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1호선의 장거리 여행자이다. 학교를 오고 가기 위해서는 1호선의 반 이상을 오고가기 때문이다. '산 넘고 물 건너'라는 말이 있다. 의정부에서 부천까지 나는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학교를 간다.

왕복 세 시간. 한 번에 한 시간 반을 전철 안에 있다 보면 다양하고 별난 사람들을 만난다. 종종 같은 시간대에 전철을 타는 낯익은 얼굴도 발견한다. 전철안의 상인들과 도움의 손길을 원하는 이들의 얼굴과 그 사정마저도 이젠 거의 다 알고 있다. 이렇듯 나의 여행길에 함께하는 사람들은 낯익은 사람보다는 낯선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오고가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어느덧 3년, 전철로 통학한 지 33개월째다. 이제는 장거리 통학이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조금만 피곤해도 어김없이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전철을 탈 때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사건과 만나게 되는 1호선 열차는 이제 나의 생활의 일부이다. 나를 여행자로 만드는 특별한 곳이다.

나의 이 멋진 여행길을 방해하는 무리가 있다. 이들은 새벽 첫차부터 막차까지 고르게 분포하며,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다른 노선에 비해 유난히 1호선에 집중해 있다.

얼마 전, 자정을 향해하고 있는 늦은 시간에 DMB폰으로 뉴스를 시청하고 있는 50대 중년 남성을 보았다. DMB폰을 구입했다고 자랑이라도 하듯 스피커에서 나오는 큰 소리를 들으며 집중하고 있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래도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만하다. 독기로 가득 찬 목소리로 저주를 퍼붓듯 험악한 말을 내뱉는 전도자도 있고, 주변 사람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자신의 자유와 권리만을 내세우며 각종 공연을 펼치는 음유 시인들도 있다.

술기운을 빌려 담대하게 시비를 걸어보는 고성방가의 대가들과 조용한 차 안의 정적을 깨는 초하이톤 여성들의 거침없는 수다도 빼놓을 수 없다. 승객들의 권리는 사뿐히 즈려밟고 큰 소리를 내는 상인과 거의 강매 수준에 도달하는 껌 파는 할머니. 슬금슬금 더듬어오는 변태들까지. 이들을 모두 소개하자면 끝이 없다.

나는 이들에게 이 사회에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관습을 전파하고 뿌리내리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예의 없는 것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예의 없는 것들은 우리 주변에 수시로 등장하지만 이들을 무찔러 주는 '영웅'은 드물다.

저들의 옳지 못한 행동에 대해서 분개하지만 그들 앞에 나서 따끔하게 한 마디 하기보다는, 용기 있는 ‘영웅’이 나타나 저들을 무찌르고 정의를 수호하기를 바라며 방관하고 있는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을 한마디를 내뱉으면 영웅이 될 수 있는 곳. 그곳은 1호선이다.


태그:#1호선, #장거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