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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이 뇌물수수·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된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 측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수상한 돈거래 의혹 등을 둘러싼 검찰의 수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검사장 이인규)는 22일 오후 4시경 소환조사의 사전 작업으로 서면질의서를 노 전 대통령에게 보냈다. A4 7쪽 분량의 이 서면질의서에는 '600만 달러+3억 원'의 실체, 정상문 전 비서관의 횡령 등과 관련된 '중요 쟁점사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조사'는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의 본격적인 진실게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할 내용이 상당히 많고 쟁점도 많다"며 "서면질의서에는 (사건과 관련된) 핵심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검찰은 물론이고 노 전 대통령 측도 신중한 반응을 보이며 '서면질의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김경수 공보비서관은 "문재인 전 비서실장을 통해 서면질의서를 받았다"면서도 "질의서 내용을 일일이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검찰의 수사가 ▲ 500만 달러(조카사위·장남) ▲ 100만 달러+3억 원(부인 권양숙씨) ▲ 12억500만 원(최측근) 등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에서 서면조사 내용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서면질의서를 전달받은 뒤 2시간이 지난 오후 6시경, 인터넷 홈페이지(사람사는세상)의 '함께 생각해 봅시다'란에 "홈페이지를 닫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면서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밝혔다.

 

[쟁점1] 500만 달러는 과연 장남 노건호씨와 무관한가?

 

500만 달러는 지난해 2월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송금한 돈이다. 연씨는 이 500만 달러를 종자돈으로 타나도인베스트먼트와 엘리쉬&파트너스라는 창업투자회사를 세우고 미국·베트남·태국·한국 등에 투자했다. 이렇게 투자된 규모는 비용을 포함해 300만 달러 정도다.

 

문제는 이 500만 달러의 투자 흐름에 노 전 대통령의 장남 건호씨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계좌추적 등을 통해 "노건호씨가 500만 달러 운용에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결론내렸다. 이는 "박 회장이 투자금 명목으로 조카사위에게 건넨 돈"이라는 노 전 대통령의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검찰은 건호씨가 노 전 대통령의 재직기간인 2007년 12월과 2008년 1월 베트남과 한국에서 박 회장을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건호씨가 지난해 10월 LG전자에 복귀한 데에는 500만 달러의 '복잡한 투자'를 인지한 노 전 대통령의 '압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조카사위에게 투자금 명목으로 건네졌다는 500만 달러가 사실은 장남 건호씨의 돈이라는 주장이다. 이것이 검찰과 노 전 대통령이 첫 번째로 다퉈야 할 사항이다. 

 

[쟁점2] 원화가 아닌 '달러'로 받았나?

 

100만 달러는 지난 2007년 6월 말께 박 회장이 자신의 측근인 정승영 정산개발 회장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씨에게 건넨 돈이다. 박 회장은 100만 달러를 급하게 마련하기 위해 회사 직원 130여 명을 동원해 원화 10억 원을 달러로 환전했다. 권씨는 비공개 검찰조사에서 자신이 박 회장에게 요구해 '달러'로 받았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왜 권씨는 원화가 아닌 미화로 돈을 받았을까? 검찰은 미국에 유학 중인 자녀의 유학비 등을 대기 위해 달러로 돈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두 자녀와 관련된 외환거래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것도 이러한 의혹과 관련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일부 측근 인사들도 "100만 달러로 갚으려는 돈에는 권 여사가 진 빚에다 자녀들의 유학 비용에 쓰려고 조달한 빚이 일부 포함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실제 장남인 건호씨는 지난 2006년 6월 휴직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난해 10월 LG전자에 복귀했다. 또한 딸 정연씨와 사위 곽상언 변호사도 지난 2004년 10월 미국 뉴욕대 로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측은 "100만 달러가 해외에 나간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권씨가 검찰에서 진술한 대로 '국내 채무 변제용'으로 100만 달러를 썼다는 것이다. 물론 두 자녀의 유학비 등을 대기 위해 진 '달러 빚'을 나중에 갚기 위해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았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국내 채무 변제용인데 왜 달러를 요구해 받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결국 이러한 의혹을 풀 수 있는 관건은 권씨가 계속 공개를 거부하는 100만 달러 사용처다. 검찰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100만 달러 사용처를 공개하라고 노 전 대통령 측에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 

 

[쟁점3] 권양숙씨는 왜 거짓진술을 했나?

 

'거짓진술' 논란도 검찰과 노 전 대통령 측이 다퉈야 할 사안이다. 권씨는 지난 2006년 8월 권씨는 정상문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았다. 권씨는 검찰에서도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으로부터 3억 원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권씨가 받았다고 주장한 3억 원은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권씨가 거짓진술을 한 것이다.

 

권씨의 '3억 원 거짓진술'은 '600만 달러 실체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동안 노 전 대통령 측은 일관되게 "6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다. 500만 달러는 조카사위에게, 100만 달러는 부인에게 건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권씨가 받았다는 3억 원이 정 전 비서관의 차명계좌에 입금된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이러한 주장은 상당 부분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검찰은 '600만 달러+3억 원'의 종착지를 노 전 대통령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이렇게 '물증'을 제시했음에도 노 전 대통령 측은 종전의 해명을 되풀이했다. 100만 달러는 물론이고 3억 원도 권씨가 받았다는 것. 권씨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의 '정상문 차명계좌' 발견에 노 전 대통령 측이 적잖이 당혹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억 원 거짓진술'은 '청와대 공금 횡령사건'의 예고편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쟁점4] '정상문 특수활동비 횡령' 사실을 전혀 몰랐나?

 

"'사실'을 지키고 싶었다"는 노 전 대통령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은 최측근인 정 전 비서관의 청와대 공금 횡령 사건이었다.

 

정 전 비서관은 지난 2005년부터 2007년 7월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총 12억5000만 원의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혐의로 21일 밤 구속됐다.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주려고 했다"고 횡령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도덕적 권위를 내세운 참여정부의 핵심인사가 국민의 혈세인 세금을 횡령했다는 점에서 충격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22일 오후 검찰로부터 서면질의서를 접수한 직후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정 전 비서관이 공금횡령으로 구속된) 마당에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며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고 스스로를 질타했다.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의 횡령사실을 전혀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이날 노 전 대통령은 "그 친구가 저를 위해 한 일"이라고 했다. 정 전 비서관은 전날 밤 구속되기 직전 "노 전 대통령은 전혀 모르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40년 지기'의 발언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드물었다. 오히려 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대응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검찰은 "현재까지 노 전 대통령과의 관련성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3억 원뿐만 아니라 청와대 재직 기간 중 횡령한 특수활동비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돈과 노 전 대통령의 관련성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다.


태그:#박연차 리스트, #노무현, #서면질의서, #권양숙, #노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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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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