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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켄 오우미하치만에서는 매년 3월 15일 가까운 토요일과 일요일에 사기초 축제를 행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양력 정월 초부터 그해 12간지에 해당하는 동물의 형상을 농산물, 해산물, 임산물 등 자연소재로 만들고 다시(山車)라고 하는 한국의 상여 비슷한 들 것에 장식으로 붙여매답니다. 축제 때 이 다시를 마을 사람들이 어깨에 메고 마을을 한바퀴 돌기도하고, 다시끼리 서로 맞부딪혀 넘어뜨리기도 하고, 이것을 어깨에 메고 온갖 동작을 취합니다.

보통 일본에서 사기초라고 하면 신사 앞마당에 대나무를 원추형으로 세워놓고 불을 놓아 대나무를 불태우고 이 때 집안에 있는 오래된 부적 등을 가지고 나와 불에 던져서 불태우는 행사입니다. 우리나라의 달집태우기와 같습니다. 이곳 오우미하치만시의 사기초는 일본 다른 지역의 사기초와 조금 다릅니다.

이렇게 다시를 어깨에 메고 동작을 취할 때 이 다시 위에 올라있는 사람이 구령을 먼저 부르면 다시를 메고 있는 사람들이 이 구령을 받아 같이 소리를 지릅니다. 이 때 주로 사용하는 구령이 맞세 맞세, 야레 야레입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 구령의 의미는 모르고 다만 이 사기초에서만 사용하는 구령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한국말의 봄을 맞이하세를 간단히 줄여 맞세 맞세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우미하치만시는 시가켄 한 가운데 있는 비와꼬 호수의 동쪽 중간 부근으로 근동에서 평야가 가장 넓은 곳입니다. 야레는 두만강에 사는 고유어종인 물고기의 이름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사용한 야레 야레와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일본말에서 야레의 동사 원형 야루(やる)는 깨부수다, 보내다, 하시다, 하시게 하다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동사입니다. 

원래 여장 남자들이 이 다시를 어깨에 메고 축제를 거행했으나 지금은 일본에서도 농촌 지역 인구가 감소하여 여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시를 어깨에 메기도 합니다. 지금도 옛 흔적이 남아있어서 남자들이 화장을 하거나 머리를 여자처럼 장식하고 참여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이틀간 마을 사람들이 다시를 경쟁적으로 가지고 놀다가 일요일 밤 8시 다섯 기를 한꺼번에 불태웁니다. 나머지 다시는 한 기씩 불태웁니다. 이 때 사람들은 불타는 다시 주위를 돌면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온갖 몸동작을 하면서 신나게 놉니다.  

오우미하치만시 사기초 다시 불태우기
 오우미하치만시 사기초 다시 불태우기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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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축제에 참가하는 사람들이나 구경꾼들이 모두 불에 열광합니다. 불은 인간에게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불에 열광하는가? 언제부터 사람들은 불을 사용하였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주요한(1900.10.14∼1979)의 불놀이에 잘 나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 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 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주요한 불놀이 일부>

인간이 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과학적인 불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은 불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감정과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인간은 불을 보면서 붉게 피어있는 장미꽃의 황홀에 빠지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붉은 입술과 입 맞추던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슬픈 감정에 가슴 아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불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가스통 바슐라르가 촛불의 미학에서 잘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촛불을 보면서 촛불과 자아 인식의 교류를 통해서 자아의 의식은 촛불의 의식이 되고, 촛불은 내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이러한 불에 대한 인식을 주요한은 불놀이에서 시적으로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불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모든 인류에게 정신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유전인자인지도 모릅니다. 동물은 불을 싫어하고 피합니다. 그러나 인간을 불을 간직하고, 활용하고, 조종합니다. 인간 문명의 역사는 불의 활용과 조정의 역사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불을 잘못 사용하면 불은 순식간에 모든 사물을 태워 없앱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불이나 칼에 대해서 어른들은 항상 아이에게 주의를 줍니다. 이때 주의의 세기가 너무 강하거나 억압되면 이것이 어린이의 마음에 콤플렉스로 자리 잡습니다. 그 후 성인으로 성장한 뒤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정신병이 들면 주로 칼과 불로 자해하거나 이것을 잘못 사용하여 화를 입거나 입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멋대로 개인 재산이나 자연에 불을 놓고 불을 감상하기도 합니다. 이런 행동을 통하여 어려서 불이나 칼에 대해서 가졌던 콤플렉스를 발산하는지도 모릅니다.  

3월 중순에 행하는 오우미하치만의 사기초 마츠리는 인간에게 억압된 불의 사용을 해방시켜 줍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정성껏 다시를 만들어 마을을 돌면서 지신을 밟아 지신을 위무한 다음 인간의 기원을 담아 불에 태워날려 보내면서 한해의 풍년이 불길처럼 피어오르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불 기운으로 겨울의 춥고 서러운 죽음에서 불길처럼 자연과 우주만물이 부활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축제에는 불 주위를 도는 춤과 노래와 발광으로 발산하고 다시 올 봄을 적극적으로 맞이하고 열심히 살고자 하는 인간의 다짐이 스며있다고 하겠습니다. 참여자들이 여장 남자인 것도 여자의 생산력이나 우주에 대한 포용력을 강화시켜 생산의 풍요를 보장하고자 하는 인간의 주술적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참고문헌
가스통 바슐라르, 김웅권 옮김, 『촛불의 미학』, 문예신서, 2008.7
가스통 바슐라르, 김병욱 옮김, 『불의 정신분석』, 이학사, 2007.8
박현국, 오우미하치망의 사기초 마츠리에 대해서, 『비교민속학』 33 집, 비교민속학회, 2007.2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태그:#오우미하치망, #사기초, #불놀이, #시가켄, #달집태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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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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