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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의 의미가 뭐지?"

 

"캠프의 주제와 목적을 참가자들과 공유하는 것, 함께 인식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건 수업이지. 캠프는 삶 자체를 가르치는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나올 수 없는 중압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캠프를 진행하는 우리가 하나의 모델이거든…. 하지만 우리의 목적을 잘 생각하라고. 지금 목적을 잃은 채 중압감에만 시달리는 수도 있어."

 

얼마 전, 격려차 방문한 라온아띠 해외봉사단 원창수 팀장님과 나의 대화다. 사실 그렇다. 이 곳에서의 캠프는 즐겁다기보단, 나에게 두려운 일상 중 하나이다.

 

사실 태국에서의 캠프는 단 한 번 뿐이다. 원 팀장의 말대로라면 캠프는 눈을 떠서 잘 때 까지 최소 하루 이상은 같이 생활해야 한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생각해야 한다. 장기간이 되면 작은 조직으로서 삶이 발현된다. 그런 의미라면 캠프는 한 번이었다.

 

내가 경험한 캠프의 이름은 '유스 레더 캠프(Youth Leather Camp)'. 고등학생과 대학생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치앙마이 YMCA의 캠프였다. 이들에게 봉사자의 마음을 함양시키고, 가르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게 이 캠프의 목적이겠거니 생각한 건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이었다.

 

'신나게 노는 것', 그것이 캠프의 목적이지

 

이 캠프의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글로 쓰자니 참 볼품없어지지만 60여명의 참가자들이 '신나게 노는 것' 이었다. 도대체 '신나게 노는 것'이 무엇이냐. 치앙마이 YMCA '요' 스텝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가 두 달여를 함께 생활했지.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너의 얼굴은 항상 굳어 있어. 태국 사람들은 말이지, 너 같은 얼굴을 보면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불편하다고 생각해. 특히나 어린아이들은 더더욱. 너한테 마음을 열거나 네 수업 혹은 캠프를 이해할거라고 기대하기 힘들겠지. 너도 알잖아? 태국 교육에 가장 중요한 철학은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것을."

 

10명의 팀원을 이끄는 팀장이라는 중압감, 항상 아이들보단 선생님들과 스태프들과의 대화에 익숙해져있고 마음을 열기보단 우리의 생각을 전달하기에 급급했던 바보는 어느 새 이 곳에 온 목적이 희미해져 있었다. 그는 '봉사'가 아닌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캠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매조(Mae joe) 대학의 학생들의 행동을 살펴보자. 6명의 그들을 세워놓으면 몇 초안에 60여명의 참가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들은 단 한 번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과도한 동작으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처음에는 흡사 개그맨과 비슷하다는 생각, 저네들은 도대체 왜 저럴까라는 생각, 거기에 가끔 보여주는 넋 나간듯한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전혀 꾸밈이 없었다. 모든 것이 웃음이었다.

 

그들과 헤어지는 날, 상칸팡(Sankanpang) YMCA 문 앞에서 우리는 30여분간 함께 노래부르고 사진을 찍다가 헤어졌다. 사실 이 캠프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참가자들이 환경에 대한 인식을 재고하자는 것이었는데, 아무 생각없이 노래부르고 춤을 추는 그들의 행동이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환경과 관련된 노래와 놀이였다.

 

내공이 비교되지 않았다. 도대체 치앙마이 YMCA가 우리를 봉사자로 받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대목이었다. 이들은 정말 신나게 놀고 있었다. 본인의 목적을 잊지 않은 채로.

 

"신나게 노는게 왜 중요하죠?"

 

궁금하다 못해 던진 질문이었다. 사실은 물어보지 않아도 예상되는 답변이 있다. 그럼에도 물어봐야 한다. 그나마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추진력은 질문이다.

 

"우리가 환경에 대해서 수업과 캠프를 통해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생각해보자고. 영상을 틀어주고, 지식을 전달하고, 시험을 본다고 했을 때 그것이 과연 참 지식일까?

 

모든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실천력을 담보할 것인가. 그런데 가르치는 주체와 배우는 주체가 서로 신나게 노는거야. 신나게 놀면서 그 노는 것에 주고자 하는 것을 녹이는 거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체득해서 살아가는 바탕이 되는거지."

 

치앙마이 YMCA 피페 매니저의 말이다. 무슨 말인 줄은 알겠는데 한없이 추상적이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고. 사실 나도 봉사활동에 대해 별 취미가 없어. 친구가 권유해서 YMCA 봉사활동을 따라다닐 뿐이지. 사실은 난 공무원이 꿈이라고. 캠프는 피곤하고 힘들어. 봉사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면 다른게 보이기 시작하지. 하지만 나한테 정답을 기대하진 말라고. 나도 아직 모르거든."

 

치앙마이 대학에 다니는 한 대학생 봉사자의 말이다. 나보다 딱 한 발짝 앞서가는 사람의 답변이다. 근본적인 물음이 꿈틀댄다. 치앙마이 YMCA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 팀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갑자기 주제에서 벗어나 본다

 

타국에서의 생활이 두 달 째, 항상 낙후된 시골을 돌아다니다가, 낯선 타국 땅에서 널널해지는 일정이 찾아오면 가끔은 한국이 그리워지곤 한다. 벗들이 보내준 흥미로운 드라마가 가끔 그런 시간을 채워주곤 한다.

