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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얘들아, 그게 아니야. 13년간이나 정들었던 차를 폐차하는데, 아빠 마음이 좋겠어? 너희들 크던 추억이 차에 스며 있단 말이야."

 

며칠 전부터 아내가 읊조렸던 말입니다. 아내 말처럼 서운합니다. 정(情)은 생물(生物)에게만 드는 게 아니나 봅니다.

 

'자동차 등록번호, ○○××○××××. 차종, 소형 승용. 용도, 자가용. 차명, 아벨라(1996년식).

 

"우리 가족 다 같이 타고 한 바퀴 드라이브 어때?"

 

"아빠, 폐차했어요?"

"아니, 내일 하려고…."

 

드디어 폐차 하루 전인 19일 밤이 되었습니다.

 

"내일 폐차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 다 같이 타고 한 바퀴 드라이브 어때?"

"좋아요."

 

아들은 농구공까지 챙겼습니다. 밤안개가 와이퍼를 작동시킬 만큼 자욱합니다. 도심을 벗어나니 비상등을 켜야 할 상황입니다.

 

"아빠, 조금만 더 빨리 달려요."

"야, 차 보내는 마지막 '종승식'에 우리 가족 다치면 좋아?"

"그래도 너무 느리잖아요. 뒤차들이 불을 빵빵이 켜고 노려보잖아요."

 

종승식, 처음 차를 몰던 때처럼 '느릿느릿' 갑니다!

 

아내는 침묵입니다. 우리 부부는 이 차를 '적토마'라 불렀지요. 아마, 아내는 결혼 전 연애시절과 그간의 세월을 회상하는 듯합니다. 연애시절부터 스틱에 손 올리게 하고, 그 위에 덧 올린 세월이 12년쨉니다. 차는 이보다 일년 더 됐지요. 

 

 

"여보. 아이들 서너 살 때 뒤 의자에 뉘였는데, 당신이 브레이크 밟는 바람에 떨어져 앙앙거릴 때 생각나요?"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조금 빨리 달리면 "아빠, 너무 빨라요. 천천히 가요"했던 녀석들이 "아빠, 너무 느려요. 빨리 가요"로 바뀌었지요.

 

밤안개는 종승식 계획을 바꾸게 했습니다. 원래 여수시 화양면을 크게 돌 생각이었는데 최소단위로 바꾸게 한 거죠. 처음 차를 몰던 때처럼 '느릿느릿' 갑니다. 뒤차들이 알아서 피해갑니다.

 

"사람들도 죽으면 수의 입히잖아요." ... '적토마 잘 가'

 

"누나 아빠가 농구장 들렀다 갈 것 같아, 아니면 그냥 집으로 갈 거 같아? 나는 100% 그냥 간다. 아빠, 농구장 갈 거예요?"

 

녀석이 설레발을 칩니다. 아이들과 농구를 합니다. 아내는 차에 남겠다고 합니다. 농구를 하다 말고 차로 왔더니만 아내는 누워 있습니다.

 

"여보, 알아요. 나는 처녀 적, 차 사면 소원 같은 꿈이 있었어요. 비오는 날, 음악 켜놓고, 비 소리 들으며 비를 보는 것이었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아내가 손수 짰던 시트커버를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논합니다.

 

"그냥 두게요. 폐차하는 순간까지 우리가 주는 선물로 나둬요. 사람들도 죽으면 수의 입히잖아요."

 

13년 삶이 스며 있는 우리의 적토마에게 해 줄 건 시트커버 밖에 없더군요. 마음이 무척 허전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그와 작별을 고합니다.

 

'적토마 잘 가!'

 

덧붙이는 글 | 다음과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폐차, #수의, #작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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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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