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 일자리를 돌려달라."

2009년 3월 11일 오후 2시 30분, 옛 전남도청 앞 철탑에 내걸린 현수막의 내용입니다. 아득하게 높은 철탑 위에 사람이 있습니다. 유난히 눈에 익은 얼굴입니다. 이주석씨입니다. 일주일 전입니다. 광주광역시 양산동 본촌공단 로케트전기 앞 컨테이너 농성사무실에서 만난, 유난히도 '진짜, 진짜'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답답함을 털어놓던 이재석씨가 지금 철탑에 올랐습니다. 살고 싶다고.

지난해 9월에도 그는 '살고 싶다', '일자리를 돌려달라'는 현수막을 가슴에 품고 철탑에 올랐습니다. 반년이 지났는데 이주석씨는 왜, 다시 철탑에 올랐을까? 그것도 똑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가슴에 품고.

"작년 9월에 철탑농성 했을 때요? 그땐 6일간 했죠. 진짜 다리도 저리고 허리도 진짜 아팠어요. 낮에는 진짜 뜨겁게 더웠고요, 밤에는 추워서 진짜 잠이 안 왔어요. 두렵기도 했지만 진짜 물러설 수 없어, 진짜 마지막으로 할 일이라고는 진짜 이거밖에 없어서 올라갔죠. 그래서 회사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진짜 이제는 해결되겠구나, 믿음을 진짜 가지고 철탑에서 내려왔죠."

'믿음을 진짜 가지고 철탑에서 내려왔'던 이주석 씨가 다시 철탑에 오른 까닭은 회사와 약속한 '합의서'가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올해로 마흔인 이주석씨는 지난 2007년 9월 1일 정리해고가 되었습니다. 동료 10명과 함께,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당시 로케트전기 김성찬 대표이사와 남규현 노동조합 위원장은 '정리해고자 우선 채용에 대한 노사협의회 합의서'를 작성하고 큼직한 사각 도장을 피의 맹세처럼 붉게 찍었습니다. 지난해 9월 철탑농성 중에 얻어낸 '합의서'에도 '로케트전기와 로케트전기 해고자들은…해고자 복직 등 모든 사안을 성실히 논의하기로 약속'한다고 로케트전기 경영진은 서명했습니다.

"폐건전지 취급을 하여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함께 철탑에 올라간 유제휘씨는 "로케트전기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사람들을 쓰다 버린 폐건전지 취급을 하여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이제는 합의서를 마치 폐지처럼 쓰레기통에 버리고 뻔뻔스럽게 해고자는 모른 척하고 신규채용을 버젓이 하고 있습니다. 이건 회사 경영이 어려워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회사 측의 주장이 처음부터 거짓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것 아닙니까?"하며 울분을 토합니다.

이 땅에 살아남으려고, 흙에 발을 딛지 못하고 허공에 떠 있는 해고자들. 살갗을 파고드는 추운 칼바람을 맞으며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외쳐야 하는 해고자들. 절망, 더 밑으로 내려갈 곳 없는 절망이 이들에게 저항을 강요합니다.

로케트전기는 직원을 해고해야 할 만큼 경영이 어려웠을까요?

"아이고, 경영이 어려우면 신규채용을 하겠어요. 일이 없는데 사람을 뽑겠냐고요? 요즘 공장들 일거리가 없다고 하는데 로케트전기는 주야 맞교대로 12시간씩 공장이 돌아가고 있어요. 토요일, 일요일 쉼 없이 특근을 하고요. 저희를 해고하고 신임 이사를 두 명 늘렸어요. 이사 연봉이 저희 해고자 세 명 임금은 될 겁니다."

지난해 9월 이주석씨와 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벌였던 전성문씨의 말입니다. 해고의 진짜 이유는 경영의 어려움이 아니라고 합니다.

"로케트전기 작업 환경은, 거의 일제시대에 일한다고 보면 되요. 밖에서 보기에는 최첨단 건전지를 만들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그걸 만드는 노동자는 지옥에서 일하는 거죠. 젊은 사람들은 공장 안을 보고 나면 비명을 지르고 다음날 안 나와 버리죠. 왜냐하면 건전지 안에 검정색 가루를 많이 쓰잖아요. 이산화망간하고 흑연인데요, 그 흑연가루가 공장에 수북해요. 천장을 막대기로 툭 치면 검정 가루가 와르르 쏟아져 내려와 가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죠.

탄광촌에서 걸린다는 진폐증에 안 걸리는 게 신기하죠. 연탄 공장 떠올리면 돼요. 연탄 한 오백 장 깨놓고 그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다고. 환풍기도 없다고 봐야죠. 천장 위에 환풍기가 달려 있는데 환풍기 바깥쪽이 막혀 있기 때문에 소용없어요. 그런데도 아무 말 않고 십 년 넘게 일한 사람을 쫓아낸 거예요. 해고한 진짜 이유가 뭔지 아세요? 동료들에게 뭐 이런 상황, 개선되었으면 하는 내용을 적은 선전지를 만들어 나눠줬다는 이유예요. 해고된 11명이 모두 선전물을 돌렸던 사람이에요."

