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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은 꽁보리밥이나 먹으면서 가는 여름과 작별하는 게 어때?”

“그거, 좋지. 그런데 어디 꽁보리밥 맛있게 잘 하는 집 있어?”

“내가 지난 여름에 가끔 들렀던 집이 있지, 같이 가볼 겨?”

 

서울로 오는 버스 안에서 일행 한 사람이 꽁보리밥 얘기를 꺼내자 모두들 좋다고 합니다. 등산을 마치고 내려와 점심을 곧바로 먹지 않고 서울까지 오게 된 것은 버스 시간 때문이었지요. 산 아래 주차장에서 서울까지 곧장 오는 버스는 하루에 서너 차례 밖에 없었는데 마침 그 버스시간과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서울 청량리 시장 앞에서 내린 일행들은 앞장선 친구를 따라 경동시장 쪽으로 걸었지요. 과일 도매시장은 소매상들만 조금 남아 있을 뿐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시장은 별로 달라진 모습이 아니었어요. 요즘 어려운 불경기가 보이는 듯 했지요.

 

추석 밑 한산한 재래시장 풍경

 

앞장선 친구는 과일시장을 지나 경동시장으로 들어와 시장건물 지하상가로 내려갔습니다. 처음 들어가 보는 상가였지요. 그런데 지하상가엔 으레 생선이나 잡화상들이 줄지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칸막이가 되어 있지 않은 복도 좌우에 손님용 의자들이 줄줄이 놓여 있는 음식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근의 상인들과 시장을 이용하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모습의 식당들이었지요.

 

음식점들은 대개 직사각형 모양의 네모난 구조였는데 안쪽은 주방과 진열대로 꾸며져 있고 바깥쪽에는 일렬로 놓인 의자에 손님들이 앉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더군요. 일행은 전에 자주 들렀던 단골집으로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마침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는 중이었습니다.

 

우리를 안내한 친구는 몹시 아쉬워하며 다른 음식점을 찾아보았습니다. 보리밥을 하는 음식점을 찾다가 마침 입구 근처의 호남집이라는 간판이 걸린 음식점 의자에 앉았지요. 우리일행들 네 명이 자리를 잡고 앉자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 반색을 하며 맞았습니다.

 

“어서 오세요? 산에 다녀오시는 사장님들이신가 보네요. 저희 집에 잘 오셨습니다. 저는 목포 암태 출신 아줌마랍니다. 맛있게 대접할게요.”

아주머니는 묻지도 않은 고향이야기까지 하며 음식 맛에 자신을 보였습니다.

 

“어, 그래요, 우리들 보리밥 먹으러 왔는데 맛있게 잘해주세요. 저쪽 단골집이 문을 닫아서 이 집에 처음 왔는데 맛이 좋을지 모르겠네요?”

친구는 우리들은 모처럼 안내한 이곳 음식이 맛이 없을까봐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습니다.

 

상인들과 서민들이 이용하는 경동시장 지하상가의 소박한 음식점들

 

“걱정하지 마세요. 맛있게 해드릴게요. 우리 집 음식 다 맛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드릴까요?”

보리밥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었지요. 일행들 네 명 중에 두 사람은 꽁보리밥이 아닌 쌀과 보리가 반 정도씩 섞인 밥을 주문했지요.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꽁보리밥을 넉넉하게. 그리고 나는 꽁보리밥을 약간 적게 시켰습니다.

 

“우선 소주 두병만 주세요. 적당한 안주 하고요?”

보리비빔밥을 준비하는 동안 우선 술고픈 친구가 소주를 주문했지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소주 안주로 장떡을 권했습니다. 그런데 이 장떡이 무려 15가지 재료를 섞어서 만든 영양만점의 음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행들은 장떡을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지요. 산에서 내려와 버스시간에 맞춰 우선 간단히 한 잔씩 하고 서울까지 왔는데 그 사이 술 생각이 간절했던 모양입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했기 때문에 운전대 잡을 걱정 없이 모두들 술에 자유로웠지요.

 

보리밥을 비벼주는 방법은 똑 같았습니다. 주인아주머니와 또 한 사람의 아주머니는 제법 커다란 양푼에 우리들이 제각각 주문한 밥을 퍼 담고 그 위에 각종 야채와 나물, 그리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얹어 내놓았습니다. 밑반찬으로는 무, 배추김치와 된장국, 그리고 갓김치가 나왔지요.

 

“어, 구수하고 좋다, 보리밥도 맛있고”

먼저 밥을 비벼 한 숟갈 맛본 일행이 국물맛과 함께 칭찬합니다.

“정말 맛이 좋은데. 아주머니 음식솜씨가 매우 좋네요.”

다른 일행은 주인아주머니의 음식솜씨를 칭찬했지요.

 

“음식점 시작하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순식간에 비벼낸 꽁보리밥 솜씨가 좋아 물었지요.

“올해로 십년 쨉니다. 아들 고등학교 입학시켜놓고 시작했으니까요.”

식당 주인아주머니는 전남 신안군의 암태도 출신으로 올해 54세의 안씨 아주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했지요.

 

음식솜씨만큼이나 구수하고 친절한 식당주인 안씨 아주머니

 

자신이 어렸을 때는 가장 가까운 뭍의 도시 목포가 꿈속에서도 그리던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다른 지역과 거의 단절된 삶을 살았던 당시 섬 생활은 어린이나 젊은이들에겐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서울은 고사하고 근처의 목포 구경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답니다.

 

“아주머니 그럼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사시니 엄청 출세하신 거네요. 허허허.”

“그라믄요, 그라믄요, 참말로 엄청 출세해 부렀지라, 잉.”

아주머니의 행복하고 신나하는 모습을 보며 맛있는 꽁보리밥을 먹는 우리들도 덩달아 신이 났지요. 그래서 농담을 했는데 아주머니는 더욱 신나는 모습으로 쓰지 않던 진한 사투리까지 튀어 나왔지요.

 

“그럼 십년동안 돈도 많이 버셨겠네요?”

“그라믄요, 많이 벌었지라 잉, 애들 공부시키고 집도 장만 했으니께요”

아주머니는 십년 전에 500만원으로 식당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행이 이 지역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중심 상권이고, 특히 상인들과 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싼값으로 제공하는 이곳 음식점들은 불황을 거의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요, 맨 주먹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살아갈 자신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일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작은 섬에서 태어나 꿈에도 그리던 뭍, 더구나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주머니의 생활력은 남다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경동시장의 상인들과 이 시장을 찾는 가난하고 소박한 서민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만족스럽다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정말 행복한 표정이었습니다.

 

큰 욕심 없이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과 어울려 생활하는 이 아주머니의 마음이 넉넉하기 때문에 누리는 행복이었습니다. “산에 다녀오실 때 또 오세요? 맛있고 정성스럽게 해드릴게요” 아주머니는 친절한 인사로 우리들을 배웅해주었습니다.

 

선선해진 날씨에 산뜻하게 다녀온 등산 기념으로 경동시장 지하상가에서 맛본 “여름 보내기 꽁보리밥”은 정말 정겹고 감칠 맛 나는 저녁이었습니다. 네 사람이 배불리 만족스럽게 먹은 음식 값도 꽁보리비빔밥 4인분과 소주 두 병, 그리고 안주로 먹은 장떡까지 합쳐 2만4천원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꽁보리밥, #경동시장, #호남집, #안씨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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