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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게 뭐예요?"
"왜, 어때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벗으려면 웃옷도 벗든지."
"러닝 하는데 팬티 입고 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웃옷이야 땀 잘 나라고 입은 거고. 왜 이래 이거."
"내 참! 하하하."
"그러는 당신은? 다 벗고 하면서 뭘."
"언제 내가 다 벗었다고 그래요?"
"속옷만 입은 게 다 벗은 거지."
"…?"

아내의 트집, 정말 트집일까?

‘다 벗어 패션’이라고 들어 보셨을는지 모르겠다. 몸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속옷채로이기에 땀이 젖으면 그냥 빨면 되니 경제적이다. 움직임까지 카메라에 잘 잡혔다.
 ‘다 벗어 패션’이라고 들어 보셨을는지 모르겠다. 몸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속옷채로이기에 땀이 젖으면 그냥 빨면 되니 경제적이다. 움직임까지 카메라에 잘 잡혔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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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러닝머신 위에서 악전고투하는 지엄하신 하늘(남편)에게 땅(아내)이 수작을 걸어올 줄이야. 오늘 일진이 좋을 건가 보다. 그렇지 않고야 아내가 생전 안 하던 트집을 잡고 나올 리가 없다. 아내는 가끔 나의 운동습관에 대하여 불만을 토로한다.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지 말고(맨 처음 잔소리를 할 때는 ‘컴퓨터만 하지 말고’였는데, 다른 일을 해도 책상 위에 컴퓨터가 놓여 있기에 그런 지적을 하는 거라고 내가 정정해 준 이후 이젠 이렇게 표현을 바꿨다.) 운동 좀 해요."
"어제 당신 나 안았을 때 땀 냄새 나더라. 운동 좀 하고 샤워해요."

"아니 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누워요. 눕기는. 그러다 소 된다."
"이렇게 눕기를 좋아하니 ‘배둘레햄’이 줄지를 않지요."
"최소한 밥 먹고 세 시간이 지난 다음에 누우래요."
"낼 모래 등산하기로 했잖아요? 운동도 안 하다가 가면 몸살 나요."
"…."

남들처럼 ‘배둘레햄’이나 넉넉하기나 하면서 이런 소릴 들으면 억울하지나 않다. 고작해야 50대 중반에 허리둘레가 33인치 아닌가. 이만하면 괜찮은 거 아닌가. 늘 난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아내의 잔소리가 방안에 퍼질 때마다 난 아내를 걸고 넘어간다. "그러는 당신은 더 나아?"라는 말로. 그러나 아내는 이내, "나처럼 뱃살이 없는 50대 중반 아줌마 있으면 나오라 그래. 여자들은 다 애 낳고 나면 이 정도는 돼요"라고 말문을 콱 막아 버린다. 왜 여자들은 논리에 막히면 애 낳은 타령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침부터 가해진 아내의 잔소리 끝에 난 어쩔 수 없이 러닝머신 위로 올라간 거였다. 근데 이번에는 내 운동복 패션에 불만이 작렬한다. 아무래도 오늘 복권 당첨만큼의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다. 평소 별로 말이 없는 아내가 이리 여러 가지를 지적하고 나올 때는 무엇인가 있는 거다.

분명히 아내가 하는 말들 속에 사랑이 숨어있음을 안다. 가끔 아내가 집을 비울 때 혼자가 되어 보면 그녀가 하는 말들이 그냥 잔소리가 아니란 걸 실감할 때가 많다. 할 일이 없으면 운동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냥 아내의 말대로 컴퓨터 앞과 TV앞을 서성거리다 잠이 들 때가 많다.

'다 벗어 패션(DBF)'이 우린 좋아?

러닝머신의 계기판에 빨갛게 불이 들어왔다. 계기판은 내 DBF 패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감상하는 녀석이다.
 러닝머신의 계기판에 빨갛게 불이 들어왔다. 계기판은 내 DBF 패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감상하는 녀석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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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하는 어머니를 못 마땅해 하는 친구에게 '그런 어머니가 있음을 감사하라'고 하던 어머니를 일찍 잃은 사람의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그렇다. 내게 있어 아내란 그런 존재다. 그러기에 평소에 과묵한 아내가 무엇인가를 트집 잡고 나오면 그날은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내게 다가오고픈 속내의 표현이니까.

아내는 내게 말을 걸려다 보니 운동습관이며 운동복 패션을 운운하는 것뿐이다. 운동습관은 그렇다 치고 우리부부의 운동복 패션은 몹시 과학적이다. '다 벗어 패션'이라고 들어 보셨을는지 모르겠다. 물론 집안에서 러닝머신을 할 때만 그런 패션을 즐긴다. 몸이 가벼울 뿐만 아니라 입고 있던 속옷 채로이기에 운동을 하고 땀이 젖으면 그냥 빨면 되니 참으로 경제적이다.

훌러덩훌러덩 옷을 다 벗어젖히고 운동에 돌입한다. 대부분 팬티와 러닝셔츠바람이다. 이젠 아이들도 없고 두 부부만이니 누가 본다고 격식에 맞는 운동복을 갖춰 입으랴. 오늘 아침 아내의 불만은 왜 웃옷을 입었냐는 것이다. 혹자는 왜 옷을 벗고 운동을 하느냐고 하는 걸로 오해했겠지만. 하하하.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한다.'

그러니까 우리부부는 서툰 운동선수가 아니라는 말이다. 요샌 운동복도 패션시대다. 기능성 운동복이라고 해서 얼마나 고가인지 모른다. 솔직히 우리부부에게는 변변한 운동복이 없다. 혹 가다 지방에서 무슨 행사가 있다고 싸구려로 사주는 운동복이 둬 벌 정도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운동복은 잘 맞지를 않아 즐겨 입지 않는다.

서툰 목수일수록 연장 탓을 한다. 게으른 사람일수록 일 안 할 구실만 찾는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일수록 핑계거리를 찾는다. 그림 그릴 줄 모르는 사람이 물감 탓을 한다. 나도 이런 상황들에 그렇게 자유롭지는 않지만 운동할 때만은 운동복을 탓하지 않는다.

땀을 좀 더 많이 내려면 입고 있던 웃옷은 그냥 입고 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하의는 입으면 금방 땀 때문에 끈적거려 운동을 방해하니 애초부터 팬티바람이 좋다. 운동복이 따로 없기에 빨랫감이 더 늘지 않는다. 일석이조 운동복 패션, '다 벗어 패션' 어떤가? 이니셜 전성시대니 우리 집에선 이런 패션을 'DBF'라고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갓피플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운동복, #러닝머신,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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