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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보덕산이 가깝다. 그 산을 오르는 길에는 '전안원 농장'이 있다. 산으로 가려면 길이 여러 갈래 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전안원 농장을 거쳐서 가는 길이다.


가파른 전안원 농장 언덕배기를 올라 한 숨을 고를라치면 고층아파트단지가 어른 눈높이로 맞춰진다. 근데 그곳에 오를 때마다 돌에 새겨진 글이 맘 한구석을 긁는다. 특히 요즘처럼 사교육에 경쟁이 붙어 너나없이 아이들 교육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더 하다.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오려고 할 때 산이 근처에 있는 것도 결정을 쉽게 했다. 햇수로 4년째를 살면서 보덕산의 사계절은 눈을 감아도 삼삼하게 떠오를 만치 수없이 산을 오르내렸다. 그런데 산을 오를 때나 내려와서 집으로 가거나 할 때, 농장에서 만나는 비문(碑文)이 언제나 맘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다.

 

"남보다 한발 앞서 시작하면 그만큼 유리하고 같은 장소로 가려면 한발 앞서 가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길이다. 이 말은 앞서가면 남을 제어하고 늦게 가면 남에게 제어 당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산을 오르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씩은 읽어봤을 글. 읽을수록 남보다 빨리 앞서서 상대방을 억눌러 제 마음대로 다루거나 통제하고 조종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이 글을 아이와 같이 읽으면서 어쩌면 은근히 아이의 경쟁심을 유도했던 어른도 있지 않았을까싶다. 내 아이가 남에게 '제어(制御)'당하면 안 될 터이므로.


이 글은 읽는 이로 하여금 희망과 용기를 얻기보다는 왠지 남보다 뒤처지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이 들게 한다. 관용과 배려도 없고 오직 경쟁만 느껴진다. 내가 먼저, 네게 먼저 보다 '함께' 가면 더 좋은 협동의 글은 없었을까? 한 가지 기준만을 내세워 줄맞추기를 하는 일방적인 교육현실에서, 서로 협동하여 이뤄내는 교육이 학습과 인성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외면하는 것 같다.


비문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불편한 까닭이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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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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