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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여름에 읽어야 제맛이라고 한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그 내용과 허를 찌르는 반전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소개된 어떤 추리소설들은 과감하게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사시사철 아무 때나 읽어도 상관없을 이야기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그것들은 무엇인가? 이른바 '사회파 추리소설'이다.

사회파 추리소설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추리소설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강렬한 악당과 명탐정을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대립, 수를 거듭한 트릭과 예측을 벗어나는 반전 등 일반적인 추리소설들의 덕목 그 이상의 것을 갖추고 있다. 바로 사회 비판이다. 그 책들은 본격 추리는 기본으로 삼으며 사회의 어떤 심각한 문제들을 비판한다. 단순히 추리소설하면 떠올리던 어떤 요소들을 넘어서려 하고 있다. 추리소설의 진화를 꿈꾸는 셈이다.

국내에 사회파 추리소설의 서막을 알린 작가는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다. 그녀는 호러는 물론 SF적인 소설도 잘 쓰지만 사회 추리소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표적인 것이 <모방범>과 <이유>다.

<모방범> 1권 겉표지
 <모방범> 1권 겉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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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은 도쿄의 한 공원에서 쓰레기통에 버려진 여자의 오른팔과 핸드백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오른팔과 핸드백의 주인이 동일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범인이 방송국에 연락해서 그 주인이 각각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오고 더불어 방송을 통해 피해자의 가족까지 농락하는 일이 생긴다. 뿐인가. 범인은 방송을 통해서 자신의 범죄행각을 자랑한다. 소설 속의 일본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모방범>의 그 남자는 왜 그런 짓을 하는가? 그는 주목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수를 썼다. 왜 그렇게 주목받고 싶어 했는가? <모방범>은 어떤 비판의식을 던진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인간'이 아니다. 돈과 미디어다. <모방범>은 그 사실에서 희대의 살인마를 만들어냈고 그의 행각으로 어떤 비판을 던지고 있다. <모방범>은 본격 추리도 일품이지만 그 안에서 던져지는 비판의 목소리가 이 소설이 추리소설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유>겉표지
 <이유>겉표지
ⓒ 청어람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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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또 다른 작품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고층아파트에서 4인 가족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른바 '버티기꾼'이다. 법원 경매를 통해 집을 구입한 사람이 들어올 수 없도록 그곳에서 꼼짝도 안하던 사람들인 셈이다.

<이유>는 이들이 왜 여기에 있었고 살해당했는지를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왜 죽었던 것일까? 미야베 미유키는 그 이유를 현대사회의 그림자에서 묻고 있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돈에 미친 사회, 성공에 목을 맨 사람, 무슨 짓을 해서라도 출세하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다.

그것은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난도질당한 사체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구역질을 일으키는, 고개를 돌리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서로 미워하고 헐뜯는, 심지어 가족끼리 서로 저주하는 모습이다. <이유> 또한 <모방범>처럼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토대로 본격 추리를 삼으면서 동시에 이 사회를 비판하는 셈이다.

<방황하는 칼날>겉표지
 <방황하는 칼날>겉표지
ⓒ 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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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와 자웅을 겨루는 추리소설의 대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서도 사회파 추리소설이 보인다. 바로 <방황하는 칼날>이다. 소설 속의 그들은 범죄를 즐기는 청소년이다. 그들은 죄를 지어도 어리기 때문에 법의 심판에서 비껴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를 납치해서 감금, 성폭행하는데 별다른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어느 소녀가 죽었다면 어떨까? 어느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그들에 의해 죽었다는 걸 알았다. 그런데 법은 그들을 처벌하지 않고 '갱생'시켜야 한다고 한다. 아버지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범인들을 찾아내려 한다. 직접 복수하려는 것이다.

<방황하는 칼날>은 민감한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청소년의 범죄를 용서해 줘야 하는 것에 대해 "정의라는 이름으로 법은 사람의 상처를 외면해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이 사회의식이 미성숙해서 잘못을 저지른다면, 분명히 어른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법의 허점을 알고 자랑하듯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라면 어떤가. <방황하는 칼날>은 생각하게 만든다. 추리소설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정당하게 느껴지는 비판 때문이다.

<천사의 나이프>겉표지
 <천사의 나이프>겉표지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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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작품들보다 비교적 최근에 소개된 <천사의 나이프>도 청소년의 범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를 무참하게 죽인 강도들이 청소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또 다른 분노를 느꼈다. 그들이 어른처럼 처벌받지 않고 '갱생'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자는 어찌할 수 없다. 그저 참아야 할 뿐이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남자는 그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를 조사하게 된다. 그들이 갱생했는지를 알아가는 셈인데, 여기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온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특별한 법이 존속해야 하는가, 없어져야 하는가, 의 이분법적인 문제를 넘어서 진정한 갱생의 의미를 묻는 목소리다.

법은 그들을 특별하게 대우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갱생을 말한다. 하지만 뭘 어떻게 갱생시킬 것인가.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피해자들의 유족들을 달랠 수 있을 것인가. <천사의 나이프>가 비판하는 목소리는 간과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다. 추리적인 요소 너머의 그 어떤 것을 말했기 때문일 테다.

추리소설하면 잠깐의 즐거움을 위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사회파 추리소설들은 그런 것을 거부하고 있다. 본격문학이 말하지 않는 어떤 것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이기에 그 비판의 말이 더 또렷이 들리는 것이리라.

이 정도면 추리소설의 진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추리소설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추리소설의 새로운 모습과 그 목소리를. 


이유

미야베 미유키 지음, 청어람미디어(2005)


모방범 1 - 개정판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2012)


태그:#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사회파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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