 

한국에서 '강마에' 신드롬이 불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답답한 정치계에 그 같은 카리스마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다고 한다. 사실 그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리더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숨막히고 답답하다.

 

그 사람의 인도대로 내가 내 안의 숨은 재능을 깨울 수도 있고, 나름의 성공을 꾀할 수도 있다. 그를 전적으로 믿는 것이 나를 전적으로 믿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숨막히고 답답하다. 이유는 방식이다.

 

까올리(한국을 일컫는 말)에서 온 봉사자 '고'는 그와 같은 숨막히고 답답한 방식으로 수업과 캠프에 임하고 있다. 내가 그들보다 많이 알고, 그들보다 뛰어나다는 자만심을 가지고. 그런데 봉사자라는 특수한 옷은 그에게 중압감을 던져준다. 그의 말 하나가, 행동 하나가 아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돌려 말하면 혼자 생각하고, 혼자 자책하고, 혼자 답을 준다.

 

수업과 캠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인데 소통이 사라진다. 더군다나 '강마에' 처럼 능력이 있지도 않고, 전문가도 아니다. 이러니 마음을 열기는커녕 아이들과 한 번 어우러지지도 못한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신나게 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고 항상 실천한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가 되면 서로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한다.

 

엉뚱한 것은 밤마다 수업을 준비하고, 중압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고'는 다른 봉사자들에게 콤플렉스를 느낀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나마의 소통의 문도 닫아버리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

 

구미 YMCA의 이동식 사무총장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지"

 

국민은행 강정원 행장은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기회를 준 것이 자랑스럽다."

 

치앙마이 YMCA 피페 매니저는 이런 말을 했다.

"태국은 못살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그런데 하나 묻자. 한국 사람들은 얼굴이 왜 항상 심각하냐?"

 

내가 알 리가 없다. 두 달만에 치앙마이 YMCA의 존재 목적을.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이 느린 사회에서 누구보다 빨리 의제를 설정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부심을 먹고 살고 있다.

 

캠프 내내 즐길 수가 없었다. 놀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캠페인을 하러 거리에 나갔을 때도 중압감과 고민이 내 머리를 짓눌렀다.

 

캐나다 정부의 회계관 출신의 봉사자 노먼 씨는 말했다.

"우리는 돈으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만, 실제 가져다 주는 것은 없지. 건강도 행복도 사랑도. 될 것 같지만 안 되거든."

 

보잘 것 없는 시설에서 2박 3일간 진행된 캠프에서 참가자들은 말 그대로 신나게 놀았다. 한국에서는 이보다 몇 배는 더 되는 예산에, 훨씬 훌륭한 시설에서, 전문가들과 함께 캠프를 진행할 것이다. 문제는 참가자들이 그것을 얼마나 즐기냐다. 이들은 밤에 잠도 안 자고 밤새 놀고 동이 터서 아침이 되도 피곤한 기색없이 계속 논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신나게 놀 수 있나요?"

 

이 바보 같은 질문은 아직 하지 않았다. 11월부터 세 달간 태국 북부 프레지역의 왕리앙(Wangliang) 학교를 들어가서 수업과 캠프를 진행하는데 스스로 찾아볼 생각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존심이 상해서 물어볼 수가 없다. 답이 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종합해본다. 캠프의 목적이 삶을 가르친다면 그것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 사람은 본디 흥미롭고 재미있어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진행하는 사람이 신나게 노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이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그럼 중요한 것은 바로 '열린 마음'.

 

하루에도 수십 번 듣는 단어. '열린 마음', 그럼 내 주위에 그렇게 많은 빗장들이 존재한다는 소리인데, 도대체 무엇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까.

 

강마에라면 나한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핑계, 저 핑계 뭔 놈의 핑계가 그렇게 많아. 마음을 열 생각이나 해보고 이러쿵 저러쿵 떠들란 말이야. 이 똥덩어리야."

 

글을 쓰는 행위는 소중하다. 생각이 정리되고 빗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다 마무리 될 때쯤 한 대학생 봉사자가 말을 건넨다.

 

"고, 사회에 관심이 많다며. 태국에선 조심해야 되는 말이지만, 난 별로 '왕'을 안 좋아해. 내 눈엔 너무 권력지향적이고 자기중심적이랄까?"

 

이런 횡재가, 똥덩이라한테 조금의 가능성이 보이니 하늘에서 흥밋거리 하나를 던져주나보다. 누구나 쉽게 잡을 수 없는 기회가 주변에 굴러다니니 똥덩어리는 오늘밤을 샐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위 일정은 10월 16일 ~ 18일까지 진행됐습니다. 그동안 인터넷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올리지 못했습니다. 양해바랍니다.


태그:#라온아띠, #YMCA, #KB, #해외봉사, #강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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