오미령씨도 '표적 해고'였다고 말합니다.

"자동화 라인에서 일하거든요. 라인을 타는데 열두 시간씩 맞교대로 일해요.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집안에 일찍 들어갈 일도 있잖아요. 휴일이나 연장근무를 계속해야 되니 아이한테 일이 생겨도 갈 수가 없어요. 심지어 육아휴직을 썼다고 벌점을 매겨 해고를 시키기도 해요. 저도 2004년도에 육아휴직을 썼다고 해고를 당했다가 복직이 됐는데, 이번에 다시 해고를 당한 거죠.

그때 해고를 당하고 복직되면서 노동자의 몫을 우리 손으로 찾지 않으면 언제든지 해고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는 육아휴직을 썼다는 정당한 이유 때문에 나 아니라도 다른 동료들이 해고당하는 걸 막아야겠다. 그래서 그런 문제를 지적하고, 노동자가 알아야 할 내용들을 알리는 선전물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나눠줬는데……, 그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 이유로 해고한다니 어디 말이 됩니까?"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진 두 명은 복직을 하였고 나머지 아홉 명은 558일째 거리에서 사람처럼 '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들의 소망이 얼마나 간절한지는 해고자 편혜경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편혜경씨는 3월 중순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엄마는 뱃속 아이의 이름을 '복직이'라고 지었습니다. 출산이 코앞인데, 함께 복직 싸움을 하는 동료는 20미터가 넘는 철탑에 올랐으니, 편혜경 씨의 심정은 안타깝고 아릴뿐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너의 태명이 왜 '복직이'였는지를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로케트전기 작업 환경은 거의 일제시대에 일한다고 보면 되요"

말이 558일이지, 해고자에게는 죽음의 터널과 같습니다. 해고자 싸움이라는 게 끝을 알 수 없으니, 또 얼마나 긴 시간 동안 걸어가야 할 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싸워 복직을 하게 되면 승리를 한 걸까요? 그동안 쌓인 상처가 지워지는 걸까요?

철탑에 오르기 전에 유제휘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 첫아이가 딸인데,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어요. 학원을 보내지 않았는데, 지가 꼭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간절히 원해서 피아노학원을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해고자가 되니까, 딸이 학원을 그만 다니겠다는 거예요. 아빠가 돈도 못 벌고 있는데 학원을 다닐 수 없다는 거죠. 그 말을 듣는데 아주 미쳐버리겠어요. 티 없이, 고민 없이 맘껏 뛰놀아야 하는 딸이, 아버지가 해고를 당하자 한순간에 성숙한 거 같아서. 이게 정상적인 성숙이 아니잖아요. 둘째 아이는 지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달라고 말하고 '땡강' 쓰거든요. 못해주더라도 '땡강' 쓰는 게 낫지…, 딸도 그랬다면 제 마음이 이렇게 터져 나갈 것 같지는 않을 건데. 결국 딸이 학원도 못 다니게 되었죠. 다 못난 아빠 때문에…."

지금 철탑 위에서 유제휘씨는 학원을 그만 다니겠다고 한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겁니다. 고공에서 보는 별들이 딸의 눈망울처럼 보일 겁니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려고, 남들처럼 학원 하나쯤은 보낼 수 있는 아버지가 되려고 20미터 상공에서 세상을 향해 '나도 아버지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는지 모릅니다.

몇 해 전에는 임금협상이 끝나고 나서야 법정 최저임금이 결정되었는데, 협상해서 올렸던 임금이 법정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합니다. 힘들여 임금협상을 하느니 나라에서 최저임금 결정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낫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 로케트전기 노동자의 현실입니다. 열악한 아니 '일제시대'와 같은 곳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현실을 바꿔보겠다고, 파업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선전물을 돌렸을 뿐인데, 해고라니…. 오백일을 넘게 한뎃잠을 자고, 머리를 깎고, 단식을 하고, 고공농성을 하고….

"약속을 어긴 회사 측은 멀쩡한데, 약속한 합의서를 지켜달라고 외친 해고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빚과 벌과금뿐입니다. 고공농성 했다고, 집회 했다고 고소 고발에 벌과금이 쏟아지니, '차라리 죽여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사는 땅에서 살 수 없어 철탑에 올라갔습니다. 해고자도 살고 싶습니다. 똑같은 사람이고 싶습니다."

아홉 명의 해고자, 그리고 로케트전기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사람답게 기쁘게 일하는 날이 고공농성 첫날밤을 지새우기 전에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철탑이 아닌 로케트전기 공장 안에서 유제휘씨와 이주석씨를 만났으면 합니다. '진짜'를 되풀이 하던 이주석 씨의 바람처럼 해고자가 아닌 노동자의 이름으로 기계 앞에 서 있었으면 진짜 신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