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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스네이크 스톤> 겉표지
ⓒ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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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중심도시 이스탄불은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다. 종교로 보면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수차례 부딪힌 곳이기도 하다.

이스탄불은 또한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다. 기원전에는 그리스의 도시로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서기 330년에 제정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이곳을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정하면서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다.

그로부터 약 200여년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이 도시에 있던 거대한 건축물을 재건한다. 성소피아 대성당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부터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도시를 점령할 때까지,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의 수도이자 비잔틴 문화의 중심도시 역할을 해왔다.

오스만 군대에 의해서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자 도시의 운명도 바뀌었다. 도시의 이름은 이스탄불로 변했고 성소피아 대성당은 이슬람교의 아야소피아 사원이 된 것이다.

콘스탄티노플에는 또 한가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와 연관된 이야기다. 열광적인 성유물 수집가였던 헬레나는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유물처럼 생각되는 것들을 가져다가 콘스탄티노플로 모아들였다.

그 유물들은 순식간에 유럽의 성당과 수도원으로 빠져나갔다. 하지만 워낙 수량이 많았기 때문에 콘스탄티노플에 남겨진 것들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런 유물들은 아마도 이후에 지어진 성소피아 대성당 어디엔가 보관되지 않았을까.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그리스도교의 유물들을 지키기에 그만큼 좋은 장소도 없었을 테니까.

이스탄불에는 어떤 보물이 남겨졌을까

물론 그것도 1453년까지 해당하는 얘기다. 그 해에 오스만 군대가 도시와 성당을 점령하면서 그 유물들의 운명도 바뀌었을 것이다. 어쩌면 몰락을 예감한 성당의 사제들은 밀려오는 군사들을 보면서 자신의 안위보다는 성유물의 보전에 더 많은 신경을 썼을지도 모른다. 성당기사단의 숨겨진 보물이나, 몰살당한 카타르파의 사라진 보물처럼 성소피아 대성당의 성유물도 팩션(Fact+Fiction)의 대상이 되기에 아주 좋은 소재다.

제이슨 굿윈도 그 사실을 알기에 <스네이크 스톤>을 구상했을 것이다. '스네이크 스톤'이란 콘스탄티누스가 델포이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긴 '뱀 기둥'을 가리킨다. 세 마리의 뱀이 하나의 기둥을 차지한 채 서로 휘감고 있는 것처럼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이라는 세 개의 이름이 하나의 도시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스네이크 스톤>의 배경은 19세기 중반의 이스탄불이다. 술탄 마흐무트 2세는 간경변으로 죽어가고 있다. 술탄이 신민들에게 서양식 의복을 권장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통일되지 않고, 불량주화에 대한 의심 때문에 사람들은 동전을 받으면 깨물어 보고서야 안심을 한다.

그런 거리 풍경과는 관계없이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외국인들이 모여든다. 그리스인, 알바니아인, 프랑스인, 유태인 등. 한 외국인은 이스탄불을 가리켜서 '세계의 수도가 될 운명의 도시'라고 표현할 정도다.

동서양을 연결하는 것과 동시에,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 항구도시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스탄불은 '세계 무역의 거대한 집산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술탄의 목숨이 오늘내일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는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이런 도시에서 주인공 야심은 하숙을 하며 살아간다. 환관인 그는 원래 궁에서 술탄에게 봉사했지만 궁에 머물기에는 그의 재능이 너무 뛰어났다. 야심의 공을 인정한 술탄은 그에게 자유를 허락했고, 자유는 이제 야심이 열심히 일해서 채워야 할 책임이 됐다.

소설로 다가오는 이스탄불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는 야심의 친구인 한 그리스인 상인이 해질 무렵 칼로 피습당하면서 시작된다. 그 상인은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중태에 빠진다. 그리고 의식이 돌아와서도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누구인지, 왜 자신을 습격했는지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의 다른 상인이 야심에게 그리스인 비밀결사인 '헤티라'를 속삭일 뿐이다.

이 단어만으로는 아무것도 추측하거나 추적할 수가 없다. 야심은 뭔가 실마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중에 야심과 알고 지내던 또 다른 외국인이 피살당하고, 그 혐의는 야심에게 돌아온다. 이제 야심은 그리스인 친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발벗고 나서야할 처지다.

작가 제이슨 굿윈은 사건을 전개해 가면서 150여년 전 이스탄불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 건설된 겹겹의 역사를 가진 도시, 지배자가 바뀌면서 정체성이 재구성된 도시, 콘스탄티노플이자 이스탄불인 도시.

야심은 그 도시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름이 바뀌면 도시도 바뀔까. 도시는 이름이 아니다. 한데 뒤엉킨 삶과 몸짓과 기억의 연속이다. 프랑스인에게 이스탄불은 동양이다. 중국인에게는 서양이다.

야심에게 도시는 거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사원과 시장을 에워싼 중얼거림, 더러운 벽에 등을 기댄 지친 소년, 어둠 속에서 박쥐를 향해 뛰어오르는 고양이, 지친 뱃사공의 굽은 등이다. 도시는 낡은 것에 새로운 것을 보태면서 버티고 성장한다. 야심처럼.

<스네이크 스톤>은 환관 탐정 야심이 등장하는 시리즈의 한 편이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잔틴의 역사를 공부했던 작가는 이 시리즈를 통해서 이스탄불과 오스만 제국의 문화, 역사를 소설로 풀어내고 있다. 지나간 시간과 공간을 흥미롭게 재구성하는데 팩션만큼 좋은 것도 없다.

덧붙이는 글 | <스네이크 스톤> 제이슨 굿윈 지음 / 박종윤 옮김. 비채 펴냄.



스네이크 스톤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

제이슨 굿윈 지음, 박종윤 옮김, 비채(2008)


태그:#스네이크 스톤, #팩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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