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9월 5일 춘천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정성태)는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현역입영을 거부한 4명의 피고인에게 실형 선고를 하지 않고 처벌법규인 병역법 제88조(입영의 기피) 제1항의 위헌 여부에 대한 심판을 제청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복무제 허용을 2009년 1월부터 시행키로 한 국방부가 금년 7월 느닷없이 '국민적 공감대'라는 이유를 들어, 돌연 '대체복무제 도입' 재검토를 선언한 가운데 내린 결정이어서 그 파장이 크다.

입법부와 행정부가 앞다투어 과거로 회귀하고 종교 편향성 논란이 거센 때에 나온 결정이라서 더 재판부가 소신 있어 보인다. 재판의 전제가 되기 때문에 전국 법원에서 일제히 선고가 연기될 개연성이 높다. 어쩌면 국방부의 일방통행을 사법부가 더는 눈감지 않겠다는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이번 위헌법률심판제청은 춘천지방법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전국 법원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사회복무제의 도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피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심전심이 아닌가?

6년 전인 2002년 서울남부지법 박시환 판사(현 대법관)의 위헌제청에 뒤이어 2004년 동 법원의 이정열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불끄기에 나선 대법원은 전원합의체에서 유죄 선고를 했고 뒤이어 헌법재판소도 합헌결정을 하면서 법률적인 논쟁은 외견상 마무리된 듯했다.

그런데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책개선권고안을 내고, 뒤이어 UN인권이사회가 형사처벌을 받은 2명의 병역거부자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권고 결정을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다급해진 국방부는 '정책연구위원회' 설치를 서두르고 급기야는 2007년 9월 사회복무제 도입을 발표했다.

그 와중에 2007년 4월, 울산지방법원은 종교적 양심에 의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신모 피고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2007헌가 12)을 했다. 뒤이어 영동지원의 이형걸 판사는 입영을 거부한 오모 피고인(2007고단151)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 달 8월 19일 청주지방법원 항소심에서는 원심을 깨고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상소권 보장을 위해서 법정구속을 하지는 않았다.

단일 국가로는 60년이라는 최장기간을, 가장 가혹하게 1만3000명의 병역거부 전과자를 양산한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이제 이 문제를 막강한 사법권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결자해지는 너무나 당연하지 않는가?

뿌리깊은 나무는 아무도 흔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두 최고 재판소의 유죄판결과 합헌결정을 왜 하급심에서 이렇게 흔들고 있는가? 2004년 법률해석을 하면서 사용된 논증도구는 일관성이 없어서 문맥이 이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색함의 정도는 드레스를 입고 전통혼례를 치르는 어정쩡함과 흡사했다. 이번 위헌제청결정문은 다음과 같이 그 논거를 제시한다.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로 하여금… 국방 의무의 이행을 가능케 하는 어떠한 입법도 하지 아니한 채 이들에게 집총을 강요하고 그 위반시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국가가 소수자(약자)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도 취하지 아니함으로써 다수자(강자)의 가치에 의하여 소수자(약자)의 존엄과 가치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되어, 이는 헌법 제10조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또한 헌법 제37조 제2항은… 위 헌법 조항에 따르면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로써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고 또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어서도 아니된다고 할 것이다. 이는 이 사건과 같이… 충돌이나 갈등 상황을 피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여야 하며 대안 마련이 불가능하여 기본권을 제한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도 그 목적에 비례하는 범위 내의 제한에 그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고 할 것이다.… 이는 앞서 살핀 기본권 제한원리를 일탈한 과잉조치라 할 것이므로 이 사건 법률조항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도 위반된다고 판단된다."

귀신이 곡할 새로운 법 해석이 아니다. 이미 2004년, 대법원의 무죄소수의견(이강국 현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소의 위헌소수의견(전효숙·김경일 재판관)의 논지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다. 그 당시 다수 법관의 판결과 결정은, 국가주의화된 성향에 부합되는 유죄와 합헌이라는 정해진 결론에 맞추다 보니 논증의 구조가 엉성하여 기속력을 가진 판례로 장수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했다. 6년을 버티어 온 것이 가관이다.

'양심의 자유'라는 최상급의 기본권을 제약하면서 '과잉금지의 원칙'이라는 엄격한 심사를 하지 않고 완화된 심사인 '합리성 심사'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비례의 원칙'을 적용하면 위헌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명백한 비합리가 아니면 합헌이라는 '합리성 심사'로 비켜간 것이다. 그래서 판결문과 결정문은 비약이 넘쳐나고 오죽하면 동양의 고전까지 동원하여 병역거부의 양심은 보편타당성이 없어서 양심이 아니라고까지 했던 것이다. 인간의 양심이 아니면 하등동물의 수심이라는 말인가? 2000여년 이어져 온 기독교 정신의 핵인 사랑을 극대화하여 실천한 지하의 순교자들이 들으면 벌떡 일어날 폄훼가 아닌가? 전 세계 병역거부자들에게 오만한 재판관의 이름 석자는 확실히 각인되었다.

'양심의 자유'가 내재적인 한계를 가진 상대적 자유이며 '국익이 우선'이라는 논리가 아직 힘을 얻고 있지만, 백번 양보하여 상대적이라고 해도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징역형은 '침해' 정도가 아니라 '말살'과 다름없다. 사회복무에 편입을 시켜서 공동체에 기여케 하는 것이 더 '국익'이 아닌가? 진짜 보수라면 진정한 국익이 무엇인지는 분간을 해야 한다.

이제 20살의 성년이 된 헌법재판소는 다시 시작하는 심정으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의 최후 보루로서 세계 헌법재판사에 새겨질 막중한 결정을 강요받고 있다. 2건의 위헌법률심판제청 심리를 조속히 마무리해서 분단국가의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정치적인 대치상태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자유'라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보장했다는 역사적인 평가를 받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덧붙이는 글 | 국방부는 대체복무 불가의 이유로 처음에는 '징병제 와해' '형평성' '시기상조'를, 이제 와서는 '신중한 접근' '국민적 합의'등으로 시일을 늦추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그러면 6년 동안 신중하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말인데, 이제와서 그러한 설명이 설득력이 있을수 없다는 것이 이번 위헌제청결정으로 나타난 사법부의 시각이다. 국방부의 국익과 사법부의 국익이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문과 무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당초 시행 목표에 맞도록 이행하는 것이 제3, 제4의 위헌제청을 피하는 길이 될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무죄선고도 잇따르고 있지 않는가?



태그:#양심적 병역거부, #사회복무제, #위헌법률심판제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유-사회의 제반 문제거리들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이면 에 숨은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리고저.... 관심분야- 소수자의 인권문제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