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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설은 그날그날의 주요 쟁점이나 현안에 대해, 말 그대로 신문사의 입장이나 주장을 밝히는 난이다. 신문 기사에 기자 실명제가 도입된 지 오래지만 신문 사설에는 별도로 사설을 쓴 논설위원 이름이 실리지 않는다. 논설위원 개인의 논평이 아니라, 신문사를 대표해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문 사설의 주제 선정은 전적으로 신문사의 몫이다. 그것을 놓고 제3자가 시시콜콜 따질 일은 아니다.

 

하지만, 16일 일부 신문들의 사설을 훑다 보면 자연스레 의문이 생긴다. 몇몇 신문들이 정국의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공직자 쌀 직불금 부당 수령 파문에 대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사설로 다룬 다수 신문들과는 달리 <동아일보>와 <중앙일보><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이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사설 안 싣는 건 신문사의 자유지만...

 

물론 언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꼭 오늘 하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사안의 성격으로 보나, 시기적 적절성으로 보나 사설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해야 한다면 오늘 하는 것이 정상적인 배치일 것이다.

 

실제 이들 신문의 지면 구성을 보더라도 그렇다. 이들 세 신문은 한결같이 김성회·김학용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명이 쌀 직불금을 받았다는 사실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하고 있다. 관련 기사를 두 개면씩에 걸쳐 별도로 보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들 신문들은 사설에서는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안들이 더 화급하고 중요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세 신문에 실린 사설들을 보면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동아일보> 사설은 '공공부문 모럴 헤저드'와 '군자살자 국가 유공자 판정', 그리고 '일제고사 시험 거부'에 관한 사설을 실었다. 다들 중요한 사안들일 수 있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모럴 헤저드를 다루면서도 정작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공직자 쌀 직불금 수령 파문은 아예 언급도 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를 보자. '재외국민 투표권'과 '국책은행 민영화 일정 연기' '전문 예술인이나 체육인의 초중고교 강사 허용 방침'에 관한 3편의 사설을 실었다. <한국일보>는 '경제위기' '한국방문의 해' '해군 함정 소말리아 파견'과 관련한 3건의 사설을 실었다.

 

<중앙일보>나 <한국일보> 역시 나름대로 각 분야별 쟁점을 뽑아 사설을 실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한가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이들 신문들은 16일 쌀 직불제 문제와 관련해 입장 표명을 유보했을까. 사태 추이를 좀 더 지켜보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리 시급한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반면 다른 신문들은 분명한 진상 규명과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무엇보다 쌀 직불금을 부당하게 수령한 공직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부당한 수령금의 국고 환수, 죄질에 따른 형사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비한 관계 법령의 정비가 따라야 한다는 점에서도 한 목소리였다.

 

<국민일보> 같은 경우는 여기에 더해 부당 수령자 가운데는 불법적으로 농지를 소유하거나 임대했을 경우가 있을 수 있는 만큼 이들에 대해서는 예외없이 법에 따라 해당 농지를 처분토록 해야 하고,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면 이에 대한 조사와 적절한 조치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쌀 직불제 부당 수령 논란의 단초를 제공한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에 대해 공직자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 그 경질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청와대의 입장과 관련해 "먼저 이 차관을 경질해 발본색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게 순서"라면서 이차관에 대한 즉각 경질을 촉구했다.

 

'일반 시민' 중엔 언론인도 있지 않나

 

하지만 이들 신문들이 '공직자'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이 문제의 폭발성을 조금은 쉽게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공직자들이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쌀소득보전직불금을 타간 것은 말할 나위없이 부도덕하고 반사회적인 처사다. 하지만 공직자에게만 그런 잣대를 들이댈 이유는 없다. 설령 공직자가 아니더라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 쌀 직불금을 타갔다면 일반 시민이라고 하더라도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공직자들은 일반 시민에 비해 훨씬 더 엄한 기준이 적용돼야 하겠지만, 그것이 일반시민의 불법 부당한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특히 그 일반 시민에는 변호사나 의사, 공기업이나 대기업 임원 등을 비롯해 언론인들도 포함돼 있는 것은 아닐까. 이들 역시 공직자 못지않게 사회적 책임감과 윤리의식이 필요한 공인들인 만큼 공직자에 못지않는 엄정한 규명과 응분의 사후 조치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한 마디로 공직자들 명단만 깔 일이 아닌 것이다. 불법적인 농지 소유와 부당한 쌀 직불금 수령은 예외없이 모두 상응한 조치들이 취해져야 할 일이다. 그것이 법의 정신이다. 

 

문득 일부 신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언급을 회피한 것이 이와 관련돼 그런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감사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2006년 쌀소득보전직접지불제 운용실태' 자료를 보면 언론계 인사 463명도 쌀직불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태그:#쌀 직불금, #공직자 윤리, #언론인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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