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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25일 "고용 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결과 30대 그룹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고 28%까지 차등 삭감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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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완: 25일 오후 2시 5분]

전국경제인연합(아래 전경련) 소속 30대 그룹들이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을 최대 28%까지 삭감해 신규 채용인원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제 위기의 직접 책임자인 경영진의 고통분담 조치는 미흡한 가운데, 취약계층인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대졸초임 삭감으로 마련될 재원의 구체적인 현황과 활용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아, 신규 고용 창출에 대한 실현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 위기를 빌미로 전체 노동자의 임금을 하향조정하겠다는 전경련의 의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한 셈이다.

"경쟁력 떨어지는 대졸초임 수준, 합리적으로 조정"

25일 열린 전경련의 '고용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회의' 모습.
 25일 열린 전경련의 '고용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회의' 모습.
ⓒ 전경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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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은 25일 '2600만원 이상 대졸초임자 임금 최대 28% 삭감' 등을 골자로 한 고용안정책을 발표했다. 이날 오전 여의도 KT빌딩 전경련 대회의실에서 30대 그룹 채용담당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고용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에서 나온 방안이다. 정부와 공기업에서 진행 중인 대졸 초임 삭감을 통한 일자리나누기를 민간 기업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병철 전경련 부회장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국내 고용시장이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며 "고용안정과 일자리 나누기·지키기에 우리 경제계가 앞장서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정병철 부회장은 특히 "심각한 고용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임금 하향 안정화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우리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대졸초임 수준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앞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이 "생산직 근로자와 대졸 신입사원들의 초임이 너무 높아 세계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실제 이들은 고용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대졸초임 2600만~3100만원은 0~7%, 3100만~3700만원은 7~14%, 3700만원 이상은 14~28% 각각 삭감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삭감 대상 기준을 2600만원으로 산정한 근거는 ▲ '08년 우리나라 100인 이상 기업 대졸초임(기본급+제수당+고정상여금) 2441만원 ▲ 우리보다 1인당 GDP가 두배 높은 일본의 '08년 대졸초임 2630만원 ▲ '07년 1인당 GDP 대비 임금수준 : 일본 72%, 우리나라 128%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한다.

정병철 부회장은 "(대졸초임 임금 삭감 등으로) 마련된 재원은 고용 안정과 신규채용, 인턴채용에 사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임금 삭감 대책은 있는데, 신규채용 대책은 없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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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고용안정책'을 내놓겠다던 전경련은 정작 구체적인 고용 확대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전경련은 이날 대졸초임 삭감의 구체적인 액수는 물론 그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대졸 신입사원 임금수준 국제비교'라는 제목으로 4쪽(A4)에 달하는 참고자료까지 배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러나 정작 대졸초임 삭감 등으로 마련될 재원의 총 규모는 물론 이에 대한 활용 대책은 전혀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이날 열린 '고용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는 '대졸초임 삭감을 통한 임금 하향안정화 대책 회의'라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했다. "어려운 경제 사정을 빌미로 신입사원 임금만 깎고 고용 확대는 않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정병철 부회장은 "일자리 나누기의 전체적인 규모에 대해 지금 현재로서는 파악이 안 돼 밝힐 수 없다"면서도 "'몇 명이 될 것이냐'는 것은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근본적인 목표는 고용을 안정시키고 잡(job)을 늘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는 이날 회의 내용이 개별 기업을 얼마나 강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병철 부회장은 이날 발표한 고용안정책에 대해 "합의라고 보다는 협의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가, 다시 "합의에 가까운 협의"라고 말을 번복했다.

개별 기업들이 대졸초임 삭감 등의 방침에 따르지 않거나, 대졸초임만 삭감한 채 신규채용 등 고용 확대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특별한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모니터링을 해서 진행사항을 체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전히 실효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정 부회장 스스로도 "우리가 기업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할 권한은 없다"면서 "분명한 것은 일자리를 안정화시키고 해고를 안 하겠다는 게 목표니까, 재원이 나는데로 인원을 뽑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기업은 계속 뽑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또한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취약계층에게만 고통을 전담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전경련은 대졸초임 삭감 방안과 함께 "기존 직원의 임금 조정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선진국처럼 (직원을) 몇 천명, 몇 만명 줄이고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렇게 못하니까, 그나마 조정이 쉽게 가능한 대졸 신입사원부터 하겠다는 것"이라며 "기존 임직원에 대해서는 노조도 있고, 관행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 위기의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경영진이나 고위 임직원들의 임금 삭감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미 (CEO들의 연봉 삭감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경영진 임금 삭감 등은 한화를 비롯해 극히 일부 기업에서만 진행되고 있다.

전경련의 고용안정책에 사실상 기업 측의 실질적인 고통분담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점에서 고통분담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노동자의 임금 삭감을 통해 청년인턴제와 같이 불안정고용만 확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임금 삭감 문제 외에 근로시간 단축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가장 근로시간이 긴 것은 블루칼라 때문"이라며 "그러나 요즘에는 일이 없어서 오버타임이 사라졌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확 줄었고, 저절로 임금이 깎였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경련이 발표한 고용안정책과 관련, 삼성은 계열사별로 10~15% 가량 대졸 초임 삭감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고, 엘지·현대기아차 등 다른 그룹도 계열사별로 세부안을 마련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전경련에서 열린 '고용안정을 위한 경제계 대책 회의' 참석 대상 30대 그룹은 다음과 같다.

삼성ㆍ현대자동차ㆍ에스케이ㆍ엘지ㆍ롯데ㆍ포스코ㆍ지에스ㆍ현대중공업ㆍ케이티ㆍ금호아시아나ㆍ한진ㆍ한화ㆍ두산ㆍ하이닉스ㆍ에스티엑스ㆍ신세계ㆍ씨제이ㆍ엘에스ㆍ동부ㆍ대림ㆍ현대ㆍ대우조선해양ㆍ케이씨씨ㆍ지엠대우ㆍ현대건설ㆍ동국제강ㆍ효성ㆍ동양ㆍ한진중공업ㆍ대한전선 (공기업 제외, 2008년도 대기업 자산총액 기준 - 자료제공 전경련)


태그:#전경련, #고용안정, #일자리 나누기, #대졸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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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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