략 100억원대를 유지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특수활동비 지출에 전결권을 행사하는 지위를 이용해 총 12억5000만 원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했다고 구속영장에 적시했다. 횡령 기간은 2005년부터 2007년 7월까지이고, 횡령 횟수는 모두 여섯 차례이다.

 

정 전 비서관은 2005년 2월 2억 원을 시작으로 2005년 말과 2006년 초 1억 5000만 원, 2006년 1월께 2억원, 2006년 봄께 2억원, 2006년 8월께 2억원, 2007년 5월부터 7월까지 3억원 등 총 12억 5000만 원을 횡령했다. 

 

"이로써 재무관인 피의자는 국고에 손실을 미칠 것을 인식하고 그 직무에 관하여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 5천만원 상당을 횡령하였다." 

 

정 전 비서관은 이렇게 횡령한 12억5000만 원을 2∼3명 지인들의 차명계좌에 입금한 뒤, 은행채권과 주식, CMA(자산관리계좌) 등에 은닉·관리해왔다. 검찰은 이를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이는 법정형이 무기 또는 10년(국고 손실의 경우 5년) 이상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로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대통령 최측근 인사인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서 누구보다도 높은 청렴성이 요구됨에도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고 국고를 횡령한 것으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

 

특수활동비는 횡령에 무방비... 그럼에도 '세금 도둑질'은 충격 그 이상

 

검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정 전 비서관이 하필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것일까 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 21일 밤 구속수감되기 직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 주려고 했다"고 횡령 이유를 설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활동자금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에게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 퇴임 이후 활동에 경제적 도움을 줄 만한 한 후원자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왜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공금에 손을 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쓰다 남은 특수활동비를 반납할 경우 그 다음해 책정되는 특수활동비가 축소된다는 점에 착안해 남은 돈을 자연스럽게 빼돌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사용처가 남지 않고 감시체계도 없는 '특수활동비'의 특성을 이용해 손쉽게 돈을 횡령했다는 것.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의 저자인 정광모 <여의도통신> 선임기자는 "정 전 비서관이 횡령했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쉽게 횡령할 수 있는 구조가 더 큰 문제"라며 "1년에 특수활동비를 3억씩 들고 나가도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 선임기자는 "정 전 비서관도 이런 시스템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돈을 빼돌린 것 같다"며 "이번처럼 터지지 않았을 뿐이지 이전 정부들에도 특수활동비 횡령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선임기자는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국회 운영위에서 심의하는데 사용내역도 자세하지 않고, 위원장도 여당이 맡고 있어 자세하게 심의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특수활동비 횡령은 명백하게 '세금 도둑질'에 해당한다. 정 전 비서관의 횡령은 '권력의 심장부에서 이루어진 세금 도둑질'(23일자 <경향신문> 사설)인 셈이다. 특히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참여정부에서 이런 '세금 도둑질'이 일어났다는 것은 충격 그 이상일 수밖에 없다.  

 

검찰과 '맞짱'을 뜨던 노 전 대통령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그는 22일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자신의 책임을 통감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태그:#박연차 리스트, #정상문, #특수활동비,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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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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